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학교에서 내일은 우윳가루 배급을 할 테니 보자기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들(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후 보자기를 들고 줄로 서서 우윳가루를 배급받습니다. 미국 우윳가루는 신기하게도 도루마 깡통 비닐 자루 속에 들어 있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입니다. 비닐도 처음 봅니다.
학교 소사 아저씨가 됫박으로 하나씩 아들한테 퍼줍니다. 나는 무명 보자기에 우윳가루를 받아 행여나 쏟아질까봐 잘 묶어 들고 부지런히 집으로 옵니다. 뒤에서 낯선 남자아들이 따라오면서 “이 간나는 찬학이 닮았다”고 하면서 우윳가루 보자기를 걷어찹니다. 엉글엉글한 무명 보자기 틈으로 우윳가루가 퍽석퍽석 연기처럼 빠져나갑니다. 우윳가루 보자기를 걷어찰 때마다 차라리 나를 걷어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윳가루 보자기를 꼭 붙들고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야아~ 이 쪼그만 간나가 날아가는 것 같네. 찬학이 닮아서 뜀도 잘 뛰네.” 나는 뛰면서 찬학이 오빠를 닮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큰오빠는 점잖고 공부도 잘해서, 큰오빠를 알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찬호 동생이라고 예뻐해주었습니다. 둘째 찬학이 오빠는 아주 빠르고 운동도 잘해서 누구한테 지는 성질이 아닙니다. 작은오빠는 한국전쟁 직후 정상적으로 8살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때는 열여섯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람도 있고, 열네 살 입학생도 있었습니다. 어리고 재빠른 찬학이 오빠는 나이 많은 학생들과 싸워도 지는 법이 없어 미움을 샀습니다. 그래서 찬학이 오빠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동생이란 걸 알면 지나가다가도 쥐어박곤 했습니다.
우윳가루가 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나마도 아들 집보다 우리 집이 더 멀어서 우윳가루가 남은 것입니다. 집에 와서 아들이 찬학이 닮았다고 우윳가루 보자기를 걷어차서 조금뿐이 안 남았다고 엉엉 울었습니다. 할머니가 괜찮다고, 그놈들이 아를 걷어차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우윳가루는 절반 넘게 빠져나갔지만 큰오빠와 작은오빠도 배급을 받아 집에 우윳가루가 많이 생겼습니다.
우윳가루는 물에 잘 풀어서 끓여 먹으라고 하지만 끓이면 밍밍한 게 정말 맛이 없습니다. 물을 조금 붓고 잘 풀어서 밥솥 위에다 쪄서 떡처럼 만들면 간식으로 먹을 만합니다. 처음에는 말랑말랑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주 딱딱하게 굳어서 이빨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학교에 가져가서 이빨로 박박 긁어 조금씩 먹습니다. 처음에는 네모였는데 노는 시간마다 긁어 먹다보면 동그랗게 됩니다. 우윳가루를 쪄오지 않은 아들 중에 아주 친한 친구한테만 한 번씩 긁어 먹게 해줍니다. 우윳가루를 쪄오지도 않고 친한 친구도 없으면 종일 남이 먹는 것 구경만 하고 침만 꿀꺽꿀꺽 삼켜야 합니다.
1학년 우리 반에서 기운이 제일 센 춘자는 열네 살이고 춘자 동생 대용이는 열두 살입니다. 둘 다 한글을 잘 모릅니다. 공부시간에도 다른 아들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거나 그저 선생님 눈을 속여 장난만 칩니다. 둘이 같이 덤비기 때문에 아들이 꼼짝없이 당하고 맙니다. 춘자랑 대용이는 즈네(자기들) 우윳가루떡을 공부시간에 선생님 몰래몰래 열심히 갉아 다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입니다. 다른 아들이 먹는 우윳가루떡을 한 번만 긁어 먹어보자고 춘자는 자꾸만 조릅니다. 짝꿍인 순덕이가 책보자기에 우윳가루떡을 싸놓고 변소에 갔습니다. 춘자는 자기 것인 양 우윳가루떡을 꺼내 긁어 먹습니다. 자기만 먹는 것이 아니고 대용아 대용아~ 불러 너도 긁어 먹으라고 합니다. 순덕이가 변소에서 돌아왔을 때 대용이는 마지막 남은 우윳가루떡을 우적우적 깨물어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화가 난 순덕이가 재빠르게 대용이를 한 대 쳤는데 코피가 터졌습니다.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아들이 어허야 어허야 우윳가루 먹다 코피 터지면 죽는다는데 죽는다는데~ 놀렸습니다. 대용이는 정말로 죽는 줄 아는지, 누나야 나 어떡해 어떡해~ 하며 서럽게 우는데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렸습니다. 공부시간에 대용이는 훌쩍훌쩍 웁니다. 춘자는 순덕이한테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견줍니다. 너 점심시간 끝나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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