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여러 필요조건들이 있을 테지만 집에서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도 꼭 항목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십 몇 년 전 집 뒷마당을 구상하면서 염두에 둔 것도 ‘소리’였다. 정원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아이들 기척이 없는 집과 같다. 부자 둘이서 마주하는 밥상머리의 묵언은 부자유친(父子有親)의 구호를 무색하게 만들기 일쑤다. 하지만 아내와 여식들의 수다는 가끔씩 채신머리없다는 생각은 들지언정 대부분의 경우 비록 그것이 지청구라도 듣기 즐거운 것과 매한가지 이치다. 정원에서는 어떠한 물소리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뒷마당에 분수를 하나 만들기로 작정하고 이것저것 뒤적여보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호사스럽거나 아니면 낯간지러운 알록달록 취향이 주류였고 게다가 이런저런 기계장치를 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럴 때면 마키아벨리가 을 쓸 때처럼 나도 유체이탈(遺體離脫)해 창덕궁 후원 연못 부용지(芙蓉池)에 선다. 정갈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운치 있게 돌 축대 연못을 만들어 물을 가두고 이곳을 통해 계곡의 물이 드나들게 만들었다. 여기 돌 축대 한편에 조선시대 어느 석수장이가 물을 차고 오르는 잉어 한 마리를 새겨놓은 것이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이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고, 나도 한번 이 호사를 누려보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창조는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괴테의 말을 나도 모르는 새 실행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뒷마당은 나지막한 산자락에 면해 있고 산에는 평소 졸졸 흐를 정도로 수량이 많지 않은 계곡이 있다. 제 갈 길 가더라도 물을 잘 꼬드겨 내 집 뒷마당에 모여 잠시 머물다 가도록 궁리하니 대략 세 부분의 작업 공정이 필요했다. 첫째는 물을 모아서 족히 수십m를 끌어들이는 작업이고, 둘째는 끌어들인 물을 가두어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연못이라는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고, 셋째는 놀며 쉬었다 가는 물을 동구 밖까지 배웅하는 물길 내기 공정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니 첫째 공정에서는 긴 나무에 홈을 파서 약수터로부터 물을 끌어들인 전남 강진 다산 초당 연못을 흉내 내고 싶었고, 둘째 공정에서는 창덕궁 후원 부용지의 석축잉어가 떠올랐고, 마지막 공정에서는 구불구불 물길 따라 술잔을 띄웠다는 경북 경주 포석정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왕과 노예가 한 몸에 있는 내 처지도 처지거니와 분수도 모르고 이것저것 잡동사니로 따라하다보면 임도 못 보고 뽕도 못 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 내 방식대로 하자. 그 결과 심산유곡 산사의 약수터 나무 대롱은 쓰다 버린 고무호스를 연결해 땅에 묻는 것으로 대체했고, 자연 약수는 기대도 못하니 쓰고 남은 퇴비 포대에 고무호스를 칭칭 동여매 계곡물 흐르는 곳에 설치해 집수정을 대신했다. 만유인력 낙차를 이용해 물을 꼬드겼으니 배웅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정원 인도 바닥을 파서 고무호스를 묻고 길을 인도했으나 그냥 보내기 못내 아쉬워 한 번 더 소류지(小流池)를 만들어 즐기는 수고를 했다.
다만 두 번째 공정인 연못 만들기는 나름 이것저것 흉내를 내가며 신경을 좀 썼다. 부용지 근처를 어슬렁댔다는 말이다. 오가며 알게 된 민속품 업자에게 부탁해 한옥 철거 때 나온 돌계단으로 연못 석축을 쌓고 약수터에서 쓰다가 갈라져 버린 돌거북을 하나 구해 깨진 엉덩이 부분을 주목을 키워 가림으로써 물 차고 오르는 잉어를 대신했다. 사진에 보이는 그대로다. 그러나 연못을 파서 물이 새지 않게 하는 작업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십수 년 전 더운 여름날 방학, 당시 고3짜리 아들과 함께 웃통을 벗어부친 부자가 땀범벅으로 반나절을 파서 만든 연못은 아무리 진흙과 황토로 메워도 스멀스멀 물이 말랐다. 연못이고 뭐고 때려부수고픈 심사를 억누르고 나의 일친구 손준섭의 소개로 천막사에서 질기고 튼실한 비닐 소재로 방수하고 나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도 정겹게 퐁당대며 내 귀를 즐겁게 해주던 물거북이 올해는 세월호 아이들 때문인지 물이 말라 소리 없이 울고 있다.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1010호 주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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