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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재미있다고? 제목이 뭔데?” “음, 그게….”
“그런 주장은 흥미롭군. 저자 이름이 뭐야.” “아, 김? 이? 박?”
“그래서 출판사가 어디니.” “지식의집? 집의지식? 뭐더라?”
한 대선 후보는 학생 시절 책 맨 뒤에 있는 판권까지 꼼꼼하게 읽었다는데, 나는 책 만드는 일이 밥벌이임에도 어찌나 서지 정보에 관심이 없었는지, 심지어 몇 번을 읽어도 저자 이름조차 못 외우는 일이 허다했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보경, 제발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는 좀 외워줘’라며 부탁할 정도였다. 지금은 어떠냐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한 번 눈에 들어오면 제목, 저자, 출간일은 물론 부제목, 띠지 카피, 보도자료의 작은 구절까지 외운다.
붕어보다 못한 기억력이 이렇게 바뀐 이유가 뭘까. 경력이 좀 쌓였다고 뭔가 많이 알게 된 걸까? 아니, 오히려 반대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모르는 것일 때, 호기심이 가는 것일 때 가장 집중한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잡은 물고기 먹이 안 준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엇, 이 또 무슨 삼천포람. 마지막 회에서까지 헛소리로군).
신기하게도 책 만드는 일을 계속하면 할수록 새로운 게 많고, 궁금한 것도 더 많아진다. ‘이 책, 재미있네’가 아니라 ‘이 책이 왜 잘 나가지?’, ‘이건 말이 안 되는 제목인데’가 아니라 ‘분명 이런 제목을 지은 이유가 있을 거야’, ‘이 저자 참 글 잘 쓰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쓰지?’,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니’가 아니라 ‘왜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거지?’ 식으로 생각이 자꾸 바뀐다. 이러다보니 안 그래도 없는 확신은 더 없어지고 있지만 그 대신 재미가 늘었다. 재미가 있으니 굳이 외우지 않아도 외워진다. 이런 걸 보면 책이 잘 나가든 안 나가든, 에디터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직업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좌충우돌 에디팅’이라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출판계 비하인드 스토리도 거의 모르고, 그렇다고 베스트셀러만 골라 만드는 탁월한 능력도 없다. 다만 에디팅이 얼마나 재미있고 모험 가득한 일인지를 알려주면,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좀더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책이라는 물건 자체가 모험과 호기심이다. 신발이나 옷처럼 입어보고 살 수 없고, 영화처럼 두어 시간에 끝나지도 않는다. 오 헨리의 단편 ‘녹색의 문’처럼, 저 안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을지, 위험한 어둠의 세계가 있을지 알 수 없으나, 내 눈을 잡아끈 이 문을 열어 들어가는 것. 그것이 책을 집어들고 읽는 행위가 아닌가.
마지막까지 독서 캠페인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사실은 내부 관계자들만을 위한 말로 끝내고 싶었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책 만드는 일이 좋기만 할 리 없다. 하지만 이 일이 가진 매력에 대해 좀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없어지면, 세상에 아주 큰 즐거움이 사라질 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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