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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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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슬픔의 초상

아내를 잃은 상실감과 아픔 그리고 치유를 담은 그림일기, 대니 그레고리의 <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 등 새책 10권
등록 2015-02-13 17:33 수정 2020-05-03 04:27

슬픔을 그리고 아픔을 쓰다. 책 (대니 그레고리 지음, 황근하 옮김, 세미콜론 펴냄)은 지하철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내를 또 다른 사고로 잃은 뒤 1년 동안의 시간을 담은 그림일기다. 날벼락 같은 불행의 시간을 지나온 한 남자의 치유와 애도의 기록이기도 하다.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25년 가까이 우리는 삶을 함께 만들어갔고 패티의 삶이 끝나면서 내 삶도 끝이 났다. 내 삶은 쌍둥이 타워 같았다. 앞에 서 있던 타워가 무너지자 그 뒤에 서 있던 나 역시 곧바로 무너졌다.”

그림일기를 쓰며 아내를 잃은 슬픔의 시간을 건너는 한 남자의 이야기 〈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 세미콜론 제공

그림일기를 쓰며 아내를 잃은 슬픔의 시간을 건너는 한 남자의 이야기 〈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 세미콜론 제공

아내의 비극적 죽음으로 맞은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저자 대니 그레고리는 아내 패티에게 작별을 고하고 아들을 돌보고 자신을 추스르며 그림일기를 쓴다. 젊은 시절 아내의 모습, “공룡뼈 같은” 옷걸이만 남은 아내의 옷장, 아내가 돌보던 정원 등을 그리며 서로에게 기대어 삶을 함께 만들어나가던 세월을 추억한다. 그렇게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의 시간을 건넌다.

수채화로 가득 찬 그의 일기장을 넘기다보면 어느 순간 금방이라도 물감이 또르륵 떨어질 것 같다. 눈물이 흐르듯. 복받쳐오르는 감정은 다양한 빛깔로 그려진다. 몸의 한 부분이 절단된 것 같은 상실감과 공허함, 혼자 남은 삶에 대한 막막함, 아내의 흔적을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애절함과 더불어 이 모든 감정의 구렁텅이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복잡한 심경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대니 그레고리는 그림일기를 쓰면서 사물을 보는 법부터 새로 배우고, 실패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조직의 관리·감독 아래 있지도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지도 않는 자기 자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매일이 특별하다는 것을, 행복도 습관 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일러스트 에세이 를 비롯해, 등을 펴냈다.

“그림일기를 꾸준히 그린다는 것은 신문의 헤드라인이 그렇듯, 평범한 날 속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뽑아내 삶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또 나는 믿는다. 그림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어떤 것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응어리를 어루만져준다고.”( 중에서)

물기를 머금은 수채화

이번 책은 전작들과 비교해 유독 촉촉하고 강렬한 색채가 눈에 띈다. 가장 큰 아픔의 시간에 그린 찬란한 슬픔이라고 할까. 각 장마다 물기를 머금은 수채화는 슬프면서도 따뜻하다. 그 속에는 예술이 지닌 치유의 색깔이 칠해져 있다. 그것이 바로 대니 그레고리가 “미래가 텅 빈 백지처럼 된” 시간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지 새로운 그림을 구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삶을 돌보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전작 와 의 이야기처럼, 대니 그레고리는 이 책에서도 상실의 시간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넨다.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왜 노예된 삶을 숭배하는가

프랑스혁명 2세기 전에 쓰인 은 당시엔 정식으로 출판되지 못한 채 손에서 손으로 돌려 보는 ‘불온 문서’였다. 에티엔 드 라 보에시를 가르친 오를레앙대학 지도교수가 프로테스탄트를 탄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가 화형에 처해졌던 시대였다. ‘반독재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문서는 라 보에시가 33살 나이로 죽으면서 다른 원고와 함께 친구인 몽테뉴에게 맡겨졌다. 몽테뉴는 친구가 남긴 다른 모든 원고는 공개하면서도 은 10년을 더 감춰두었을 만큼 인권과 자유의 가치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적 생각까지 깃든 이 책은 위험했다.

책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도시들이 독재자에게 복종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권력의 통제 메커니즘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유를 잃으면 용기도 함께 잃고 만다. 종속된 사람들은 투쟁에 대한 열의도, 다부진 결기도 갖지 못한다. 그들은 위험에 처하면 결박된 사람처럼 마지못해 움직인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우들 사이에서 장렬한 죽음으로 명예와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유인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갈망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라 보에시가 청년 법학도이던 시절에 쓴 글은 그런 행태에 대한 결기와 분노로 가득하다. “예속된 사람들의 심장은 소심하게 두근거리고 태도는 나약하여 그 어떤 위대한 일과 마주해도 무력할 따름이다. 독재자들은 그 점을 제대로 꿰뚫어본다. 사람들이 활력을 급히 잃어가는 것을 목격하면 그들이 더 무기력해지도록 비열한 조력자가 된다.”

