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더위에 아들은 어두니골 범석이네 집 앞 웅덩잇가에서 가재국을 끓여 먹고 놀기로 합니다. 점심을 해먹을 수 있게 각자 재료 한 가지씩 가지고 모이기로 합니다.
뼛속까지 시원한 샘물이 쫄쫄 흐르는 어두니골 도랑을 뒤져 가재를 잡습니다. 가재는 물이 찌질찌질한 도랑가에 많이 삽니다. 돌을 살며시 들어 올리면서 잘 살펴야 합니다. 가재가 도망가기 전에 재빨리 잡아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깔깔거리며 아이구, 가재가 주먹같이 크다고 연신 가재를 다래끼(바구니)에 주워 넣습니다.
소백산 비로사 골짜기에서 살다 왔다는 덩치 큰 기동이는 개구리를 잡아 껍질을 홀라당 벗겨서 버드나무 가지에 꿰어 바위 밑에 넣고 가재를 낚는다고 기다립니다. 잠깐만 있으면 솥단지로 하나 잡을 수 있답니다. 가재는 개구리를 너무 좋아해서 낚싯대를 끌어올리면 개구리 다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개구리 다리를 먹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사람이 잡아당겨도 개구리 다리를 잘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두니골 아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얘기입니다. 물 많은 웅덩이 바위 밑에 개구리 낚시를 넣고 한참을 기다리니 가재가 줄줄이 붙어 올라옵니다. 기동이는 무슨 생각인지 가재를 다래끼에 넣지 않고 물에 도로 훌훌 털어 넣어버립니다.
“야, 기동아 왜서 가재를 물에다 도로 놔주나?”
“어미가재를 잡아야지, 딱정벌레 같은 새끼나 잡아서 어디다 쓰나.”
“가재가 원래 그렇지 얼마나 큰 걸 잡을라고 그러나.”
기동이는 큰 손을 내밀며 자기 손목을 훨씬 넘게 잡고 이만한 것을 잡겠다고 합니다. 아들은 “에~이 가재가 원래 딱정벌레만 하지 그렇게 큰 기 어디 있나” 합니다.
기동이는 소백산 가재는 자기 손목을 훨씬 넘을 만큼 커서 한두 마리만 구워 먹으면 배가 부르다고 합니다. 자기는 매일같이 가재를 잡아먹고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기동이네 식구는 어머니 빼고는 모두 덩치가 큽니다.
아들은 기동이를 달랩니다. 여기는 원래 그렇게 큰 가재는 없으니 잡으면 버리지 말고 다래끼에 담아라. 큰 것을 잡겠다고 고집 피우던 기동이는 계속 작은 것만 올라오자 포기하고 열심히 잡아서 제법 다래끼가 그들먹해졌습니다.
솥 당번인 기동이는 큰 무쇠솥을 지게에 지고 왔습니다. 솥단지를 열자 바가지, 칼, 도마, 숟가락, 그릇이 줄줄이 쏟아져나옵니다.
“니 살림 차리나?”
“다 있어야 할 것들만 생각해 지고 왔다.”
감자, 파, 마늘, 간장,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김치. 아들은 나름대로 한 가지씩 다 가져왔습니다. 호박 당번은 누리꾸리한 큰 호박을 한 덩이 가져왔습니다. 쌀 당번은 열 명이 넘는데 쌀을 한 사발도 안 되게 가져왔습니다. 어떤 아가 쌀 당번한테 “이 새끼, 쌀을 그렇게 조금 가져오면 어떡하나. 누구 코에다 바르나. 니 혼자 먹어도 모자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쌀 당번은 엉엉 웁니다. 기동이가 걱정하지 말라며 빨리 가재 딱지를 떼고 잘 씻으라고 합니다. 기동이는 큰 솥을 도랑가에 걸고 물을 가득 붓고 끓입니다. 끓는 물에 고추장도 풀고 막장도 풉니다. 감자도 썰어 넣고 쌀도 씻어 넣습니다. 큰 호박 한 덩이도 다 썰어 넣습니다. 펄펄 끓는 솥에 손질한 가재를 넣습니다.
아들이 잘 노나 보러 나온 범석이 할머니가 모자라는 거 있으면 얘기하라고 합니다. 범석이 할머니는 펄펄 끓는 국솥을 바가지로 한 번 휘이 저어보더니 밀가루를 함지박에 담아 손가락 한 마디만큼씩 수제비를 만들어다 주시면서 이거 넣고 한소끔 끓으면 파, 마늘 넣고 먹으라고 합니다.
가재는 빨갛고, 파는 파랗고, 수제비는 하얗습니다. 호박이랑 채소랑 어울려 가재국이 아니라 아주 예쁜 가재죽이 되었습니다.
입술이 시퍼렇도록 물에서 텀벙거리다 가재죽을 먹느라고 빠지직 삐지직 삐작빠작 가재다리 씹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땀을 찔찔 흘리며 가재죽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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