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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이런 커다란 비극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상에서는 웃다가도 돌아서면 곧 분노의 눈물이 흐르는, 제정신인 사람들이라면 모두 ‘조울증’을 앓고 있는 지금이다. 그러니 아무리 못해도 몇 시간은 걸려 읽어야 하는 책을 손에 집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박노자 선생님이 세월호 앞에서 ‘말의 한계’를 토로했다. 책 만드는 사람들도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자조 어린 말로, 이런 세상에 책은 만들어 뭐하겠냐고 한다. 그러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은 길고,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이유’로 집단 살인을 겪지 않는 정도만 겨우 면한 수준임이 밝혀졌으니,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데 필요한 도구 중 하나가 책이고, 책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세월호의 비극을 잊지 않도록 백서를 발간하자’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는 책을 내자’ 등의 제안을 곳곳에서 한다. 그런데 솔직히 그 귀한 제안에 반색보다는 난색이 앞선다. 아주 단순한 이유다. 책을 만드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데, 내일 당장 어떤 엄청난 사실이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8년 봄이었다. 우석훈 선생님으로부터 새벽에 전화가 왔다. 아무리 봐도 MB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망할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책을 빨리 내야겠다고. 2주 안에 원고를 쓸 테니, 2주 뒤에 책을 낼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정말 4주 만에 책이 나왔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그해 5월, MB 정부는 4대강 문제는 시작도 되기 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로 뒤집어졌다.
그런데 꼭 촛불집회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원고에 ‘4대강에 반대한다’는 제목을 붙일 수는 없었다. 그건 시사 잡지의 특집 제목은 될 수 있어도 두고두고 읽을 책의 제목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제목의 힌트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맸고, 어느 헌책방에서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라는 독일의 생태주의 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책은 구불구불한 강마저 직선으로 바꾸는 대한민국의 속도·성장·개발주의를 바꾸자는 의미에서 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얼마 전 이 제목이 한국 사회의 속성에 대한 메타포로 쓰이는 걸 보면서 당시 기억이 다시금 났다. 그때 느낀 건 책은 방송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의 역할도 하지만, 그보다 오래 벼르고, 보다 깊이 있는 언어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앞에서 아프고 분노하지만, 동시에 무겁고 어렵기도 하다.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이 하는 일이 함께 읽기를 바라는 좋은 글을 추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 한다. 그게 쌓이고 쌓이면 이 후진 대한민국을 엎을 새로운 저자도 많이 나올 것이다. 누가 그런 이가 될지, 어떤 가치를 담은 책이 그 신호탄이 될지, 나는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을 보면서 기다린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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