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 기억력에 이런 일이“그렇게 재미있다고? 제목이 뭔데?” “음, 그게….”“그런 주장은 흥미롭군. 저자 이름이 뭐야.” “아, 김? 이? 박?”“그래서 출판사가 어디니.” “지식의집? 집의지식? 뭐더라?”한 대선 후보는 학생 시절 책 맨 뒤에 있는 판권까지 꼼꼼하게 읽었다는데, 나는 책 ...2014-06-20 13:29
책 읽는다, 쪽팔려서추위가 한창이던 월의 어느 날,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러 가는데 거실에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앉아 있다. “헉, 거기서 뭐해요?” “책 봐.” 그날 이후로도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이상한 느낌에 깨면 새벽 서너 시. 어김없이 거실 불은 켜져 있고 기괴한 분위기...2014-05-29 14:48
책을 만들어 뭐하나책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이런 커다란 비극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상에서는 웃다가도 돌아서면 곧 분노의 눈물이 흐르는, 제정신인 사람들이라면 모두 ‘조울증’을 앓고 있는 지금이다. 그러니 아무리 못해도 몇 시간은 걸려 읽어야 하는 책을 손에 집기란 쉽지 ...2014-05-10 18:29
장성택 처형이 편집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각 출판사마다 나름의 교정·교열 원칙이 있다. 이를테면 어떤 출판사는 외국어를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다. 꼭 표기법만이 아니다. 습관적으로 많이 쓰나 어떤 특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을 티 나지 않게 고치는 것도 에디터의 일이다...2014-04-18 17:39
차라리 궁금한 게 낫다에이전트가 말했다. “통역 없이 해도 되겠죠?” 나는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다른 출판사에서 온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듣기만 하니까. 내가 말할 일은 없잖아. 그런데 저쪽에서 총...2014-03-29 17:32
몸에 털 많은 남자가 섹시해?“선배, 선배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좋아?” “하나 물어볼게. 너는 몸에 털이 많은 남자가 섹시해?” “욕을 막 하면 남자다워 보여?” 드디어 네가 정신줄이 나갔구나, 일 안 하고 뭐하는 거냐. 그때 내 주변의 여자 동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원고 보다 ...2014-03-06 17:50
아예 읽지 않는 게 제일 문제다한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 나온 책에 대해 물어보다 끊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왼쪽이요 오른쪽이요?” “음, 글쎄요.”어느 쪽인지 의심받았던 그 책의 원서 제목은 ‘그리드락 이코노미’(Gridlock Economy), 한국어판 제목은 이었...2014-02-15 13:28
한발만 더 다가가보라“지제크한테 원고 청탁 해봐요.” “네? 뭐라고요? 그 지제크요?”지금은 한국의 인디고서원에서 직접 인터뷰한 책도 나오고, 한국을 매우 사랑하는 세계적인 지식인으로 유명하지만, 0여 년 전 나에게 슬라보이 지제크라는 사람은 무슨 명품 브랜드 같은 존재였다. 멋지기는 하...2014-01-18 15:19
‘멋진포장’과 좋은 책의 관계“아니 책은 어디 가고 없고, 무슨 떡상자냐? 그랬죠.”한 출판 담당 기자가 전해준 말이었다. 하긴 그게 꼭 떡상자 같기도 했겠다. 신간이 왔나 하고 출판사 봉투를 열었는데 정작 책은 안 나오고, 한지로 곱게 싸고 예쁘게 리본까지 맨 네모난 물건이 튀어나왔으니 말이다....2013-12-26 11:34
두 지즈코와의 동침9년 전, 서울 정동 거리. 길 한복판에서 조그마한 여성이 커다란 여행 트렁크를 다짜고짜 펼쳤다. 그리고 뭔가를 마구 찾기 시작했다. 가방 안 옷가지들이 다 드러났다. 이 무슨 풍경인가.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옆에 선 키 큰 여성은 이미 익숙한 듯 생글생글 ...2013-12-05 15:05
‘민족시인’과 수능시험환경미화 심사를 하러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우리는 남학교 못지않게 엉망인 교실을 부랴부랴 닦고 쓸고, 교실 뒷벽에는 절대 교체하지 않을 명시나 명화들을 ‘이달의 시’ 같은 제목으로 떡하니 붙여놓고 앉아 있었다. 둘러보던 한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이상해지더니 밖으로 ...2013-11-14 14:34
그 겨울 구치소 면회실 풍경할머니는 자꾸 그들을 흘끔거렸다. 맞은편에 파란 눈에 콧수염을 기른 키 큰 외국인 남자와 흰 겨울 망토를 입은 만삭의 여인네가 앉아 있었다. ‘저들은 무슨 사연으로 여기에 왔을까.’ 그러나 그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홍삼 캔디를 까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2013-10-24 20:04
마음의 양식은 무슨내용이 좋아 읽어서 이로움을 주는 책을 양서(良書)라 한다. 지금도 수많은 편집자들이 양서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이 공부를 해도 별별 학생이 있듯, 가끔 ‘아니, 뭐 이런…’ 하는 이상한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2013-09-28 15:07
책이 있다면 꺼내 들고 다녀라기차에서 제일 안 좋은 자리는? 문 바로 앞, 통로 쪽 자리다. 거기 앉으면 열차 안을 오가는 모든 승객에게 내가 이 차량의 첫인상이 되고, 더하여 접촉 사고도 숱하게 일어난다. 게다가 입 벌리고 잠이라도 드는 날에는… 오 마이 갓. 그러나 설 무렵이라 그 자리라도 있...2013-08-29 14:11
김우창과 4개의 스파게티서울 평창동 모 갤러리 안에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 멋지게 차려입은 출판사 사 장님과 편집장님 옆에 앉은, 출근한 지 겨우 석 달 된 에디터는 여러모로 설레었 다. 뵙기로 한 분도 워낙 거장이셨지만, ‘오늘도 내 점심은 라면인 건가~’가 주제 가였던 나는 비싼 런치 정...2013-08-10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