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활자 중독증 비슷한 것에 걸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은 지난달 전남 해남 대흥사 앞의 유선여관에서 1박할 때였다. 겨우내 집에 있다보니 답답하여 하루 예정으로 찾은 이곳은 유홍준의 칭찬 그대로 참으로 그윽한 곳이었으나 2평 남짓한 방에 이부자리 빼고는 인터넷은 물론 그 흔한 TV나 읽을 신문 한 장 없었다. 부부는 하는 수 없이 해질 녘에 해남 읍내로 나가 묻고 또 물어 서점을 찾아내 하룻밤 읽을 책 두 권을 골랐다. 그중 한 권이 소설가 한창훈이 쓴 라는 거문도 바닷가 생선 얘기였다. 반쯤 읽었을 즈음 나는 장영란의 을 일별했을 적과 마찬가지로 ‘아, 이제 정말 되도 않는 연재를 그만둘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나의 연재가 내용에서는 장영란에, 재미에서는 한창훈에 한참 못 미치니 드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2년을 꽉 채워 연재가 50회에 이른 것은 지치고 힘든 도시적 (혹은 시장적) 삶으로부터의 탈출 욕구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40대 중반의 남배우 둘이 먼 섬에 가서 고기 잡아 밥해 먹는 이야기를 ‘연출’한 라는 TV 프로그램이 그토록 인기인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두 배우와 연출자의 진솔함과 인간됨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나는 ‘연출’ 아닌 ‘삶’ 자체로서의 가 그들에게 정말 가능할까라는 질문에는 자못 회의적이다. 장영란과 한창훈(혹은 더 나아가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가 울림 있는 것은 ‘먹고 사는 것’의 진지함 혹은 재미가 노동과 함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주섬주섬 챙겨보니 나도 좀 용기를 내어 지난 연재에 대한 변명 비슷한 것을 늘어놓아도 될 성싶다. 그들만큼 온몸을 던져 진지하지는 못했어도 내 나름 조금은 덜 부끄러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 몸을 움직여 내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건사하니 조금은 덜 미안한 마음이었고 그래서 즐거운 마음이었다. ‘조금만 덜 부끄러운 즐거움’ 바로 그것이 먹고살 만한 직업을 가진 자가 주제넘은 연재를 이어가게 한 힘이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돌담을 쌓고, 삽질을 하고, 풀을 뽑고, 쓰레기를 건사하고, 퇴비를 만들고, 밭을 가꾸고, 나무를 심고, 시멘트를 개고 난 뒤 먹고 마시는 한 공기의 밥과 한 잔의 막걸리가 있었기에 바라보는 풍경이 더욱 잔잔했고 손에 잡은 몇 권의 책과 써내려간 몇 줄의 글이 덜 미안했다.
얼마 전 에서 감명 깊게 읽은 김병익의 글 ‘만년의 양식을 찾아서’는 유려한 문체와 깊은 사유가 어떻게 노년과 맞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형이었음에도 나는 조금 아쉬웠다. 그가 찾은 만년의 양식인 ‘품위 있는 죽음을 바라는 평정한 마음’에 천만번 공감하면서도 그 과정에 마음과 더불어 몸의 움직임도 같이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소설가 현기영의 절절한 표현처럼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가는” 것이 지상에서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엊그제 만 육십을 지난 나는 내가 뚜렷하게 무슨 큰 죄를 짓지는 않았다고 생각함에도 괜스레 나의 젊은 벗들에게 조심스러워지고 미안해지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적’들에 둘러싸여 신음하는 그들에게 지난 15년 나의 이곳 생활을 반추하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발 딛고 선 바로 그곳에서 몸을 움직여 삶을 꽉 붙들고 뿌리를 내리라고. 그러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숨은 손’이 나타나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또 그러다보면 우리는 절로 내 집 마당이 아닌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게 되는 것이라고. 독재가 싫다면 “하다못해 벽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라”던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우리는 하다못해 삽자루라도 그도 아니면 호미라도 쥘 일이라고.
“나의 글이 생명력이 없을 때는 언제나 나의 글이 정치적이지 못할 때”였다는 조지 오웰의 충고를 받아들여 작은 고백으로 연재를 마친다. 변변찮은 나의 신변잡기가 시대를 앞장서는 글이 많아 와 에 선뜻 다가서기 꺼려졌던 이들에게 편안한 샛문이 되기를 바랐다.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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