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융단 같은 잔디의 환상에서 깨어나 잔디의 실용성에 우선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하면 성격 깔끔한 귀농(촌)자들이 혹시 가질지 모를 ‘잔디=골프장=사치와 환경파괴’라는 엄격한 등식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떼잔디를 입혀 산소를 돌보듯 넘치지 않는 품위로 내 삶의 공간에 떼를 입히면 되는 것이다. 누가 제 눈 보기 좋으라고 부모님 산소와 제 식구들 뛰놀 앞마당 잔디에 골프장 관리하듯 제초제를 뿌릴 수 있겠는가?
이제 전원생활에서 잔디 가꾸기에 대한 답이 어렴풋이 나온다. 너무 단시일 내에 융단 깔듯 잔디를 ‘깔지’ 말고 여기저기 잔디를 ‘심어’주어 제 스스로 다른 풀들과 경쟁하듯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실제 업자들은 집주인 보기 좋으라고 단시일 내에 경관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 사람들 하듯이 잔디를 롤로 말아와서는 융단 깔듯이 펼쳐댄다. 비싼 돈 들였으니 당연히 첫눈에 ‘와!’ 하는 탄성이 나온다. 그러나 몇 년 뒤면 ‘휴!’ 하는 한숨이 나올 것이다. 유사한 이치로 운동선수들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몸을 ‘만드는’ 습관에 젖다보면 나중에 ‘휴!’ 소리가 나올까 걱정이다.
내 경우 조경원에서 사온 두 손 넓이의 정사각형 잔디를 예전에 어머님이 소 여물 써시던 오래된 작두로 3등분해 온 식구가 호미 들고 마당 여기저기 듬성듬성 심었다. 물론 곧 풀밭이 된다. 그러나 몇 년간 예초기나 잔디 깎는 기계로 수시로 잘라주었더니 이제는 거의 골프장 수준으로 번졌다. 자주 잘라주면 잔디가 옆으로 번지는 속도를 위로 크는 일반 잡초가 당하지 못해 결국 잔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시간과 더불어 정원을 관리하면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비싼 돈을 들이지 않을 수 있을뿐더러 더불어 마음도 가꾸게 된다. 정원은 돈만 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며 숙성시켜야 한다. 마당이 아니라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고 생각한 어느 철학자처럼 잔디 가꾸기는 마음 다스리기 참 좋은 방법이다. 꾸준히 가꾸다보면 아는 새 모르는 새 마당이 변해갈 것이다. 아이가 커서 큰 바위 얼굴이 되고, 묘목이 자라서 울창한 숲을 이루듯 당신의 마당이 변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 가꾸다보면 토질이 어울리지 않거나, 습하거나, 볕이 적게 들어 잔디가 잘 자라지 않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찾아낼 수 있다. 그곳에는 잔디처럼 옆으로 번지는 다른 풀이 자라도록 두면 된다. 놀랍도록 정확하게 세월이 빈 곳을 메꿔준다.
그렇다고 무작정 내버려두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토끼풀이 번지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 된다. 얘도 옆으로 번지기에 잔디도 맥을 못 춘다. 호미 들고 가끔씩 뽑아주든가 너무 심하다 싶으면 얘만 ‘돌아가시게’ 하는 제초제를 몇 년에 한 번 뿌려줄 수도 있다. 이 경우 필히 토끼풀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할 일이다. 그리고 잔디가 세력이 좀 약하다 싶으면 비 오기 전날 복합비료를 슬며시 뿌려주면 왕성해진다. 자동차나 굴착기가 지나가 파인 곳은 모래나 마사토 등의 입자 굵은 흙으로 덮어주면 잔디가 잘 벋는다.
책을 보면 그 밖에 뿌리 끊어주기 등 골프장 관리 수준의 요법이 많으나 나는 대개 무시하고 대충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내버려둔다. 다만 깎아주는 것은 필수다. 이 모든 내 경험은 추위에도 푸르고 생육기간이 길지만 물주기 등 관리가 힘든 양잔디가 아닌 토종 잔디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잊기 전에 마지막으로 힌트 하나. 경험상 보니 잔디 대체 풀로 아름다운 것이 사진에 나오는 뱀딸기풀이다. 노란 꽃이 피면 앙증맞기도 하거니와 빨간 열매까지 맺히면서 잎도 참으로 아름답다.
평생 절과 교회 근처를 가지 않던 아내가 서방님이 잔디 기르듯 아이 셋을 기르더니 신흥종교에 귀의했다. 이름하여 ‘내비도’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큽니다. 끼니 맞춰 밥이나 잘 먹이고 같이 놀아주면서 은근히 귀여워하면 말입니다.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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