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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 먹으며 공기 천 판

공깃돌 다섯 알씩, 천 알을 모으는 내기… 주먹밥 나눠 먹을 때 터졌던 박수
등록 2016-02-26 11:09 수정 2020-05-03 04:28
주먹밥 먹으며 했던 공기놀이. 어머니는 “힘든데” 하시면서 주먹밥을 싸주셨다. 연합뉴스

주먹밥 먹으며 했던 공기놀이. 어머니는 “힘든데” 하시면서 주먹밥을 싸주셨다. 연합뉴스

공기 천 판 내기 결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공기 천 판이 끝나는 날까지는 점심은 돌아가면서 한 번씩 주먹밥을 싸다 먹기로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바쁜데, 그냥 밥 싸주기도 힘든데 하시면서 주먹밥을 만드십니다.

좁쌀, 강냉이쌀, 검정콩에 쌀이 약간 섞인 밥에다 무수 장아찌를 들기름에 무쳐 쫑쫑 다져 넣고 김치도 쫑쫑 다져 넣었습니다. 손끝에 들기름을 꾹 찍어 온 손바닥에 쓱 바르고 밥을 한입에 들어갈 만큼 꼭꼭 몇 번 주물러 양은 도시락에 담아주셨습니다.

큰오빠 6학년, 작은오빠 4학년 때 일입니다.

학교 운동장 아름드리 두 그루의 백양나무 아래서 공기 천 판 내기를 하였습니다. 각자 자기 공깃돌 천 알씩 가지고 운동장에 뿌려서 다섯 알 집기로 공기 천 알을 먼저 따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입니다. 천 판 내기에 이기는 사람에게는 진 사람들이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맛있는 것을 싸다 주기로 했습니다.

공기 천 알을 일주일 걸려 준비했습니다. 각자 자기 이름을 쓴 작은 자루 두 개씩을 준비했습니다. 공깃돌은 어머니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것으로 될 수 있는 대로 동글동글한 것을 온 강가를 헤매며 주워 모았습니다. 공깃돌 천 알을 담으니 자루가 아주 묵직합니다.

처음에는 공기 천 판 내기를 하자고 하니까 도전하는 아들이 열 명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고 공깃돌을 주워 모았습니다. 공깃돌이 될 만한 것을 천 알 줍기가 쉽지 않아서 이틀 만에 두 명은 안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아들은 자루가 없어서 기권하고 돌 사이에서 벌러지가 나온다고 기권했습니다. 끝까지 남은 사람은 큰오빠와 작은오빠, 나이는 큰오빠보다 많은데 늦게 입학해 작은오빠 친구인 종열이, 5학년 반장까지 네 명입니다.

학교가 시작하기 1시간 전에 일찍 모여서 공기를 합니다. 4천 개의 공깃돌을 네 사람이 함께 운동장에 뿌리고 다섯 알 집기를 합니다. 다섯 알 집기라서 다섯 알 이상은 집다가 놓치지만 않으면 됩니다. 네 사람이 한 차례씩 한 다음에는 공깃돌을 한군데 모아서 다시 흩뿌리고 합니다.

손이 큰 종열이가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종열이는 큰 손바닥으로 욕심내 한번에 많이 집다보면 떨어뜨리고 옆의 것이 울어서(옆의 것을 건드리는 것) 자주 틀립니다. 작은오빠는 다섯 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손가락 끝으로 살포시 집어 올립니다. 자기 차례가 되면 틀리지 않고 오랫동안 착실하게 공깃돌을 따 모읍니다. 처음에는 작은오빠는 작다고 안 시켜준다고 했었는데, 작은오빠 앞에 제일 많은 공깃돌이 쌓입니다.

공부가 잘 안 됩니다. 수업 시간에도 공깃돌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합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그 잠깐 동안에도 공기를 합니다. 점심시간에는 주먹밥을 먹으며 공기를 합니다. 두 손가락으로 쥐고 먹으면서 손때가 묻은 밥은 버려야지 하고 먹었는데 공기에 정신이 팔려서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합니다.

학교가 끝나고도 1시간이 남아서 공기를 합니다. 자기가 딴 공기가 든 자루는 무슨 보물인 양 꼭꼭 묶어서 아직 아무도 안 딴 공깃돌이 든 자루와 함께 교무실에 맡깁니다. 선생님들이 아이고 큰 재산이다, 잘 두었다 줄게, 하십니다.

다음날은 종열이가 잡곡밥에 콩보생이(콩을 볶아서 빻은 가루)를 무친 주먹밥을 싸왔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와르르 모여들더니 주먹밥을 하나씩 들고 냅다 뺐습니다. 종열이는 도시락에 붙은 콩보생이와 밥알을 핥아먹습니다. 중간 부분을 핥아먹고 도시락을 내밀면서 너들도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핥아먹으라고 합니다. 넷이서 이 구석 저 구석 콩가루 한 점 남기지 않고 도시락을 핥아먹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입니다.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도 응원을 하십니다. 5학년 반장 어머니가 닭고기를 잘게 다져서 볶아 넣은 특별한 주먹밥을 한 함지박 이고 오셔서 모여든 아들과 선생님들도 주먹밥을 먹으며 응원을 합니다. 3일이 되니 천 판의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학년마다 자기 학년 선수의 공깃돌을 세느라고 난리입니다.

갑자기 큰오빠의 공깃돌을 챙기던 친구가 천 개다! 소리쳤습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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