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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도 스트레스도 말 타며 날려볼까

말을 타며 마(馬)음 치유하는 재활 승마센터… 척추측만증도 불면증도 스트레스도 저 멀리
등록 2025-03-21 16:48 수정 2025-03-24 10:59
이찬주씨가 2025년 3월9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 일산승마 마음치유&트레이닝센터 마장에서 파인데이와 함께 놀고 있다.

이찬주씨가 2025년 3월9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 일산승마 마음치유&트레이닝센터 마장에서 파인데이와 함께 놀고 있다.


좋은 날에 춤추는 게 아니라 ‘좋은 날’과 춤춘다. 도심과 멀지 않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 승마장에서 이찬주(37)씨가 ‘파인데이’라는 이름의 다섯 살배기 말과 놀고 있다. 말이 좋아하는 당근을 몸 뒤로 감추고 달리다가 데이가 쫓아와 콧김을 내뿜으며 얼굴을 들이대면 한 조각씩 내어준다.

정부 부처에서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어려서부터 척추측만증을 앓아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르고 골반도 틀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족들이 승마를 권했는데, 입시 등 학업 때문에 엄두를 못 냈다. 3년 전 인천에서 승마를 시작해 이곳으로 옮긴 지는 1년 정도 됐다.

이곳의 이름은 사람과 말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다잡는단 뜻에서 ‘일산승마 마(馬)음치유&트레이닝센터’다. 무선 헤드셋을 착용한 이씨는 데이와 함께 달리면서 기승 자세(말을 타는 자세)와 기승술에 대해 코치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데이가 왜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는지 묻고 답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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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주씨가 머리에 헤드셋을 쓴 채 파인데이와 함께 달리고 있다.

이찬주씨가 머리에 헤드셋을 쓴 채 파인데이와 함께 달리고 있다.


안장에서 내리면 데이와 함께하는 휴식시간이다. 마장을 함께 뛰어다니며 가쁜 숨을 함께 내뿜는다. 때론 마방에 들어가 목욕을 시키기도 한다. 이씨는 2024년 성탄을 마방에서 보냈다. 얼마 전 정형외과에서 엑스(X)선 사진을 찍었더니 양쪽 다리 길이의 차이가 사뭇 줄었다. 정책학 박사과정 논문을 쓰고 있는 이씨가 업무와 학업으로 빈틈없는 시간을 쪼개 이곳에 오는 이유는 또 있다. 데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스트레스가 사라진 걸 실감한다.

마장 옆 작은 트랙에서 비명에 가까운 높은 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온다. 그 주인공은 아직 말 등에 오른 지 10회가 채 안 된 회사원 김주희(32)씨다. 코치가 고삐를 쥔 9살 말 ‘미스터 햇빛’의 등에 앉아 미니 트랙을 도는 게 마음같이 쉽지 않다.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불면증이 심했던 김씨는 2024년 가을 이곳을 찾았다. 처음에는 장화를 신고 마방에 들어가 변을 치우는 등 청소를 하고 말과 함께 산책하는 정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첫날 김씨는 숙면을 경험했다. 육체노동에서 오는 피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꾸준히 마방을 드나들자 자신의 냄새를 기억하는 말들이 다가와 치대며 알아봐줄 때 김씨는 편안한 안정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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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씨가 미스터 햇빛의 등에 올라 트랙을 도는 동안 고삐를 쥔 신지혜 코치의 반려견 신쵸가 옆에서 놀고 있다.

김주희씨가 미스터 햇빛의 등에 올라 트랙을 도는 동안 고삐를 쥔 신지혜 코치의 반려견 신쵸가 옆에서 놀고 있다.


좀더 용기를 내 승마에 도전한 첫날, 김씨는 귀갓길에 운전대를 부여잡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잠을 쫓아야 할 정도였다. 차츰 줄여가던 수면유도제를 이제 끊었다. 김씨가 조심스레 말을 타는 옆에서 코치만큼 열심히 지켜보며 때론 함께 달리기도 하는 신쵸는 여섯 살이다. 햇빛의 고삐를 쥔 신지혜 코치의 반려견이다. 이곳에서 말들과 숙식을 함께한다.

“햇빛은 호기심이 많고 애교가 넘친다. 데이는 차분하고 온순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하다.” 신 코치가 귀띔한다. 이들의 성격에 맞는 재활 승마자를 정하고 말과 사람이 서로 교감한다. ‘햇빛’ 드는 ‘좋은 날’과 춤추는 이유다.

이찬주씨가 2024년 성탄절을 앞두고 산타 모자를 쓴 미스터 햇빛과 마방에서 쉬고 있다. 이찬주씨 제공

이찬주씨가 2024년 성탄절을 앞두고 산타 모자를 쓴 미스터 햇빛과 마방에서 쉬고 있다. 이찬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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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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