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철이 아부지는 호박잎쌈을 안 먹습니다. 호박잎을 보기만 해도 속이 뒤틀리고 메스껍다고 합니다. 자기만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도 영철이 아부지 보는 데서는 호박잎쌈을 못 먹습니다. 자기 마음 같아서는 아예 호박을 심지도 않았으면 좋겠는데 가족을 위해서 호박을 심습니다. 영철이네 가족은 아부지 없는 틈을 타 몰래 호박잎을 쪄서 얼른 가만히 먹고 치웁니다. 누구네 집에서도 호박잎이 상에 올라오면 밥을 안 먹고 일어나버리는 영철이 아부지도 처음부터 호박잎쌈을 싫어한 건 아니었습니다.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어느 여름날, 동네 어르신이 편찮으셔서 친구 몇 명과 문병을 갔습니다. 잠깐 문안만 하고 오려고 했습니다. 어르신은 사람을 보자 너무 반가워서 놔주질 않습니다.
여보게들 점심을 먹고 가게. 어르신 바빠서 가봐야 되겠는데유. 비도 오는데 잠깐이면 점심이 되네. 먹고들 가게. 며늘아 며늘아~ 부릅니다. 예, 아버님. 얼른 점심 좀 하거라. 아버님 나무가 젖었는데유. 섣달 가뭄에 돌은 안 타도 섣달 장마에 나무는 탄단다. 어서 점심을 해서 차려온나, 하십니다.
며느리는 할 수 없이 점심을 합니다. 어르신네 집 남자들은 게을러서 언제나 땔감이 궁색스럽습니다. 반찬거리도 변변찮습니다. 며느리는 아궁이 앞에 엎드려 눈물을 찔금찔금 흘리며 불을 붙입니다. 날씨는 점점 어두컴컴해지고 비가 쏟아부을 것 같습니다. 연기가 굴뚝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부엌 바닥으로 낮게 깔립니다. 불을 붙이는 며느리는 연기 속에 묻혀 억지로 억지로 한참을 고생해 불을 붙였습니다.
며느리는 비를 구죽죽이 맞으며 풋고추를 따옵니다. 울타리에 돌아다니며 호박잎을 뜯어 나릅니다 어린 고추는 밀가루를 무쳐놓습니다. 뚝배기에 막장을 빠듯하게, 매운 고추 쫑쫑 썰어 넣고 파 쫑쫑 썰어 넣고 마늘 넣어 준비합니다. 호박잎은 실을 앗아서 씻어놓습니다. 미리 지펴놓은 아궁이의 나무는 잘 타기 시작합니다.
보리밥은 물 조금 붓고 아이(첫 번째 끓이는 것) 한 번 끓여 물을 더 붓고 잠시 불을 멈춥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끓여 보리쌀이 완전히 퍼지면 그 위에 쌀을 안칩니다. 밥이 쏭쏭 잦아 내려갈 때 밥 위에 한쪽으로 막장 뚝배기를 얹습니다. 밀가루 무친 고추도 옆으로 얹고 호박이파리도 한쪽으로 밥솥 위에 얹어 찝니다. 이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조금 있다가 호박잎을 꺼내야 맛있는 쌈을 먹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면 누렇게 되거나 너무 물러 못 먹게 됩니다.
시아버지는 아직도 멀었나? 뭘 그렇게 꿈적거리나, 하며 성화를 댑니다. 며느리는 예, 아버님 곧 가져가유~ 합니다.
보리쌀에 오다가다 쌀이 한 알씩 보이는 고실고실한 보리밥입니다. 파랗게 찐 호박잎에 막장쌈은 정말 맛있습니다. 호박 막장국에 열무김치도 맛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습니다. 영철이 아부지가 마지막 호박잎을 펴 손에 올려놓는데 손구부렁이 같은 깨망아지가 빨갛게 익은 게 발을 쏭쏭 쳐들고 발라당 붙어 있습니다. 잘못했으면 밥상에다 웩 토할 뻔했습니다. 어디다 감출 데가 없습니다.
누가 보지 못하게 손을 오므렸습니다. 영철이 아부지는 이걸 어떡하나, 애써 점심한 이 집 며느리가 알면 얼마나 민망해할까, 시아버지가 알면 얼마나 수다스럽게 며느리를 들들 볶을까. 고민하다 막장에 꾹 찍어 몇 번 꾹꾹 깨물어 꿀꺽 삼켰습니다.
뭐 맛이 그렇게 고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속이 메스꺼운 게 토할 것 같습니다. 어르신 점심 잘 먹었습니다. 얼버무리고 얼른 일어서 옵니다. 원 사람 기껏 점심 잘 먹고 삐친 사람처럼 가나, 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막 뛰어서 길가에서 웨웩 토합니다. 손가락을 목에 집어넣어 토합니다.
그 뒤 영철이 아부지는 호박잎을 아니 호박을 생각하고도 싶지 않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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