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쉐 포럼의 한 장면.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여름마다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진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농민시장 ‘농부시장 마르쉐@’에서는 ‘지구농부포럼’을 만들었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생태적인 고민을 먼저 하며 농사를 이어나가는 마르쉐 출점 농민들을 ‘지구농부’라고 명명하고 기후위기와 농사 현장 경험을 공유하자는 의미에서다.
2025년 2월에도 ‘땅으로부터 사람까지 연결을 만드는 지구농사’라는 제목으로 네 번째 지구농부포럼이 열렸다. 올해는 마르쉐에 출점하는 농민들이 연사로 나서 자신들의 도전적인 농사 방식으로 땅을 돌보는 방법을 공유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며 에너지든 생산비든 농사에 들이는 투입을 적게 하고, 다년생 작물을 길러 먹거리 숲으로 나아가는 ‘꽃비원’. 닭이 주는 모든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퇴비와 먹거리로 순환하는 ‘파파팜’. ‘자란다팜’의 박정자 농민과 ‘초록손가락’ 안성선 농민은 서울 근교 경기도에서 농사지으며 다양한 요리사, 시민들과 협업하며 연결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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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에 참가한 농민들은 모두 동네에서 “그건 농사가 아니다”라는 온갖 조언과 뒷담화의 대상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공통으로 꺼냈다. 하지만 마르쉐에 오면 땅을 갈지 않고, 비닐 대신 녹비작물을 길러 땅을 덮고, 다양한 작물을 조금씩 심는 것이 너무나 일반적이라 자신의 농사 경험을 주고받는 게 매우 의미 있다고 했다. 신념을 지키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나 같은 시민도 용기와 힘을 얻는다. 나도 언젠가는 이들처럼 농사지으며 살아갈 수 있겠구나.
어제 나는 오랜만에 주인 할아버지와 조우했다. 지난 폭설에 공동 텃밭에 있던 하우스 일부가 무너져 내려 보수하러 온 차에 나와 마주친 거다. 그동안 주인 할아버지와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를 껄끄러워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지난 3년 동안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이렷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 이제는 밭에 한가득 쌓인 커다란 폐기물 더미를 치워주겠다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다시 한번 말하니 아들이 내게 와서 묻는다. “그런데 왜 이쪽 밭을 써요?” “저도 알아요. 여긴 해도 들지 않고 쓸 만한 밭이 아니란 거. 그런데 땅을 안 갈고 쓸 수 있는 밭이 딱 여기뿐이라 하셨으니까요.” “왜 땅을 안 갈아요? 내가 농사지은 지 몇 년인데, 밭을 안 갈고 어떻게 농사를 짓는다고.” 상대는 나보다 더 경력이 많은 진짜 농민이다. 아직 풀 한 포기 안 난 밭에 서서 이야기 나눠봐야 서로의 신념이나 자부심 같은 것만 긁을 테니까, 약속을 지켜주고 쓰레기 없는 쓸 만한 땅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하고 서둘러 대화를 마쳤다.
오늘은 모종을 살피러 밭에 나갔다 하우스를 보수하면서 잔뜩 쌓인 쓰레기를 보며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하지만 다시 쓰레기 봉지를 꺼내 눈앞에 있는 작은 것들은 주워 담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농사를 포기하는 것이 내게 가장 큰 손해니까. 그래도 군데군데 연둣빛 풀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마음이 설렌다. 지난 마르쉐 포럼에서 들었던 자란다팜의 박정자 농민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농사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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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세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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