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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을 두르고 오빠가 돌아왔다

삼척 바닷가에 동원훈련 갔던 작은 오빠, 너른 바위에 명태며 문어, 미역 말리느라 훈련이 힘든 줄도 몰랐네
등록 2016-04-21 19:01 수정 2020-05-03 04:28
파도가 쓸어온 먹을거리를 모아 미역국을 끓였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파도가 쓸어온 먹을거리를 모아 미역국을 끓였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농사가 시작되는 이른 봄입니다. 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가 어둑어둑할 때에 수제비나 끓여먹어야 하겠다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동원훈련 갔던 작은오빠가 한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파랗고 올이 길고 잘생긴 미역을 한 아름 메고 왔습니다. 우물집댁이랑 친척 아주머니가 이 집 아들은 어디서 미역 장사를 하다 오는갑소, 하면서 따라왔습니다.

어머니는 수제비 끓이려던 물을 솥에서 도로 퍼내고 밥을 안칩니다. 미역 단을 푸니 비쩍 마른 북어 두 마리가 싸여 있습니다. 마른 문어도 한 마리 나왔습니다. 큰 버럭지에 미역 큰 것 한 올을 다 담갔습니다. 금세 불어납니다. 미역 줄기가 큼직하고 파랗고 파들파들한 것이 바다에서 금방 건져올린 것 같습니다. 미역 한 올이 큰 버럭지에 가득 찼습니다. 어른들은 애를 낳을 적에도 이렇게 좋은 미역은 못 먹어봤다고 합니다.

미역 올이 얼마나 큰지 삼분지 이는 국을 끓입니다. 들기름에 들들 볶다가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쌀뜨물을 받아 넣습니다. 북어 한 마리 찢어 넣고 미원을 반 수저 넣어 버글버글 센 불에 끓이다가 약한 불로 은근히 끓입니다.

미역국이 정말 부드럽습니다. 넓적한 미역 줄기도 얼마나 맛있는지 모두 먹고 더 먹고 합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미역국은 처음 먹어본다고 얘기하며 먹습니다. 남은 미역은 초장에 쌈을 싸먹었습니다.

1968년 이른 봄, 작은오빠는 제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원훈련에 소집됐습니다. 간첩 김신조 때문에 예비군이 창설되기 한 달 전 일입니다. 작은오빠는 처음엔 동원훈련 가는 것이 싫고 억울했습니다. 그것도 평창에서 아주 먼 삼척 근덕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작은오빠는 갈 적에는 고개를 타래미고 억지로 갔는데 막상 가보니 시원스럽게 파도치는 바닷가였습니다. 작은오빠는 산골 강가에서만 살다가 바다를 보니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고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훈련 막사는 바로 바닷가였습니다. 한 밤을 자고 다들 잠든 별이 반짝이는 이른 새벽에 바닷가를 홀로 거닐었습니다. 어렴풋이 무언가 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역이 돌자갈밭에 널려 있었습니다. 작은오빠는 정신없이 주워 모았습니다.

물이 줄줄 흐르는 미역을 옷을 다 적시며 한 아름 안고 막사로 왔습니다. 아침 반찬으로 물미역 쌈을 먹었습니다. 물미역이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날도 일찍 바닷가에 나가 미역을 한참 주워 모으고 나니 사람들이 몰려나왔습니다.

어떤 할머니 이야기로는 미역을 여러 장 겹쳐서 말리면 마른 미역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작은오빠는 사람들이 잘 올라가지 못할 바닷가 험한 바위 위로 미역을 가지고 올라가서 바위에 미역을 길게 여러 장씩 붙여 말렸습니다. 미역을 안고 바위로 올라가다가 쭐적 미끄러져 바다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답니다.

천성이 부지런한 작은오빠는 한 달 내내 새벽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파도가 쓸어온 먹을거리들을 모았습니다. 파도에 휩쓸려왔다가 못 돌아간 명태도 두 마리나 주워 말렸습니다. 한번은 바닥에 뭐가 꾸물꾸물하는 게 있어 만져보았는데, 갑자기 철썩 손에 달라붙었습니다. 문어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자니, 지나가던 남자애가 다가와 손에서 문어를 떼어내 머리를 홀랑 뒤집어 먹물을 쏟아내고 바닷물에 설렁설렁 헹궈서 주었습니다. 작은오빠는 문어도 말려가지고 왔습니다.

근덕 바닷가는 미역이 자라는 바위들이 있어서 미역바위마다 임자가 따로 있었답니다. 작은오빠는 동원훈련이 끝나는 날 미역을 새끼줄로 꽁꽁 묶어 억지로 둘러멜 만큼 많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새벽마다 미역을 주워 말리느라고 훈련이 힘든 줄도 모르고 한 달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고 지냈다고 합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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