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 산책을 하거나 들에서 일할 때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웃자란 잡초나 제대로 간수 못하고 던져둔 연장이 아니라, 어쩌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비닐이며 플라스틱 등 문명의 이기들이다. 좀 유별나다면 유별난 플라스틱 기피증은 내가 무슨 대단한 환경주의자라서기보다는 아마 시골에까지 과도하게 침투한 편리함에 대한 탐닉 바로 그것에 대한 못마땅함일 것이다. 농사지어 밥벌이하지 않는 반쪽 시골생활자의 어설픈 낭만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우리는 약간의 불편함이 선사하는 숨겨놓은 선물에 너무 무뎌진 것만 같다. 시골생활의 진정한 묘미는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자연 한가운데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조절과 부지런한 몸 움직임으로 약간의 불편함을 잔잔한 즐거움으로 바꾸는 데 있다. 아마 환경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오래된 미래’라는 형용모순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서정주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라고 노래했을 때의 심사이기도 했을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미덕에 대한 시답잖은 사유의 고명을 걷어내면 우리 집 식구들이 일상으로 행하는 시골생활의 쓰레기 처리 방식과 마주하게 된다. 소개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널리 알려진 방식이겠으나, 그나마 좀 덜 부끄럽다면 꽤나 꾸준하게 지난 15년간 지켜온 방식이라는 점이다. 우선은 덜 쓰기이고, 다음은 다시 쓰기이고, 마지막은 돌려쓰기이다. 아주 덜 쓰지는 않고 좀 덜 쓰는 듯만 하게 소비하는 생활이 몸에 배었어도 이곳에 살다보면 우리네 편리한 삶이 얼마나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내는지 놀라게 된다. 특히 끝도 없이 나오는 것만 같은 석유화학 부산물인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재가 그러하다. 아무래도 좀 덜 써야만 폐기물이 줄 것이다. 덜 쓰는 대신 꼭 써야만 하는 것은 값이 좀 덜 헐해도 ‘착한’ 소비를 하려고 애쓴다.
아무리 덜 쓰고 착한 소비를 해도 쓰레기는 나온다. 그렇다면 다시 써야 한다. 재활용의 일차 관문은 쓰레기 분류다. 특히 관에서 수거해가는 재활용쓰레기인 폐비닐이나 플라스틱은 되도록 압축해 부피를 줄이고 수거하기 편하게 손잡이를 달아 내놓는다. 밟아 찌그러뜨린 알루미늄 캔과 유리병은 모았다가 내놓으면 돈이 좀 되어 그런지 내놓기 무섭게 없어진다. 선전지나 오래된 잡지 등 종이류도 수거하기 편하게 규격을 맞춰 단단히 묶고 손잡이를 달아 내놓는다. 이 정도면 재활용 가능한 것들은 얼추 처리된다.
다음으로 침대나 가구 등 수거해가기 곤란한 대형 물품들은 비록 소수지만 일일이 분해해 재활용 가능한 것들만 따로 챙긴다. 가구를 분해하면 손잡이며 나사못 등 다시 써도 훌륭한 부품이 적잖은데 이것들은 작업실로 보내 분류해 재활용한다. 침대를 뜯으면 코코넛 섬유 바닥재가 나오는데 이것은 물 빠짐이 좋고 질겨 걸이용 화분 만들기에 제격이고 침대 스프링은 갈아엎은 밭 위로 끌고 다니면 땅고르기에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음식물쓰레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돌려쓴다. 우선 먹고 남은 것이나 음식물 부스러기는 개들 밥에 섞어주거나, 말려 부숴 새 먹이로 준다. 특히 비계나 동물성 기름은 한겨울 열량을 필요로 하는 새들이 수시로 날아들어 먹어치우기에 따로 모아야 할 지경이다. 그래도 남은 부산물들은 부엌 곁에 냄새나지 않게 낙엽으로 덮어 모아놓았다가 통이 차면 퇴비사로 직행해 1년간 숙성시켰다가 퇴비로 쓴다. 이외에 생활 쓰레기가 아닌 정원 쓰레기 또한 적잖은데 잡초는 당연히 퇴비사로 가고 전지한 나뭇가지는 한군데 차곡차곡 모아 말리면 겨울에 난로 피울 적에 훌륭한 불쏘시개가 된다. 그리고 난로를 치면 나오는 재는 모아놓았다가 봄에 밭에 뿌려 산성화된 토양을 중화시키고 비료로도 쓴다.
이렇게 하고도 남는 마지막이 똥과 오줌인데 수세식을 부분적으로만 사용하는 우리 집의 경우 퇴비화 변기로 해결해 진짜배기 퇴비의 원료가 된다. 여러 번 소개됐지만 아직도 궁금하신 분은 제914호 ‘우리 엄마아빠 좀 말려주세요’ 글을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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