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리가 끝나는 어두니골 어귀에 보를 막아 우리 집 앞까지는 2km가 넘는 잔잔한 모래강이었습니다. 우리 집 위쪽에서 서서히 여울이 지다가 삼치라우소 근방부터는 아주 사나운 여울이 지고 삼치라우 소용돌이를 만나게 됩니다. 저녁때면 모래밭에 거뭇거뭇 골뱅이가 즐비했습니다. 건너편은 허공다리 벼랑 밑이어서 물이 시퍼렇게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습니다. 허공다리 벼랑 밑에는 큰 고기가 많이 살았습니다.
육이오 동란이 끝난 다음해 마낙쟁이네 세 식구가 이른 봄부터 우리 집 사랑방을 한 칸 빌려 살았습니다. 쪽배를 타고 어두니 강에서 마낙(긴 줄에 한 발마다 30cm 정도 되는 끈을 달아 낚싯바늘을 매단 것)을 놓아 고기를 잡아먹고 살다가 날씨가 추워져야 돌아가곤 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더니 어느 핸가 자기네도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어 먹고산다고 쪽배를 우리 집에 주고 갔습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마낙쟁이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갔다와서 소풀을 베고 농사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고기를 잡아 큰 것을 골라 팔아 용돈으로 쓰기도 하고, 끓여 먹기도 합니다. 때론 어쩌다 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할 땐 장어도 화롯불에 지글지글 구워서 개도 주고 삶아서 닭도 먹입니다. 일을 많이 못하는 남동생과 내가 낚싯밥 당번이었습니다. 깡통을 들고 진펄에서 지렁이를 캐놓기도 하고 여울물에서 돌을 들쳐 시커먼 말뚝꼬내기를 잡아놓았습니다. 시커머스름하고 발이 많이 달린 말뚝꼬내기는 특별히 고기가 좋아합니다.
아버지와 오빠들은 일하다 해거름에 꼬내기를 낚시에 꿰어 마낙줄을 사려놓고 꼬내기가 꿰어진 낚싯바늘 사이에 모래를 올리면서 한쪽으로 가지런히 놓습니다. 꼬내기가 많을 때는 열 틀도 놓고 꼬내기가 적고 시간이 없을 때는 여섯 틀 정도 놓습니다. 낚싯바늘 100개를 매단 것을 한 틀이라고 합니다.
할머니가 목화로 무명실을 만든 것을 아버지가 여러 겹으로 다시 꼬아서 실타래를 만들었습니다. 밤나무 껍질 삶은 물에 밤색 물을 들여서 마낙줄을 만들었습니다.
일일이 낚싯바늘을 매달아 마낙 열 틀을 정말로 허리가 휘도록 여러 해에 걸쳐 장만했습니다. 그냥 흰색 실이면 고기 눈에 너무 잘 띄어서 고기가 물지 않고 금방 끊어진다고 합니다. 허공다리 벼랑 밑 깊은 소에 마낙 열 틀을 놓은 날 메기, 쏘가리, 어름치, 뱀장어, 어떤 날은 솥뚜껑 같은 자라를 세 마리씩 잡은 날도 있었습니다. 큰오빠는 사대를 젓고, 작은오빠가 마낙줄을 강에 푸는 일과 아침에 고기를 건져올리는 일을 합니다. 늘 다래끼가 무겁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큰 쏘가리를 잡은 날 지나가던 아저씨가 고기 구경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냥 보는 줄 알았는데 큰 쏘가리가 탐나서 만져보다가 쏘가리가 화나서 지느러미를 척 세웠습니다. 아저씨 손바닥에 피가 철철 흐릅니다. 무슨 고기가 이렇게 사나우냐고 도리어 고기를 나무랐습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만져보라 한 것도 아닌데, 할머니가 나그네를 불러다 단오에 매단 쑥을 비벼서 지지고 낡은 천으로 싸매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큰물이 지고 바닥이 투명하도록 맑은 강에 마낙을 놓은 날 허연 수염이 긴 머리통이 엄청나게 큰 메기가 걸렸습니다. 큰오빠가 두 손으로 잡을 만큼 큰 장어도 걸리고 자잘한 장어가 여러 마리 걸렸습니다.
우리 집은 삼복더위에 보양식으로 꼭 한 번은 메기·장어죽을 끓입니다. 강 속의 수삼이라고 강가에 솥을 걸고 천렵 겸 가족이 모여 장어죽을 먹고 쉬는 날입니다. 여름 장마가 지나면 강가에는 떠내려가던 나무가 여기저기 걸려 나무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먼저 엄나무, 오가피, 뽕나무 뿌리, 황기를 넣고 푹 삶아 건져냅니다. 메기, 뱀장어 있는 대로 한 솥 넣고 마늘을 한 바가지 까서 넣습니다. 마늘은 더위에도 좋고 비린내도 잡아줘서 아주 좋습니다. 메기나 뱀장어는 한참을 끓이다 머리를 들고 머리 밑에서부터 긴 싸리 가지 젓가락으로 쭉 훑어내려 등뼈만 빼내면 잔가시가 없어서 어죽을 끓이기에 아주 편합니다. 마지막에 찹쌀을 넣고 대추와 마른 밤을 넣어 죽을 끓입니다. 마른 밤은 적당히 익어서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입니다. 먹을 때 매운 고추를 다져 타 먹기도 하고 고추장을 타 먹기도 합니다. 김장 김치와 같이 먹으면 아주 시원합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강원도의 맛’을 연재하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현실은 뜨거운 베트남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아기자기한 고향과 이야기하며 살았습니다. 허구한 날 부엌에서 싫증 내지 않고 요리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 댓글을 확인하며 행복했습니다.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전순예 주부의 칼럼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전순예 주부와 칼럼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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