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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김기춘·남재준·김장수

대통령의 사과와 총리 사퇴로 충분하지 않아
정권 내놓는다는 마음으로 쇄신해야
등록 2014-05-06 05:13 수정 2020-05-02 19:27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5월1일 의 여론조사 보도에 의하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사과가 ‘불충분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62.7%에 달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내각 교체 가능성을 언급했는데도 절대 다수의 국민이 이번 사태에 대통령이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이 대통령을 믿어줄까. 내각 총사퇴가 올바른 해답은 아니다. 애초부터 내각은 ‘핫바지 총리’와 ‘힘없는 장관’의 집합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통령의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려면 권력의 핵심에서 국정 운영을 주무르고 있는 ‘문제적 인물’을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리보다 더 큰 권한의 ‘왕실장’

먼저 대통령을 보필하는 최고책임자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왕실장’이라고 불리는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총리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8월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부터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했고,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으며, 부산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결국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까지 꿰찬 것을 보고 국민은 무엇을 느꼈을까. ‘권력 가까이에만 있으면 과거의 어떤 잘못도 용서된다’는 무서운 교훈이었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이제 다시 ‘책임’이란 게 무엇인지 묻고 있는 국민에게,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책임뿐 아니라 과거 잘못을 덮어둔 책임까지 지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려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등 ‘문제적 인물’을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이정아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려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등 ‘문제적 인물’을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이정아

남재준 국가정보원장도 빼놓을 수 없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기 바로 전날 남 원장은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사퇴 여론이 들끓었지만 사퇴는 하지 않았다.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들은 구속됐고 국정원 2차장은 자진 사퇴했으나 조직의 수장인 남 원장은 살아남았다. 전형적인 ‘리더의 책임 회피’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에서 승객을 팽개치고 살아남은 선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이라도 남 원장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사건뿐 아니라 남 원장은 그동안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공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 개입 논란 등 수많은 정치적 행보들로 인해 비판을 받아왔다.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정치적 책임을 최대한 강하게 진다는 차원에서, 특히 국정 혼란의 주요 진앙지였던 국정원장이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다. 김장수 실장은 세월호 사고 일주일 뒤인 4월23일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안보·통일·정보·국방’ 분야의 컨트롤타워일 뿐”이라고 말해 공분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5월1일 또다시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거듭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세월호 참사 사태에서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내각 총사퇴뿐 아니라 청와대 개편 가능성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을 그대로 두긴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는 방법

사람들은 대통령이 이 사태를 직접 책임지길 원한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하야’라는 단어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대통령 스스로는 정권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할 때가 아닐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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