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세상을 떠난 독립연구자 박성관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철학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은 드물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같은 난해한 서양 철학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공자의 ‘논어’나 노자의 ‘도덕경’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철학 고전이라 해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려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충 그런 내용이겠거니 짐작하는 데 그칠 뿐이다.
중국계 미국인 에스에프(SF) 소설가 켄 리우 역시 한때 그러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어린 시절 중국에서 자랄 때 일상에서 쓰는 관용어를 통해 마치 공기처럼 노자의 사상을 호흡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정작 ‘도덕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분열과 증오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더 이상 미래를 상상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도덕경’을 읽기 시작한다. “날카롭되 베지 않았고, 정의롭되 판단하지 않았으며, 희망을 품되 달콤하지 않은” 노자의 문장은 그의 마음을 울렸고, 마침내 직접 번역하고 해설을 단 ‘길을 찾는 책 도덕경’(윌북 펴냄, 황유원 옮김, 2025년)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오래된 철학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대체 어떠하기에 그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일까? “하늘과 땅은 자애롭지 않다. 그 둘에게 우주의 만물은 짚으로 만든 개나 마찬가지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며 딱히 위로하지도 위안을 건네지도 않는 노자의 철학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지음, 황유원 옮김, 윌북 펴냄, 2025년
노자가 글을 쓰던 ‘전국’(戰國)시대는 말 그대로 전쟁의 시대였다.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고 모든 이가 전란에 휘말리던 가운데 노자는 혼란과 고통에서 빠져나와 조화와 평화로 향하는 길을 모색했다. 분열과 증오에 몸서리친 현대의 소설가가 위안을 얻은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이미 무수히 많은 ‘도덕경’ 번역본이 존재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판본을 더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켄 리우는 소설가답게 문학적 비유로 답한다. “민들레는 이미 천 송이의 다른 민들레가 피어나고 있더라도 자신이 피어나는 데 별다른 이유를 요하지 않는다.” 그가 새 번역을 내놓는 데도 큰 이유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사랑하고 그로부터 인생의 길을 배웠기에 그 배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물론 학자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번역일 수 있지만, ‘도덕경’을 완독하지 못했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소박한 번역이 오히려 가치가 있다. 훌륭한 고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책을 실제로 읽어내는 경험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본’이라 인정받는 번역이 모든 독자에게 같은 울림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다. “수천 번의 번역 후 이루어진 이 번역이 다른 번역은 이루지 못한 방식으로 당신의 마음을 건드릴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나?”
켄 리우가 대담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바탕에는 노자의 사상이 있다. 도가에서는 말과 글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한다. ‘도덕경’의 첫 구절부터가 그렇다.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말과 글은 살아 있는 지혜의 그림자나 흔적에 불과하다. 무수히 많은 기존의 번역도, 켄 리우의 번역도 이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그렇기에 모든 주석을 담아내려는 난해한 번역보다 현대인의 삶에 스며드는 쉬운 번역이 때로는 더 좋은 번역일 수 있다. 최소한 ‘도덕경’의 번역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오래된 글을 박제된 유물처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노자가 추구한 참된 도의 모습이 아닐까.
켄 리우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모든 번역은 우리가 공유하는 큰 ‘길’ 위에 번역가가 남긴 하나의 발자취일 뿐이며, 모든 독자는 그 발자취를 따름으로써 도에 이르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학책을 읽고 번역하는 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언어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되, 그 문장을 통과해 스스로 말하려는 태도다. 번역가의 내면을 충실히 통과해나간 번역은 타인의 길에서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는 것으로 끝난다.

하타나카 나오시가 평생에 걸쳐 번역한 스피노자의 저작들. 출처 일본 스피노자협회 회원 누리집
물론 동시대인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번역이 필요하다고 해서 ‘정본’을 향한 집요한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정본을 만들기 위해 자기 생을 통째로 던진 번역자들의 이야기를 보태보자.
일본의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스피노자와 들뢰즈를 전공한 학자다. 그는 최근 ‘하타나카 나오시 전문집(全文集)’(고단샤 펴냄, 2022년)에 해설을 쓰며, 일본에서 수십 년간 스피노자 저작의 정본으로 통용된 번역본을 홀로 만들어낸 하타나카 나오시(1899~1980)의 치열한 삶을 소개했다. 하타나카가 번역을 수행한 방식은 숙연함마저 자아낸다. 그는 평생 척추결핵이라는 병고와 싸우며 침상에서 스피노자의 전 저작을 번역해냈다.
