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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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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가 달걀을 깨뜨려도 좋소

가마솥에 부드러운 달걀찜 쪄내 이웃 대접하며 허허 하하 호호~
등록 2016-03-31 19:18 수정 2020-05-03 04:28
달걀찜은 부드러워야 제맛이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달걀찜은 부드러워야 제맛이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원내네 집은 마당가로 길이 난 집입니다. 원내네 집 툇마루는 지나다 걸터앉아 쉬어가기 좋습니다. 사람들은 원내네 마루에서 쉬다가 어린 원내를 보면 뭐든지 나누어주고 갑니다. 자연히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친한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원내 어머니는 어린 원내를 데리고 닭을 키웁니다. 닭들은 어린 원내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이른 봄 병아리를 까서 원내와 같이 손끝에서 키우다보니 닭이 되어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닭들은 원내만 얼씬하면 모여들어 서로 안기려고 합니다. 암탉은 안아줄 만한데 수탉은 너무 무거워 안아주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안겨 아가 힘들어합니다.

원내 어머니에게는 달걀 광주리가 따로 있습니다. 달걀을 열심히 모아 짚 꾸러미에 싸서 팔아 용돈으로 씁니다.

장날입니다. 원내 어머니는 달걀 광주리를 마루에 내어놓고 달걀 꾸러미 쌀 짚을 가지러 갔습니다. 다섯 살 난 원내보고 잠깐만 달걀 광주리 옆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원내 어머니가 잠깐 비운 사이 닭들이 모여 왔습니다. 원내는 달걀로 닭을 때립니다. 달걀이 털썩 떨어져 깨집니다. 원내는 깔깔 웃습니다. 또 달걀을 들어 닭한테 던집니다. 닭들은 깨진 달걀을 먹느라고 난리입니다. 달걀 맛을 본 닭들은 달걀 광주리에 올라서 짓밟으며 먹습니다.

원내는 닭하고 싸우느라 얼굴이 시뻘게져서 달걀을 던집니다. 힘들어서 울상이 돼 힘이 다 빠진 팔로 억지로 던지고 달걀이 털썩 깨지면 깔깔 웃으며, 뭐 꼭 다 깨야 되는 것처럼 던집니다. 원내 어머니가 짚을 가지고 왔을 때는 이미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어떤 닭은 달걀을 뒤집어써 누런 달걀물이 줄줄 흘러내리기도 했습니다.

원내 어머니는 아를 혼내주려고 했는데 웬 웃음이 그렇게 나는지, 허허 하하 하하 호호~.

허리를 잡고 웃습니다. 한참을 웃다 정신을 차리고 달걀 광주리를 보니 거의 다 깨지고 금이 가고 성한 것이 없습니다. 어이가 없고 난감합니다. 식구도 많지 않은데 이 달걀을 다 어떡하나 고민하다 친하고 신세 진 사람들을 불러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에 가는 건 접어둔 채 큰 대야를 찾아오고 물도 한 양푼 퍼오고 행주도 가져오고 분주합니다.

깨지고 금이 간 달걀을 잘 씻고 닦아 대야에 모아 담습니다. 나무젓가락으로 코 같은 것을 뜯어내고 가위로 자르면서 곱게 젓습니다. 큰 대야에다 넣고 달걀양의 반만큼 물을 붓습니다. 감자가루를 섞고 소금도 약간 넣어 고운 체에 걸러줍니다. 파를 한 아름 다 썰어 넣습니다. 당근도 한 바가지 곱게 채를 쳐서 넣습니다. 돌미나리도 뜯어다 놓습니다.

큰 가마솥에다 엉그레를 지르고 넓은 장독소래기를 서너 개 올려놓아 먼저 김을 확 올립니다. 바짝 달아오른 장독소래기에 들기름을 바르고 잘 풀어놓은 달걀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부어 안칩니다. 가마솥 뚜껑을 덮고 한 김 확 오른 다음에 열어 미나리 잎으로 무늬를 놓습니다. 통깨도 뿌리고 실고추도 위에 뿌려 꺼냅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달걀찜은 조금 식힌 다음에 칼로 가생이를 살짝 돌려 그어서 쏟으니 장독소래기에 붙지 않고 예쁘게 떨어집니다. 썰기 전에 위에다 참기름을 바릅니다. 네모지게도 썰고 마름모꼴로도 썰어 큰 접시에 수북수북 담아냅니다.

아주 멋쟁이 달걀찜이 되었습니다. 고소하고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고 좋아합니다. 원내 어머니는 이웃 사람들한테 깨진 달걀로 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대접하려고 만든 것처럼 많이 드시라고 권합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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