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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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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불렀으면 일을 반쯤 해놔라

남의 노동을 사게 되면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에도 조급해지게 되나니,
쪼잔해지지 않는 방법은 아주 단순한데…
등록 2014-09-27 12:16 수정 2020-05-03 04:27
조선족 박씨가 작업하고 있다. 초상권 침해를 우려해 원경 사진으로 찍었다. 강명구 제공

조선족 박씨가 작업하고 있다. 초상권 침해를 우려해 원경 사진으로 찍었다. 강명구 제공

내가 옌볜 출신 조선족 박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 7월 말인가 반지하 온실에 방심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수영장 모드로 변신하던 때였다. 혼자서 어떻게 해보려 했으나 날은 찌는 듯 덥고, 힘은 달렸다. 침수가 오래 계속되면 지반이 약해져 자칫 한쪽 벽돌 기둥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니 달리 수가 없어 나의 오랜 일친구이자 이 고장의 소문난 가위손 손준섭에게 SOS를 타전했다. 다음날 나의 오랜 일친구는 그의 괜찮은 일친구인 박씨를 대동하고 나타나 나와 함께 비지땀을 말로 흘리며 반지하 온실을 보송하게 만들어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후하게 대접하고 일이 일찍 끝났음에도 넉넉하게 일당을 줬음은 물론 밭에서 잘 익은 노란 참외까지 한 봉투 그득 쥐어 보냈다.

접빈객(接賓客)에 익숙한 11대 종손 부부의 후함이 인상 깊었던지, 아니면 일감이 궁했던지 하여간 한 달여 지난 8월 말에 느닷없이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강한 옌볜 사투리의 억양을 이모저모 꿰맞춰보니 ‘지난번 즐거웠다. 시간 나니 당신 일 도와줄 수 있다. 할 일 있나?’ 정도였다. 대략 난감했으나 굳이 마다할 일도 아니었다. 10년 넘은 오랜 일친구 오 사장님이 지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 뒤에 도무지 연락불통 행방불명이 된 뒤 믿을 만한 일친구가 아쉬웠던 나였다. 주말을 맞아 오랫동안 머릿속으로만 숙성시켜왔으나 혼자 하기는 힘이 들어 이리저리 미루었던 작업을 시작하며 그와 관계 맺기의 시동을 걸었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대개의 경우 일이 힘들어 남의 노동을 돈 주고 사게 되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쉽다. 일이란 게 하다보면 생각보다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는다. 특히 몸으로 하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지쳐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오후 5시만 되면 삽자루 놓고 귀가하는 것이 요즈음 ‘노가다’ 업계의 관행이고 보니 하루 일당을 시간 단위로 나눠보면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 막걸리 한 잔 마시는 새참 시간이 돈으로 계산되기 쉽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하여 작업방법과 작업조건을 표준화하고 초시계를 이용해 작업자의 작업시간을 일일이 재는 (비인간적) 과학적 관리 기법인 테일러리즘(Taylorism)을 힘들이지 않고 수행하기 쉽다.

이런 경향성이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의 말처럼 인간의 노동을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에 넣고 갈아 뭉갠 탓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피해야만 하는 좋지 못한 습성인 것만은 틀림없다. 특히나 (비록 반쪽에 지나지 않더라도) 시장관계의 종속에서 다소나마 여유로움을 추구하려는 시골생활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피하기 힘든 이런 경향성을 우회하는 방법을 나는 지난 십수 년의 경험과 나름의 성찰과 안식구의 지청구를 통해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는바, 막상 공개하려니 너무도 단순해 공개를 지극히 망설이게 될 정도다.

내 충고의 핵심은 ‘사전준비’다. 누구를 고용해 일해야 한다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일의 반은 끝나 있어야 한다. 이 일이 꼭 필요한지, 만약 필요하다면 우선순위가 어떤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일단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다음 준비 과정으로 관찰과 숙성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공사 방법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떤 재료가 필요하고 어디서 합리적 가격에 좋은 품질의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지 살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일단 이런 준비 과정이 끝나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작업자와 차 한잔 하면서 작업의 성격과 공정을 공유하는 것 또한 필수다. 작업의 미시적 조정 또한 가능하다.

이 과정을 거치면 작업자를 불필요한 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고 비인간적 테일러리즘의 유혹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충고를 곁들이면, 먹고 마실 것을 넉넉하게 대접하고 임금 또한 적어도 남들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밥 한술이 그들의 삽 한술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줄깨나 읽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향의 국가조직에서 ‘간부질’ 하던 ‘지식분자’ 박씨가 이런 방식으로 나의 새로운 일친구가 될지 말지 다음호에서 이어나갈 요량이다.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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