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친구가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님 말씀이 절로 수행되는 시골생활, 아내는 전권으로 제철 채소와 나물로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데
등록 2014-12-20 14:12 수정 2020-05-03 04:27

소싯적 공자 왈 맹자 왈 한문 교육을 받으신 아버님은 (周易)까지 읽으신 분이니 당신 보시기에 남들이 교수니 박사니 하여도 큰아들의 한문 실력이란 그야말로 소학교 수준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그런 아들도 가끔씩 (論語) ‘학이’(學而)편의 첫 구절을 해설에 의존해서라도 읽으면 감흥이 남다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주니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니 군자답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한적하게 사는, 별로 시답지 못한 선생인 나 같은 이에게는 참으로 큰 위안의 말이다. 오늘 얘기는 그중에서도 가운데 도막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에 관한 것이다.

아내가 차린 손님상. 뒷동산 무덤가에서 꺾어온 할미꽃과 집 앞 화단에서 꺾어온 수선화, 그리고 진달래 화전. 강명구

아내가 차린 손님상. 뒷동산 무덤가에서 꺾어온 할미꽃과 집 앞 화단에서 꺾어온 수선화, 그리고 진달래 화전. 강명구

이곳에 살다보면 교통편도 번거롭고 어쩌다 한잔 걸치면 너무 외져 대리운전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집에서는 하루 종일 일해도 상쾌하게 노곤한데 대처 출입 뒤에는 내 몸이 소진되는 느낌까지 드니 예전에 비해 아무래도 바깥출입이 줄게 마련이다. 게다가 집 식구들 모두가 이곳의 한적함을 지겨움이나 무료함으로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일하다 지겨우면 책 읽고 그러다 무료하면 무엇 만들어 먹고 각자 제 할 일 한다. ‘때로는 다 같이 또 때로는 따로따로’ 이곳의 시간은 이처럼 잘도 간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얼굴 밝고 마음 맑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이다.

이곳에 살다보니 공자 말씀대로 ‘유붕자원방래’가 다반사다.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 부부의 초대가 훨씬 더 많다. 나가기 어려우니 부르고 모시는 것인데 ‘내가 서울 한가운데 그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한들 이처럼 손들이 기꺼이 초대에 응할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곳 생활이 즐거움을 넘어 마치 무슨 특권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세련된 레스토랑과 근사한 밥집 경험이 적잖을 손들도 집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직접 담근 장류(醬類) 및 식초 등속의 식자재로 만든 소박한 음식을 마치 무슨 보약 대하듯 귀히 여기니 접빈객(接賓客)의 당사자로서도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슨 극진한 서비스를 받는 것도 아니다. 외려 음식도 같이 만들고 나르고 치우고 도와주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무튼 이러면서 수다도 떨고 식탁보에 와인도 몇 방울 떨어뜨리고 하다보면 찌든 세상사가 눅진하니 발효돼 잘 익은 술 향기가 난다. 이리하여 나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라는 공자님 말씀을 어렵지 않게 수행하게 된다.

접빈객의 상차림은 아내의 전권이다. 주로 제철 채소나 나물 위주인데 옆에서 지켜보니 귀한 손을 생각하며 내는 차림이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는 캐기가 어려워 그렇지 냉이된장콩국이 으뜸이다. 얼지 않기 위해 땅속 깊숙하게 뿌리를 내려 당분으로 몸을 보호하는 이 뿌리식물의 향은 이때가 으뜸이다. 봄 되어 쑥이 지천이면 남해안 지방의 명물인 도다리쑥국을 끓이고 뒷산에 진달래가 피면 할미꽃 화병 옆에서 화전을 부친다. 첫 수확 부추의 달착지근한 향이 그만인 부추겉절이도 빼놓기 힘들고 여름 초입에 발사믹 식초를 뿌린 토마토샐러드도 먹을 만하다. 가을 들어 일주일만 가능한 들깨꽃튀김은 놓치기 싫고 겨울 눈 내릴 때면 직접 수확한 옥수수 알갱이를 넣어 끓인 뜨끈한 토마토수프와 그에 곁들인 우리밀 마늘빵도 별미다.

접빈객에 찬모인 아내만 바쁜 것이 아니다. 마당쇠인 나는 풀도 깎고 마당도 쓸고 주변을 정리한다. 이러다보면 굳이 손을 의식해서만은 아니지만 ‘임 본 김에 뽕도 딴다’고 너저분하던 평소 살림살이가 제자리를 찾는 부수 효과가 크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방 정리며 집 안 청소며 쓰레기 비우기며 손 맞을 정리를 하다보면 만남에도 보이지 않는 격식과 예(禮)가 있음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된다. 우리 부부는 공부도 공부지만 아이들이 이렇듯 품위 있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이제 겨울 되어 좀 한가해질 터이니 그간 마음만 먹고 초대하지 못한 읍내 장터 어물전 ‘형제수산’ 사장님 부부와 우리 대학 경비 아저씨며 주차관리 팀장님까지 모두 부부 동반 초대하고 싶다. 철없는 서방님의 청에 ‘싸모님’의 윤허(允許)가 내린다면.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