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시골살이에 우리네 여름철은 과히 친절한 시기가 아니다. 농작물을 키워내는 물과 햇볕이라는 에너지원이 담뿍 선사되는 은혜의 계절임을 익히 알지만 염천 더위에 시골의 삶은 대체로 불편 그 자체다. 덥고, 습하고, 물 것 많고, 풀은 돌아서면 한 발씩 자라 있고, 1시간만 일하면 땀이 말로 흐르고, 비 많이 오고, 그 결과 애지중지 키운 아내의 꽃밭이 한순간에 초토화되고….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무서운 한 방인 집중호우도 잦아지고 있다. 게다가 집중호우 앞에 ‘게릴라성’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 항상 시골 여름철 삶을 긴장하게 만든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와 큰 것 한 방에 몇 번 당하고 난 뒤 자다가도 빗줄기 소리가 좀 세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 우비 입고 이마에 등산용 랜턴을 붙이고 겁도 없이 어둠 속으로 처벅처벅 걸어나가 이것저것 살피게 되었다. 잠자리에 들면 5분을 넘긴 적이 별로 없이 거의 가사(假死) 상태 수준에 이르던 나였음을 상기한다면 정말로 상전벽해다. 나의 천성적 잠자리 대범함을 이와 같이 후천적 잠자리 소심함으로 바꾼 결정적 사건은 10여 년 전 실개천 같던 뒷산 계곡이 범람해 뒷마당으로 들이닥친 것이었다.
뒷산 계곡물을 집 뒷마당으로 우회시켜 유인할 직경 1m 전후의 거대한 콘크리트 흄관이 막힐 줄은 몰랐다. 대형 참사의 원인은 지극히 단순, 간단, 명료했다. 어디선가 흘러 내려와 흄관 입구에 걸쳐 있던 나무토막 몇 개만 미리 치웠다면 예방할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 나뭇가지에 겹겹이 걸린 부유물들이 거대해 보이던 흄관을 막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아, 모든 사고는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는구나! 깨달음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집중호우 뒤 징글징글한 뙤약볕 아래서 나의 굴착기 일 친구 윤주열과 하던 복구 작업이었다. 이것에 비하면 군 시절 훈련소에서 한 각개전투나 유격훈련은 양반 중의 상(上)양반이었다.
그러나 방심은 잊을 만하면 항상 슬며시 오는 법. 나는 올해에도 비록 규모는 작아도 이런 실수를 벌써 두 번이나 범했다. 한 번은 건망증 때문에, 다른 한 번은 뻔히 알고도 미룬 방심과 무사안일 때문이었다. 지난 겨울방학 때 완성한 (미리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힘들었던) 반지하 온실은 아쉽게도 급수시설이 미비했다. 온실에 물을 공급할 빗물 저장 탱크를 완성하지 못한 관계로 집안의 수돗물을 긴 호스를 몇 번 연결해 임시로 사용했다. 예의 하던 대로 출근 전 식물에게 물을 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잠그는 걸 잊었다. 까맣게 잊은 채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뒤 즐겁게 온실 문을 연 순간 나는 반지하 수영장을 발견했다. 양수기에, 물바가지에, 진흙 퍼담기에… 생각하기도 싫은 경험은 상상에 맡기겠다.
돌아서면 잊는 나이에 다다랐으니 이 경험은 병가지상사라 치더라도 다음 실수는 용서받기 힘들 듯하다. 반지하 온실이니 땅과 온실이 맞닿는 이음새 부분을 단단히 정비하지 않으면 물이 스며들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었다. 몇 번 내린 비에 물이 축대를 타고 스며들었지만 무시했다. 온실 바닥 벽돌 길 아래에 자갈을 넉넉히 넣어 물길을 만들고 스며든 물이 집수정(集水井)으로 모이게끔 만든 혜안에 흐뭇해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간과한 사실은 스며드는 양이 그리 많을 줄 몰랐다는 점이다. 스스로 만족해하던 침수 예방 조처는 오히려 자만감이라는 복병을 부르는 달콤한 독약이었다. 세찬 하룻밤의 빗줄기에 집수정은 차고도 넘쳐 수영장 모드로 변신 중이었다. 이번에도 하루 반짝 비가 그친 염천 무더위에 나의 일 친구 손준섭과 함께 말로 땀을 흘리며 방수액 섞은 시멘트로 온실 연결 부위를 다시 마감했다. 집수정을 들어내고 자갈과 시멘트로 재시공했음은 물론이다.
결론 하나. 모든 재앙은 가장 단순한 실수로부터 시작한다. 결론 둘. 어설픈 대책은 방심만 불러일으킨다. 결론 셋,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다잡아도 실수는 또 일어난다. 그러니 그런 줄 알고 편하게 마음먹어라. 어떻게든 해결은 된다.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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