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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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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가루 넣고 국 끓이니 고기맛이 나네

공씨 댁 반찬은 어쩜 그렇게 맛있었을까… 1960년대 주방의 필수품이었던 마법의 가루
등록 2016-05-13 17:26 수정 2020-05-03 04:28
미원의 원료가 뱀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거부감을 가지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집집마다 미원을 넣지 않으면 음식이 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박승화 기자

미원의 원료가 뱀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거부감을 가지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집집마다 미원을 넣지 않으면 음식이 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박승화 기자

횡성집은 도시에 사는 친척이 많습니다. 항상 도시 사는 친척들이 오가며 새롭고 좋은 것을 많이 갖다줍니다. 횡성집 댁은 반찬 잘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횡성집 댁이 뭐이나 해놓으면 꿀드라미를 잡아다 넣었는지 꿀드리~한 기 맛있다고 합니다.

아무도 모를 적에 그 집은 시내 사는 친척들이 아지나모도(조미료)를 날라다주었습니다. 뒤늦게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명절 때 아지나모도를 사다 떡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혹시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잊어버릴까봐 손바닥에 써가지고 들여다보며 가서 사왔습니다. 떡만둣국에 아지나모도를 넣고 끓였더니 고기 한 점 넣지 않았는데 고기를 넣은 것같이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국물도 남기지 않고 알뜰히 먹었습니다. 아지나모도가 비싸서 명절 때나 조그만 것 한 봉지 사서 손님이 오면 약처럼 조금씩 넣어 먹고 살았는데, 1960년 추석 때 미원 세트를 선물받고부터는 꾸준히 미원을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미원은 아지나모도처럼 비싸지 않고 맛이 있어 집집마다 미원을 먹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말 미원을 처음 먹기 시작할 적에는 말도 많았습니다. 미원은 뭐로 만들어서 고기맛이 나나? 미원은 뱀가루로 만들었대~ 그런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모심기를 하거나 타작을 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점심을 먹습니다. 특별히 반찬 솜씨가 좋은 공씨네가 제일 먼저 모심기를 하는 날입니다. 동네 촉새 할머니는 이집 저집 다니며 할끔할끔 눈치를 살핍니다. 이 집은 오늘 뭘 맛있는 걸 하나, 하며 할끔거리며 가더니 친구 노인들한테 말합니다. 나는 오늘 공씨네 집에 점심 먹으러 안 갈 거여. 왜? 내가 보니까 음식마다 뱀가루를 넣고 하잖여. 그 말 때문인지 일 때면 꼭 오시던 노인 몇 명이 안 오셨습니다.

일꾼들이 먼저 밥을 먹고 동네 할머니들과 아낙네들이 한창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공씨 댁은 참 솜씨가 그만이여 어떻게 반찬을 이렇게 맛있게 하나? 칭찬을 아끼지 않고 먹습니다. 짓궂은 청년들이 에에이~ 그거 뱀가루를 넣고 해서 맛있는 건데~ 그전에 어른들이 뱀을 삶아 먹을 때 먹어봤는데 미원 맛하고 똑같았어.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 나도 먹어봤는데 똑같았어. 비위가 약한 어른들과 아낙들이 우웩 우웩 하면서 밥 먹다 말고 뛰어나가서 창자에 똥물이 올라오도록 토했습니다.

미원을 안 먹겠다고 끝까지 버틴 집이 몇몇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집에서 밥을 먹으니 잘 모르는데 남자들은 남의 집 일을 돌아가면서 하다보니 자연히 미원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미원 안 쓰는 집 남편은 원 쥐꼬리를 만졌는지, 이걸 반찬이라고 했나? 통 맛이 있어야 먹지. 일하러 가는 남편이 성을 내고 아침밥을 안 먹고 갑니다. 하루이틀이지 날마다 남편이 밥을 안 먹고 반찬 타박을 하니, 에라 모르겠다, 뱀가루면 어떠냐. 남들도 다 먹는 건데. 끝까지 안 먹겠다 버티던 몇 집도 다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말도 많던 미원이 이제는 집집마다 미원을 넣지 않으면 음식이 되지 않습니다. 나물무침이나 국, 김치에도 미원을 조금씩 넣어야 감칠맛이 났습니다. 어느 날인가 미풍이 나왔는데, 사람들은 미풍은 거저 줘도 먹기를 꺼렸습니다. 분명 미풍 봉지를 들고도 거기 미원 봉지 좀 달라고 합니다.

미원을 만든 양반은 참으로 훌륭한 양반이여~. 아는 소리를 잘하여서 ‘군수’라는 별명이 붙은 아랫마을 사람 이야기로는 1955년 미원 사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아지나모도 회사를 만든다고 입사광고를 냈답니다. 누구든지 아지나모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아는 대로 자세히 기록하여 제출하라고 하였답니다. 며칠을 모집하고 면접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답니다. 많은 자료가 모아지자 가만히 냅다 빼와서 미원을 만들었다잖여~. 믿거나 말거나 아랫마을 군수가 앉으면 하는 미원 얘기였습니다.

*얼마 전 대상그룹 창업주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옛날 미원을 처음 먹던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미원에 관한 소문은 당시 시골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것으로 아무 근거가 없음을 밝힙니다. 미원이 있어 맛있게 살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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