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맘때였다. (당시 반정부 시위대였던) 레드셔츠 진압 과정에서 군의 발포는 물론 의문의 ‘블랙셔츠’ 등장 단 2시간여 만에 25명의 사망자가 났다. 다음날 영자 일간 은 ‘가장 어두웠던 시간들’(Our Darkest Hour)이라 제목을 뽑았고, 평소 북적대던 방콕에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죽음과 응축된 분노를 ‘취재’한 나도 이날 하루 얼을 빼고 카메라도 내려놓았다.
하루가 더 지나자 시위대도 일상도 다시 거리에 모여들었다. 시위대는 모형 관을 들고 당시 총리였던 아피싯 웨차치와 민주당 대표 집을 항의 방문했다. 막는 이도 별로 없고 ‘기대한’ 분노 표출보다는 음악과 춤을 동반한 시위였다. 병원을 찾았다. 통곡까진 아니어도 눈물과 복받친 감정들이 병원을 압도할 줄 알았는데, 우는 이가 없었다. 영정 들고 있는 몇몇만이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두개골이 함몰된 내 카메라 속 사망자 가족을 ‘수색’했다. 좋은 ‘스토리’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잠시 들어간 병원 화장실. 일을 보고 나와 손을 씻는데, 내 옆에 선 여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던’ 눈물! 스틸카메라로 한 컷을 얼른 찍고 비디오캠을 집어들었다. ‘화장실 안 스틸 사진’보다는 ‘눈물의 스토리’를 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말문이 터진 그녀에게 거듭 고마움과 위로를 전하고 화장실 인터뷰를 마쳤다. 그날 이후 타이 정치 분쟁은 더 깊은 소용돌이로 빠져들었고, 레드셔츠 정보에 밝은 한 서양 기자는 내게 ‘조심하라’ 일렀다. 현지 언론인으로 오해받으면 (레드셔츠에 의해) 위해당할 수도 있다며. 타이 언론들이 레드셔츠를 ‘무식한’ ‘버펄로’ 취급하는 방콕 중산층을 (물론 다는 아니다) 대변하면서 언론을 향한 레드셔츠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분쟁이든 재난이든 격렬하고 비통한 현장을 취재하다보면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되기 쉽다. ‘스토리’와 ‘그림’에 혈안이 된 기레기 심리, 그 직업병을 나도 앓고 있다. 내 사진에 다른 기자 등이 보이면 속상하고, 프리랜서라 그림과 스토리가 안 받쳐주면 어디 내밀기도 어렵다. 그 비극을 팔아먹는 내가 기레기였던 적은 없노라 말하진 못하겠다. 쥐구멍 찾고 싶은 기억들이 이따금 날 찾아오니까. 다만 기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그림이나 스토리만이 아니라 그걸 통해 드러낼 진실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은 적은 없다. ‘진실 보도’가 최대의 위안이었고 자기 정당화 도구였다.
얼마 전 ‘
침몰 마지막 상황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간 고 박수현군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단다.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이냐고?’ 박군이 살아 돌아왔다면 좋은 사진가 혹은 사진기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레기들의 민낯을 비추고 간 수현군, 기레기들만 기자였어도 어쩌면 구조되었을지 모를 아이들 그리고 늘어만 가는 희생자들, 모두의 명복을 빈다.
이유경 방콕 통신원·방콕에서 ‘방콕하기’ 11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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