은 인권을 향한 긴 서사시의 첫 번째 걸음이고 첫 번째 행이다. 몽테뉴는 “나의 이성은 굽히거나 꺾이도록 길들어 있지 않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무릎”이라 했고, 프랑스혁명 직전에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이 주인이라고 믿는 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 질 들뢰즈는 “왜 민중은 자신의 노예된 삶을 숭배하는가”라고 다시 묻는다. 민중은 끊임없이 독재와 파시즘이 출현하는 것을 허락한다. 번역자는 후기에서 “반공주의는 독재정권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해 2004년 독일어판에서 한국어로 번역됐던 이 책을 다시 프랑스판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이유도 역사가 되풀이되는 징후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발적 복종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독재자는 스스로 굴복한다. 민중이 독재자에 대한 굴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스스로 무너진다. 그에게서 무엇을 빼앗을 필요도 없다. 단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라 보에시의 답이다.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김영훈·권복기 외 지음, 북하우스 펴냄, 1만2천원

‘우리 아이 자존감과 잠재력을 키우는 소통법’을 주제로 진행한 부모특강을 책으로 엮었다. 저자들은 수많은 육아 상담과 임상 사례, 자신의 육아 경험을 통해 요즘 부모들을 억누르고 있는 죄책감과 불안의 원인을 찾는다. 부모들에게 필요한 개인적 자아 돌보기, 소통 대화법 등을 알려준다.

유언비어 시미즈 이쿠타로 지음, 이재민·오석철 옮김, 기담문고 펴냄, 1만7천원

“정보에 대한 굶주림이 유언비어의 최적의 지반이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사회 환경의 변화를 적절하게 설명해줘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해주는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언비어는 발생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유언비어를 금지하거나 엄격한 검열제도를 실시하는 것보다는 먼저 사람들이 정보에 대한 굶주림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3500원

서민들의 거주지였던 서울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재건축된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교육’을 좇는 부모들과 ‘교육’으로 먹고사는 학교 선생님, 원어민 강사, 과외 교사, 어학원 상담원들이 벌이는 분투기를 그렸다.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씨의 신작.

국가의 배신 도현신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1만3천원

국가가 국민을 배신하고 기만한 치욕의 역사를 무능, 배신, 폭력 세 가지 열쇳말로 정리했다.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국가의 거짓에 속아 길에서 죽어간 ‘국민방위군’ 사건(배신국가), 무고한 국민을 깡패로 둔갑시킨 ‘삼청교육대’(폭력국가), 국가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난 ‘세월호 참사’(무능국가) 등을 통해 국가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람시의 군주론 김종법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1만6천원

를 쓴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에서 ‘현대의 군주’(혁명정당)를 창출해낸다. 그는 마키아벨리 사상 속에서 정치정당과 의회 문제, 민주주의 작동 원리까지 끄집어내고 대중의 동의에 의한 계급적 지배를 강조한다. 아울러 “하위 주체를 지식인으로 바꾸는 대중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한성에 관한 사유들빅터 브롬버트 지음, 이민주 옮김, 사람의무늬 펴냄, 1만5천원

노학자가 문학에서 죽음의 흔적을 더듬어나간다.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과거의 창작물인 문학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죽은 자에게 발언권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을 영적으로 다루거나(톨스토이), 한 문명의 죽음을 다루거나(프리모 레비), 은유적으로 다룬(알베르 카뮈) 8명의 작가를 소환했다.

당신의 선택은? 기업윤리리사 H. 뉴턴 등 지음, 권루시안 옮김, 양철북 펴냄, 3만원

자본주의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애덤 스미스는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운이 좋거나 상속 덕분에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만이 그렇고 나머지는 노예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쟁점에 대해 두 가지 다른 견해를 발췌해 들어본다. 시리즈로 발간됐고 1권은 과학기술, 3권은 글로벌 이슈다.

우주, 일상을 만나다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지음, 최성웅 옮김, 반니 펴냄, 1만4천원

책은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우주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른 아침 불어오는 바람, 음식 한 숟가락, 달과 위성안테나 같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주변 사물들을 꺼내 어렵지 않은 우주와 천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어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유명한 과학 블로거이자 팟캐스트 진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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