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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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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이 있으니 겨울이 두렵지 않다

반지하 온실 겨울철 사용 중간보고서…

성장보다는 생존에 주안점을 두어 작물을 선택하고 재배하기를
등록 2015-01-03 13:23 수정 2020-05-03 04:27

올해는 겨울이 깊지도 않았는데 벌써 강추위다. 새벽에 일어나 장작을 가지러 가다가 문 밖의 온도계를 보니 영하 15℃다. 실눈 같은 그믐달이 허공에 처연한데 삭풍까지 몰아치고 거기에 며칠 전에 내린 눈까지 그대로 얼어붙어 있으니 노랫말 그대로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겨울밤”이다.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반쪽 시골생활은 걱정은커녕 추우면 추운 대로 그럭저럭 재미나다. “겨울에 살 좀 쪄놔야 봄농사를 시작한다”는 이곳 어르신들 말씀이나 “겨울에 (정원 관련) 공부 좀 해놓아야 봄부터 실전 배치 가능”이라는 아내의 말마따나 이곳 겨울은 ‘먹고 놀기’ 딱 좋은 계절이다.

한파에도 온실은 대견했다. 밖이 영하 15℃일 때도 석축 부분은 영상 2~3℃였다. 강명구

한파에도 온실은 대견했다. 밖이 영하 15℃일 때도 석축 부분은 영상 2~3℃였다. 강명구

텃밭이 있어 가슴 설레는 봄이 두렵지 않듯이 반지하 온실이 있기에 나 또한 겨울이 두렵지 않다. 손잡이가 쩍쩍 달라붙는 아무리 추운 날도 볕 비치는 한낮에 온실에 들어가면 차분한 햇살로 달구어진 참하게 습한 공기가 연두며 초록의 식물들과 함께 나를 반기니 어찌 겨울이 두려울 수 있겠는가. 공자 말씀을 패러디하자면 ‘추운 겨울이 와서 온실이 나를 반기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정도 되시겠다. 딱 1년 전 이맘때 짓기 시작한 반지하 온실이 돌을 맞았고, 그 과정을 이 난에 이미 몇 번 소개도 하였으니 마지막으로 겨울철 사용 중간보고서를 올릴 만한 시기라는 판단이 섰다.

기존 돌 축대를 벽으로 하여 지하 1m를 파고 들어간 뒤 나무 프레임을 얹고 프레임을 투명 재질 이중 플라스틱으로 감싸서 지은 반지하 온실의 제1의 목표는 겨울철 무가온(無加溫) 식물 재배였다. 결론부터 보고하자면 약간의 주의를 요하는 수준의 상당한 성공이다. 온도부터 보자. 짧은 지면에 기록한 데이터를 일일이 제시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외부 온도와 10℃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온도차를 보였다. 밖이 영하 10℃면 온실 안의 최저 기온은 창가는 0℃, 석축이 있는 벽 쪽은 영상 3∼4℃ 정도였다. 물론 변온 정도가 일정치는 않아 밖이 영하 15℃일 경우 실내에선 창가는 영하 2℃, 석축 부분은 영상 2∼3℃가 되었다. 하지만 영하 10℃ 안팎의 추운 날씨에서도 최저 기온은 항시 영상을 기록했다. 한낮에는 아무리 추워도 볕만 비치면 영상 27℃까지 올랐고 습도는 75% 내외였다. 아마 2월만 돼도 30℃를 웃돌 것이다. 참고로 벽과 창문의 미세한 틈까지 꼼꼼하게 밀봉한 효과가 크다는 짐작이다.

하지만 식물 키우기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추위에 강한 잎과 뿌리 위주의 채소류(상추·부추·홍당무·시금치 등)는 잘 자라 훌륭한 샐러드와 겉절이 재료를 제공했지만 성장 속도는 느렸다. 반면에 열매를 맺는 식물채소류(토마토 등)는 꽃은 피어도 온도와 일조량 때문에 열매 맺기에는 실패했다. 관련 외국 서적을 보면 작물마다 일조량 무관(Day Neutral), 긴 일조량(Long Day), 짧은 일조량(Short Day) 등으로 구분돼 있으니 참고해 이 중 ‘무관’과 ‘짧은’ 일조량 작물을 택하면 되시겠다. 하지만 낮은 기온이 장점도 된다. 이미 꽃이 핀 식물들은 개화된 꽃이 낮은 기온 때문에 아주 오래간다. 한여름 장마철에 남아나는 꽃이 없는 것과 반대 이치다. 잠정 결론 하나. 겨울철 온실은 성장보다는 생존에 더 주안점을 두어 작물을 선택하고 재배하는 것이 낫다. 한 11월 정도 서리가 내리기 전에 웬만큼 큰, 그리고 개화된 식물들은 옮겨놓으니 잘 자라고 꽃도 오래 피었다.

미리 고민했던 물주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막힌 공간이니 증발이 덜 돼 자주 물을 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과습으로 인한 화분의 뿌리 썩음을 유념할 일이다. 그리하여 비싼 돈을 들여 급수시설을 만드는 대신 나는 커다란 고무 대야를 온실이 가까운 땅에 묻고 입구를 유리로 덮어놓았다. 물이 얼지만 낮에는 녹아 가끔씩 퍼서 쓰기 좋았다. 웬만큼 퍼 쓰면 날 좋은 날 얼른 수도로 채워놓아 다시 쓸 수 있도록 조처하니 충분했다. 그리고 빈 맥주병이나 와인병에 물을 채워 볕에 세워놓으니 덥혀져 밤중에 보온도 되고 급할 때 비상용으로도 사용하니 좋았다.

글로 배운 얼치기 농사꾼의 실험 보고서는 아마 1년 뒤면 몸으로 체득해 더욱 풍요로워질 게다. 꿈꾸건대 내년 이맘때 널따란 연둣빛 파초 잎사귀 아래서 반지하 온실 2년차 보고서를 쓸 수 있기를….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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