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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모 갤러리 안에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 멋지게 차려입은 출판사 사 장님과 편집장님 옆에 앉은, 출근한 지 겨우 석 달 된 에디터는 여러모로 설레었 다. 뵙기로 한 분도 워낙 거장이셨지만, ‘오늘도 내 점심은 라면인 건가~’가 주제 가였던 나는 비싼 런치 정식을 보며, 저거 먹으면 며칠 동안 물만 먹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때 착한 편집장님이 메뉴판에서 눈을 못 떼는 나를 보며 “보경씨, 그 거 먹을 일 없을걸” 하며 씩 웃었다.
곧 있으니 선생님이 오셨다. 그리고 메뉴판을 살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토마토 스파게티 주세요.” 이후 일동 모두 토마토스파게티. 수프도 샐러드도 후식도 없 이 4개의 스파게티. 옆 테이블에서는 당시 갓 뜨기 시작한 퐁뒤가 차려지고, 와 인도 따는데…. 그 스파게티 가격은 1만원, 그곳에서 가장 싼 메뉴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실망한 나에게 편집장님이 말했다. “김우창 선생님은 어딜 가시든 거 기서 제일 싼 걸 시키시거든.” 나중에야 이런 일은 세계적인 학자 김우창의 청렴 함과 관련된 숱한 일화 중 일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분만이 아니다. 언젠가 전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 교수님 수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따라 청강했던 수업에서 만난 정진홍 교수님은, 지극히 보수적이나 왠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강의를 하셨다. 그러다 갑자기 인간은 자 기가 가진 가치 이상의 행동을 하면 안 된다더니, 본인의 기준은 자신에게 한 끼 에 1만 원이 넘는 식사는 절대 주지 않는 것이라 했다. 그 말 앞에 ‘에이, 학생들 이 먹는 구내식당의 밥값에 비하면’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사람은 아무 도 안 보는 곳에서도 저 말을 칼같이 지킬 거라 느껴지는 그 강한 카리스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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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소리를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양식이 요즘 잘 안 팔린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고민을 한다. 어차피 많이 안 팔리니, 가격을 좀 올 릴까? 하지만 나는 그저 일용할 백반처럼 그 책이 필요한 이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값을 매기고, 그래서 사람들이 만만하게 구내식당 가듯 서점에 갔으면 좋 겠다.
사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고 책값도 많이 올랐다. 여전히 한국의 책값이 싸다고 는 하지만, 요즘에는 나조차 ‘어, 너무 비싸네’ 하고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 다. 그래서 새 책에 가격을 매길 때마다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기본적으로 가격 은 제작비·원고료·인건비 등의 비용을 고려하면서 결정해야 하겠지만, 과연 이 책은 이 값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나? 나는 그런 책을 만들었나? 나는 밥값은 하 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멋지게 고뇌하는 척하는데, 저기 마케터 후배가 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 표님, 이 책 만드는 데 돈을 이렇게 많이 써놓고, 그렇게 속 편한 소리 할 때가 아 니라고요.” 아, 알았다고. 집에 빨리 가서 김우창 선생님의 을 읽으면서, 내 속이나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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