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쉴 그늘도 만들고 오디가 열리면 따 먹으려고 텃밭 구석에 뽕나무를 심어놓은 것이 한 10여 년 되었다. 열리라는 오디는 시원치 않고 밭이 걸어서 그런지 굵은 뿌리만 ‘이소룡’ 근육처럼 드러나고 잎 크기가 내 손바닥보다 넓어지면서 가지도 한정 없이 뻗쳐댔다. 누에를 치는 것도 아니고 서리 한 번 내리면 우수수 떨어질 저 많은 잎들을 생각하니 이제는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막상 베어버리자니 선뜻 톱에 손이 가지 않았다. 아내가 만들어주는 심심하고 소박한 뽕나무 새순 무침과 초록색 뽕나무 국수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나무란 심는 거지 베는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고집 때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딘가 파헤쳐지는 건설과 토목의 나라에 살다보니 초록에 대한 집착이 생겼는가보다.
성가심에 대한 우려와 초록에 대한 집착 중간에서 택한 방식이 처음에는 주목처럼 다듬어주기였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품이 많이 드는 힘든 일이기도 했거니와 이런 방식으로 뽕나무의 왕성한 번식력을 감당해내기 어렵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베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택한 방식이 가로수 가지치기 따라하기였다. 리프트 박스에 타고 인부들이 울창한 가로수를 베어내고 나면 남는 조막손들은 그야말로 볼품없고 흉측하기까지 했고, 삭막한 도시를 위무해주던 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분노하던 글을 읽은 기억도 생생했다. 이런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나무가 죽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중간 마디의 모든 잔가지를 접이톱과 전지가위로 제거하고 나니 예의 그 조막손들이 볼품없이 드러났다.
일친구 손준섭에게서 주워들은 (아마도 일본식) 전문가 용어로 ‘강 전지’(强 剪枝)를 한 첫해의 결과는 참혹했다. 나무가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웬걸, 시간이 웬만큼 지나니 조막손에서 여러 개의 싹이 함성 지르듯 올라오고 한여름이 지나서 길고 가느다란 줄기가 낭창낭창하니 능수버들처럼 늘어져 무성해지기가 예전 같아졌다. ‘아이고 틀렸구나, 이제는 베어도 덜 미안하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고구마밭은 아내가 정리해 고구마를 몇 상자 쟁여놓았고, 들깨는 큰아이가 주말에 집에 들러 털어서 말릴 준비까지 해놓았으니 집안의 마당쇠인 내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싶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습득한 노하우에 따라 밑동을 뭉청 베어내 산지사방 난장을 만들기보다는 잔가지부터 하나씩 쳐내 차분하게 정리하는 편을 택했다. 굵기가 2cm 정도에 길이가 족히 3m 가까이 되는 긴 가지들을 전지가위로 쳐내는 순간 문득 서양 정원 관련 책에서 읽은 ‘코파이스’(Coppice)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서양의 정원사들은 우리가 커피전문점 메뉴판에서 보는 헤이즐넛이라는 향기 좋은 개암나무 밑동을 잘라내고 거기에서 자란 긴 줄기를 수확해 각종 정원 용품들을 만들어 치장한다. 발을 엮듯 가림막도 만들고 이 칼럼 연재 초기에 소개했듯 이 가지를 엮어 ‘올림밭’(Raised Bed)을 만들기도 하고 무궁무진하게 활용한다.
성장이 왕성해 잘라줘도 거침없이 긴 가지를 닥작닥작 벗는 나무들이 바로 이 코파이스라는 밑동 쳐서 긴 가지 기르기의 주된 대상인데, 나는 우연치 않게 뽕나무가 바로 그 대상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무성한 뽕잎을 장갑 낀 손으로 훑어내고 긴 가지를 뒷산에 지천인 칡덩굴로 꽁꽁 묶으니 무게가 꽤 나갔다. 때마침 지난해 봄에 엮어둔 올림밭들이 한 해 지나니 삭고 부서져 볼품없어지고 반지하 온실의 텃밭도 덮어준 낙엽이 제멋대로 나뒹굴기도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발견이었다. 고생은 좀 하고 시간이 걸렸지만 새로 엮어준 올림밭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편리함에 익숙한 우리네 세태에서 이렇듯 소중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노동의 하모니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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