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좋아 읽어서 이로움을 주는 책을 양서(良書)라 한다. 지금도 수많은 편집자들이 양서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이 공부를 해도 별별 학생이 있듯, 가끔 ‘아니, 뭐 이런…’ 하는 이상한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책을 만나면 매우 반갑다. 세상에는 여러 취향의 인간이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대다수가 사실은 소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여러모로 안심이 된다. 아직 해볼 수 있는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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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였다. 점심 송년회를 핑계로 중국음식점에서 팀 전체가 낮술 하는 자리. 명색이 송년회니 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마련한 것이 ‘괴서(怪書) 교환하기’. 맨날 기획회의에서 ‘이런 책 만들어보면 어때요?’라며 요상망측한 제안을 하는 에디터들이니,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취지였다. 더하여 이 기회에 서점에서 다른 분야 책들도 샅샅이 보라는 의도도 있었다. 에디터라 해도 모든 책을 살펴보는 게 아니다. 보통 자기가 만드는 분야만 들여다보고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면 책을 만드는 재미가 떨어진다.
만드는 이만 그런가. 읽는 이도 그렇다. 온라인 서점만 이용하면 어느 순간 책에 대한 만족도가 뚝 떨어져 있음을 느끼는데, 비슷한 이유다. 책도 옷이나 신발처럼 일종의 ‘물건’인데, 열어보고 살펴보지 않았으니 검증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고, 온라인 서점 쪽에서 주로 노출시키는 것만 보게 되니, 다양한 책을 보는 재미도 줄어드는 것이다.
어쨌든 그 괴서 중 몇 권을 소개한다. 여성을 위한 신개념 철학 가이드라는 . 철학교양서 같은가? 이 책의 정체는 니체, 플라톤, 헤겔 등의 철학자들을 순정만화풍으로 그린 꽃미남 화보집이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쉽게 보는 철학 입문서’라고 소개하는데, 여고생들의 필독서가 되면 딱 좋을 듯싶다. 다음으로 큰 호응을 얻었던 책은, 손가락 하나로 해방감을 선사한다는 . 전세계 에디터들에게서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는 이 책은, 어떤 손가락을 써야 하는지, 올바른 손톱 손질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80여 페이지에 걸쳐 코파기 기술을 그림으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 누구도 허무맹랑한 음모론책, ‘허경영류’의 정치책, 과격한 밀리터리북 등은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괴서를 ‘교환’하는 것이었으니, 결국 누군가 받는다고 생각하자 괴서(怪書)를 나쁜 책(惡書)이 아니라 즐거운 책(快書)으로 여긴 것이다. 그렇게 고르는 즐거움, 받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괴서 교환. 여러분도 한번 해보길 권한다. 그러면 최고의 ‘괴서’는 뭐였냐고? 한 명도 빠짐없이 탐냈던 책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에 대한 82가지 부위별 특징 및 용도를 수록한 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고기요리’책이 아니기 때문에 온통 ‘벌건’ 생고기 사진만 가득했다. 그런데 그 책에 그리 군침을 흘리다니! 그래, 회식인데 왜 고기를 안 굽냐는 거잖아. 마음의 양식은 무슨, 고기 먹자. 고지방 고칼로리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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