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내 언제 한번 먹게 해주꾸마

<총각무 동치미> 종만이네 집 아버지가 노끈을 꼬면서 세 개 한꺼번에 먹고 세 번 국물 들이켜는 동치미, 종만이가 으스대며 먹여주겠다고 하는데
등록 2015-01-24 18:32 수정 2020-05-03 04:27

가끔씩 작은오빠와 같이 종만이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종만이네 안방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삼베를 삼고 종만이 아버지는 천장부터 길게 매어 달아놓고 노끈을 꼬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어서 좁은 방인데도 불구하고 끼여서 놀다오곤 했습니다.
종만이 아버지는 고향이 함경도인데, 겨울날 친구 집에 갔다가 밤에 눈이 처마에 닿도록 많이 내려 집에 오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손으로 눈 속에 굴을 파고 집으로 왔다는 둥, 어머니와 나물 뜯으러 가서 벼랑 밑에 예쁜 강아지가 있어 집에 데려가 키우려고 쓰다듬고 있는데 벼랑 위에서 눈에 불이 철철 흐르는 호랑이가 으르렁거려 나물 다래끼도 다 버리고 디굴디굴 굴러 집으로 와서 며칠 죽도록 앓았다는 둥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한겨레 박미향 기자

우리도 눈이 많이 와서 눈 속에 굴을 파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만이 아버지는 노끈을 꼬면서 총각무 동치미를 세 개씩 드셨습니다. 살얼음이 동동 뜨는 큰 대접에 풋고추와 총각무가 든 동치미 그릇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게 맛있어 보입니다. 종만이 아버지는 얼음이 조금 녹은 다음에 국물을 벌컥벌컥 세 번 마시면서 아 시원타, 한참 노끈을 비벼 꼬다가 총각무를 손에 들고 베어드십니다. 종만이 아버지가 국물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킵니다.

아저씨 맛있어요? 아니다 씨굽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아니다 속이 안 좋아서 약으로 먹는다.

총각무 동치미를 얻어먹으려고 점심때가 되어도 집에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때 나온 동치미는 총각무 동치미가 아니라 큰 무로 만든 동치미를 썰어 물을 탄 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지 않고 일어서 왔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한테 우리 집은 왜 총각무 동치미가 없느냐고 하니 그거 별로 맛이 없어서 안 한다고, 언젠가 했는데 잘 안 먹어서 소 줬다고 합니다.

종만이한테 물어봤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왜 총각무 동치미를 맨입에 드시냐. 종만이 아버지가 어려서 큰집에 갔는데 큰형님이 노끈을 꼬면서 총각무 동치미를 먹으면서 아버지보고 먹어보라 소리를 안 해서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음해부터는 총각무를 심고 특별히 신경 써서 동치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강릉 사는 이모가 올 때 청각도 부탁해서 소금에 절여두었다 김장 때면 소금물을 빼서 넣고 큰 무는 갈아서 국물을 짜서 넣고 삭힌 고추도 넣고 비싼 배도 몇 덩이씩 사다 넣고 대파는 줄기만 넣고 갓은 청갓을 넣고 생강과 마늘은 썰어서 넣고 소금도 잘 말린 천일염을 써서 자기네 총각무 동치미는 아주 특별한 맛이 난다고 자랑합니다. 그럼 많이 해서 식구들이 같이 먹지 그러나. 하니, 올해 총각무가 잘 안 돼서 아버지 드실 만큼밖에 못 만들었다고 합니다.

와? 너들도 총각무 동치미가 먹고 싶나. 기다려봐라, 내 언제 한번 먹게 해주꾸마. 종만이는 한껏 으스대면서 이야기합니다. 그기 언젠디. 급하기는. 기다려보라니까.

하루는 놀러갔는데 종만이 어머니는 안 계시고 종만이와 종만이 아버지만 노끈을 꼬고 계셨습니다. 종만이 아버지는 한참 노끈을 꼬다가 동치미 그릇을 둔 채 뒷간에 가셨습니다. 종만이가 동치미 국물을 벌컥벌컥 세 번 마시더니 아 시원타, 작은오빠보고 너도 얼른 세 번 마시라고 했습니다. 작은오빠도 세 번 마시고 아 시원타 하더니, 야 너도 얼른 마셔 해서 나도 세 번 벌컥벌컥 마셔보니 골이 찡하면서 아 시원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국물이 달착지근하면서 약간 매콤한 것 같고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아주 시원하고 짜지도 않고 맨입에 먹기에 딱 맞는 맛이었습니다.

종만이는 총각무를 건져들고 한입 베어먹으며 너들도 총각무를 하나씩 먹으라고 합니다. 작은오빠와 나도 총각무 이파리 쪽을 들고 베어먹습니다. 짜지 않고 맨입에 먹기에 아주 좋습니다.

총각무를 한입 베어먹자 종만이가 느들 아버지 오시기 전에 먹으면서 빨리 가라고 합니다. 총각무를 먹으면서 도망오는데 뒷간에 가셨던 종만이 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두 번은 베어먹어야 할 총각무를 이파리가 달린 채 한입에 집어넣었습니다. 입이 꽉 찼습니다. 종만이 아버지가 느들 놀다가지 와 벌써 가나, 하시는데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도 못하고 도망와서 그해 겨울은 종만이네 집에 놀러가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은 느들 요즘 종만이네 집에 놀러 안 가냐고 묻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