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네모 상자 닭장을 떠나 전원의 방목을 그리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 중 하나가 집짓기다. 그러나 막상 제 살 집을 제 손으로 지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다시 집을 지으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며 집짓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일쑤다. 난생처음 백면서생이 겁도 없이 덜커덕 시작한 나의 집짓기 경험도 진배없었다. 천신만고 6개월 산고 끝에 완성된 집은 그러나 벌써 15년째 아주 훌륭하게 우리 가족에게 봉사하고 있다. 건축 과정의 경험은 생략하고 직접 살면서 느낀 점만 요약해 ‘시골생활에서 집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밝힌다.
“지상에 집 짓고 사는 것은 존재의 부름에 답하는 일”이라고 한 인문학자 김우창의 경지를 낮추고 뒤집어 내 수준에 맞추자면 ‘인식은 장소에 구속되기 쉽다’는 내 지론, 즉 ‘마음은 사는 곳을 따라가기 십상’이라는 주장에 도달한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듯 사는 집이 불편하면 시골생활이 형통치 못하다. 밖의 일이 험할수록 돌아와 쉴 집이 정갈하고 편안해야 재충전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집은 시골생활의 총사령부다. 내가 마음속으로 은근하게 추종하는 주택관은 작고한 화가 장욱진의 그것과 유사하다. 가족과 새 그리고 나무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집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편안하고 자연과 합일된 아름다움이 있다. 어려운 경지다. 그런 집은 어때야 하는가?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조심스럽게 몇 마디 밝히자면, 큰 집보다는 잘 지은 집이 중요하고, 멋진 집보다는 쓸모 있는 집이 더 낫고, 우뚝 선 집보다는 주변 풍광과 어울리는 집이 더 아름답다.
시골살이에 집은 너무 클 필요가 없다. 서른 평 안팎의 단층집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공깃밥도 담기 나름’이라는 어머님 살아생전 말씀대로 좁은 공간도 사용하기 나름이다. 좁다고 생각하면 집을 넓히기에 앞서 차라리 욕심을 줄일 일이다. 집이 너무 크면 유지·관리에 힘이 들고 겨울철 난방이 어렵다. 집은 좀 작더라도 구상을 잘해 사는 이의 용도와 철학에 맞추어 제대로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향으로 볕을 받고 단열을 잘해 보온성을 높이고 통풍이 잘되게 바람길을 열어주고 약간 높게 지어 배수에 신경 쓰면 집이 항상 보송하고 건강에 좋다. 남향의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할 수 있도록 단출하게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보다는 집과 삶이 동시에 보여 살아가는 모습이 절로 아름다움이 되는 집을 지어야 한다. 시골집은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노동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은 정원과도 연결돼 있지만 장독대, 광, 텃밭 그리고 뒤꼍 우물과도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시골집은 아늑하게 닫혀 있으면서 외부 작업 공간에 편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집을 지을 때 향후 집의 바깥 공간 확장을 염두에 두게 되고 그러다보면 집은 저절로 순하게 아름답고 편하게 쓸모 있어진다. 언론매체에 오르내리는 ‘전원풍의 멋진 집’들은 대개 집만 보이고 삶은 집 안에 ‘댄디’하게 숨어 있다. 나의 잘난 척을 독자들이 용서해준다면 고백하건대 이런 집들을 보면 장욱진의 그림을 보다가 크고 화려한 이발소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제 홀로 아름답기보다는 더불어 아름다운 집을 지어야 한다. 고대광실 우뚝 선 집보다는 산자락에 보일 듯 말 듯 아늑하게 숲으로 둘러싸인 집을 지어야 한다. 숲에서는 집이 숲의 한 부분으로 보이고 집에서는 숲이 집의 한 부분으로 보여야 한다. 내가 하늘 창을 설치한 이유이고, 현관문을 열고 돌아 들어오면 뒷마당이 나를 갑자기 환하게 반기도록 만든 이유다. 아파트에서의 삶이 온전히 내부에 갇힌 것에 반해 시골에서는 집 안의 삶과 집 밖의 삶이 공평하게 서로를 북돋우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욕망은 꽃 피우나 소유는 시든다”는 프루스트의 경구(警句)다. 만족하는 집을 완성한 순간부터 당신은 곧바로 새로운 시골집을 설계할 것이다. 장욱진이 그랬던 것처럼.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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