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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한번은 실컷 먹어봤다고

굴비 먹고 싶어 잠꼬대하는 아들 ‘돈이 아보다 중하겠나’ 작정하고 상 차려
등록 2016-05-29 09:08 수정 2020-05-03 04:28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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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가 먹고 싶어! 굴비가 먹고 싶어~.

호섭이는 자면서 잠꼬대를 합니다. 호섭이가 굴비 먹고 싶다고 하길래 호섭이 어머니는 쪼그만 놈의 새끼가 별것이 다 먹고 싶다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안 사주었습니다. 많은 가족이라 제사 때 굴비 한 마리 사면 어른들이나 한 저름씩 먹어볼 수 있는 굴비입니다. 그랬더니 아가 뭘 먹지 않고 비실비실 비쩍 말라가더니 이제는 헛소리까지 합니다.

그래, 돈이 아보다 중하겠나. 호섭이 어머니는 날이 밝으면 강아지 판 돈을 헐어서 굴비를 사다 먹기로 작정합니다. 호섭이 어머니는 강아지를 팔고 돼지 새끼를 팔아 모아 송아지를 삽니다. 송아지를 키워 소를 만들고 그 소를 팔아서 땅을 사느라고 호섭이 어머니는 굳은배기 소리를 듣습니다. 별 돈 버는 재주가 없으니 그저 안 먹고 안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큰맘 먹고 굴비를 사러 가기는 하였지만 돈이 아까웠습니다. 손가락 같은 거 열 마리 엮은 걸 사들고 옵니다. 한참을 오다가 생각하니 이걸 갖다가 누구 코에 바르겠나 싶습니다. 평생에 한번은 굴비를 정말 실컷 먹어봤다고, 정말 맛있었다고 기억에 남게 먹어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도로 돌아가서 손바닥같이 큰 것 스무 마리 한 두름을 샀습니다. 이렇게 많은 굴비를 사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집에 와서 장보따리를 뜨럭에 놓고 잠깐 뒷간에 갔다 왔습니다. 그동안에 이웃집 고양이가 와서 발톱으로 보따리를 할퀴어 뜯고는 굴비 두름을 길게 물고 질질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이놈의 고양이가 아무리 미물 짐승이라지만 체면이 있어야지! 쫓아가서 뺏으니 이를 앙당 물고 하악~ 소리를 내면서 노리고 째려보며 안 뺏기려고 기를 씁니다. 그 꼬락서라니에 웃음이 납니다. 아이구, 이 얌통머리야 주먹을 겨루니 억지로 놓고 갑니다. 이따가 저녁 먹을 때 오면 뼈다구라도 하나 줄게, 오너라~.

호섭이 어머니는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합니다. 누구 생일도 아닌데 맨쌀밥을 하기로 합니다. 호섭이 어머니는 쌀뜨물에 굴비를 1시간 담가놓습니다. 쌀뜨물에 담가두면 짠물도 빠지고 모양도 불어나 더 풍성해 보입니다.

호섭이 어머니는 무수를 뚝 잘라 쥐고 굴비를 거꾸로 놓고 비늘을 긁어냅니다. 칼로 하는 것보다 굴비가 상하지도 않고 비늘이 더 잘 벗겨집니다. 비늘을 벗겨낸 굴비는 담가두었던 쌀뜨물에 빡빡 문질러 씻은 다음 맑은 물에 헹굽니다. 모처럼 비린내 나는 것을 먹으니, 굴비 씻은 물에 죽이라도 맛나게 끓여 고양이와 개에게 줄 생각을 합니다.

지느러미를 가위로 자르고 어슷하게 칼집을 넣습니다. 밥을 하고 화롯불을 정성 들여 만듭니다. 아침 화롯불은 잿불로 그대로 두고 저녁 한불을 따로 담아 사용합니다. 나뭇가리에서 싸릿가지도 한 아름 골라 왔습니다.

호섭이 어머니는 (부엌) 앞에 쪼그리고 앉아 화롯불에 굴비를 굽습니다. 화롯불에 굽붕쇄를 올리고 싸릿가지를 촘촘히 얹어놓고 그 위에 굴비를 굽습니다. 싸릿가지는 연기가 나지 않으면서 향이 고기에 배어 최고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굴비는 싸릿가지를 촘촘히 올린 잿불 화로에 식지 않게 옮겨놓습니다.

호섭이 어머니는 투박한 손으로 굴비를 뚝 분질러 가슴살을 뚝뚝 뜯어 아들 밥숟갈 위에 얹어줍니다. 머리와 갈비뼈는 도로 으로 가져가 타지 않게 바삭하게 굽습니다. 바삭하고 고소한 맛에 뼈까지 다 먹다 생각하니 개와 고양이한테 미안해서 머리 몇 개 남겨 굴비 담갔던 쌀뜨물에 지느러미와 같이 죽을 끓였습니다.

이웃집 고양이는 말귀를 알아들었던지 정말로 저녁에 와서 호섭이네 고양이, 개와 같이 죽을 먹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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