고쿠분 고이치로는 자신이 학생 시절부터 줄곧 친숙하게 읽어온 스피노자 ‘에티카’의 그 정갈한 일본어 문장이, 침대 위에서 몸을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던 하타나카가 입으로 읊고 그의 부인이 곁에서 받아 적어 완성된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고쿠분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처럼 말은 전해지는구나 하는 아득한 사실 앞에서 나는 마치 처음 바다를 본 아이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무엇이 하타나카를 생을 건 번역 작업으로 이끌었을까? 하타나카의 회고에 따르면, 철학책 번역은 그가 삶의 벼랑 끝에서 붙잡은 마지막 생명줄이었다. 촉망받는 법대생이던 그는 불치에 가까운 병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는 인간이 만든 법을 해석하는 일보다 신의 법을 탐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만난 ‘에티카’는 엄숙한 범신론과 결정론, 그 위에 세워진 독특한 윤리설로 위로가 되었다. 몇 차례나 무너질 뻔했던 정신생활을 지탱해준 기둥이 바로 스피노자였던 셈이다.
하타나카는 스피노자를 라틴어 원전으로 직접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고, 라틴어와 네덜란드어를 배워 스피노자의 저작을 한줄 한줄 읽어간다. 병약함과 고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하타나카는 마침내 이렇게 결심한다. “생활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나와 깊이 닮은 이 고고한 철학자를 평생의 반려로 삼자. 병이 허락하는 한 그의 전 저작을 번역하고, 전기를 쓰고, 철학을 해설해 세상에 내놓자.” 하타나카는 철학책을 읽고 번역하는 일에서 자신만의 길을, 무엇보다 부서지지 않는 삶의 의미를 찾아냈다.

‘물리학의 탄생과 루크레티우스의 텍스트’, 미셸 세르 지음, 박성관 옮김, 디브이파트너즈 펴냄, 2025년
철학은 플라톤과 공자, 칸트와 헤겔 같은 ‘천상의 철학자들’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들의 사유를 자신의 삶과 몸으로 옮겨낸 번역자의 헌신이 없었다면 과거의 철학들은 결코 지금 여기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최근 우리 곁을 떠난 박성관(1967~2024) 선생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재야에서 철학책 번역과 집필, 강의에 매진했던 그는 비범한 독립연구자이자 치열한 번역자였다. 그는 고대 원자론과 현대 카오스 이론의 연결을 탐구한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고전 ‘물리학의 탄생과 루크레티우스의 텍스트’(디브이파트너즈 펴냄, 2025년)를 오랫동안 우리말로 옮겼으나, 끝내 생전에는 출간을 보지 못했다. 사후에야 동료들에 의해 유고 번역본이 세상에 나왔다. 암 투병 중 그가 써 내려간 옮긴이 후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첫 번역서를 낼 때부터 ‘원서보다 나은 물건으로 만들겠다’라는 심정으로 작업했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 싶으시겠지만, 내 안에서는 그런 마음이 싹텄고 그때 이후로 그 마음을 저버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할 것임을 진즉부터 예감했다. 객관적으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애를 썼다. 훈련 때 흘린 땀만큼, 전투에서 피를 덜 흘린다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번역 작업에 공을 들일수록 한국어 독자들의 독서는 더 깊고 풍부해질 것이며 ‘우리’의 상상력은 불꽃이 튈 거라 생각했다.”
이 올곧은 마음 앞에서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하타나카 나오시와 박성관, 이들이 자신의 생과 맞바꾸며 일궈낸 번역 덕분에 후대 사람들이 더 수월하게 철학의 세계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철학의 번역이란 단순히 문자를 치환하는 과정에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생애를 통째로 통과시켜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다시 묻자. 오래된 철학책을 읽고 번역하는 일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일까? 박성관의 후기를 빌려 답하자면 이렇다. 그것을 자연이라 하든, 도라 하든, 물리학이라 하든, 인간을 우주의 거대한 질서 속에 놓인 존재로 보는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세상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하니 이러이러하게 살아가면 좋다, 그것이 우리가 최악의 고통과 폭력에서 벗어나 평화와 행복 속에 살아가는 길이요 이치다.”
노자와 스피노자와 미셸 세르, 그리고 켄 리우와 하타나카 나오시와 박성관.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들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철학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유와 삶이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철학의 원점에는 세상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있고, 그에 맞게 삶을 꾸리려는 결연한 인생의 태도가 있다. 철학책을 읽고 번역하는 일이 주는 위안의 본질은 그 굳건한 의지에 있을 것이다. 노자가 말했듯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데는 강인함이 필요하다(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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