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어린 날 할머니를 따라 도토리를 엄청 주워 나른 적이 있었습니다. 풍년이 들어 산이고 들이고 모든 열매가 풍성했던 가을이었습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와 나는 학교를 결석하고 며칠 동안 도토리를 주웠습니다. 아침 일찍 삼베 보자기에 밥을 싸고 막장에 박은 마늘종장아찌를 김치 이파리에 싸서 큰오빠가 주루먹(짚으로 엮은 어깨에 메는 자루)에다 짊어지고 갑니다. 땅속에 묻어둔 백김치도 한 포기 꼭 짜서 보자기에 싸 작은오빠가 다레끼(바구니)에 메고 갑니다.
도토리가 많은 고동골 뒷산으로 간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앞장서고 그 뒤 나, 작은오빠가 가고, 큰오빠가 맨 뒤에 갑니다. 처음 가보는 고동골 골짜기는 신기한 새도 많고 나무도 많습니다. 할머니는 온 산천을 다 참견하지 말고 부지런히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고동골 뒷산까지 왔을 때는 이른 점심때가 다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보따리가 무거우니 밥을 먹어치우자고 하십니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가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할머니는 납작한 돌 위에 밥보자기를 펴놓습니다. 싸릿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어주십니다. 먹기 전에 밥을 집어 멀리 던지면서 꼬시네(고수레)~ 도토리를 많이 줍게 해주소서~ 한 다음 어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백김치는 물에다 헹구어 납작한 돌을 얹어 도랑에 약간 잠기도록 해놓고 먹습니다. 한참을 먹다보니 강에서는 볼 수 없던 고기들이 나와서 김치 이파리를 뚝뚝 뜯어 물고 갑니다. 먹다 흘린 밥알도 주워 먹습니다. 몸에 까만 점이 주근깨처럼 많은 놈들이 강에서는 볼 수 없던 고기들입니다.
점심 후 나무젓가락을 버리지 않고 땅에다 꽂습니다. 아무 데나 버려 호랑이가 주워 밑을 닦으면 큰일 난다고 합니다. 후식으로 도랑가에 있는 머루 덩굴에서 머루를 따서 먹습니다. 할머니는 오늘은 머루를 가지고 갈 수 없으니, 욕심 부리지 말고 한 송이씩만 따 먹으라고 하십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살아서 어디에 도토리가 많은지 잘 아십니다. 잘 익은 도토리가 정말 많습니다. 떨어진 지 오래된 것은 줍지 말고 새로 떨어진 것만 주우라고 하십니다. 금방 떨어진 것은 머리 부분이 하얗고, 반들반들 윤기가 자르르 흐릅니다.
작은 다레끼가 금방 차서 자루에 붓습니다. 부지런히 주우니, 금방 도토리를 한 자루씩 주웠습니다. 큰오빠는 튼튼한 싸리나무 위에 다방구리(솔잎이 많은 못생긴 소나무) 가지를 깔고 썰매를 만듭니다. 썰매에 도토리 자루를 실어 끌고 갑니다. 바윗돌이 가로막은 길목에선 자루를 들고 썰매를 옮겨 다시 싣고 갑니다.
한 가마니나 되는 도토리는 그 밤에 큰 가마솥에 물 한 동이 붓고 쪄서 널고 잡니다. 도토리는 떨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벌러지가 나서 안 됩니다. 쪄서 말린 도토리는 디딜방아에 슬금슬금 찧어서 껍데기를 키로 까불러 도토리쌀을 만듭니다. 도토리쌀은 여러 해 두어도 벌러지가 나지 않습니다. 가마솥에 물 많이 붓고 중간에 작은 다레끼를 하나 심고 도토리쌀을 돌려 안치고 불을 때 버글버글 끓입니다. 뻘건 물이 우러납니다. 중간 다레끼에 고인 뻘건 물을 바가지로 퍼내어 버리고 새 물을 붓고 또 은근히 불을 때 뻘건 물 우려내기를 한 이틀은 해야 맑은 물이 나옵니다.
떫은 물을 다 뺀 도토리는 밑에 물이 남지 않도록 잦힙니다. 시원한 곳에 두었다가 먹을 때 디딜방아에 풍풍 찧어 어레미(구멍이 굵은 체)로 쳐서 도토리가루를 만듭니다. 노란콩을 볶아 쇠공이가 있는 디딜방아에 빻아서 가는 체로 쳐 콩보생이(가루)를 만듭니다. 콩보생이를 도토리가루에 섞어서 먹습니다. 사카린을 약간 섞어 먹기도 합니다. 출출할 때 먹으면 먹을 만합니다.
어머니는 도토리를 믿고 쌀을 팔아 송아지를 샀습니다. 어머니는 쌀을 조금 안치고 밥을 하다가 밥이 쏭쏭 잦아질 때 위에다 도토리가루를 얹습니다. 밥을 풀 때 도토리가루와 섞어서 퍼줍니다. 처음 몇 끼는 먹을 만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정말 먹기 싫어졌습니다. 할머니는 한창 커야 할 아들이 먹어야 크지, 아들에게 도토리밥을 그만 먹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도토리를 많이 주워온 것을 후회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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