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 소개했듯이 식물에 관한 주특기가 선인장에 물 안 줘 죽이기였던 아내가 이제는 손목에 파스를 붙여가며 정원과 텃밭에 매달리는 ‘꾼’이 되어가고 있다. 그 변신이 한편으로는 괴이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한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는 탓에 주중에도 시내 맛집을 가득 메운다는 동창 모임에 소원해지고, 대신 주야장천 정원에 ‘널브러져’ 있으면서도 행복해하니 은근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배달되는 택배의 대다수가 꽃이며 모종과 관련된 것이고 취미로 보는 책이 정원 사진첩도 아닌 라틴어 속명이 표기된 씨앗·모종 주문배달 카탈로그라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국어사전을 보는 것이 독서 취미였다는 고종석을 이해하기 힘들듯이, 카탈로그를 보면서 독서한다는 아내도 이해하기 힘들다. ‘저러다가 혹시 밥이라도… (안 해준다면)’ 하는 생각에 이르면 ‘아, 내가 해먹을 수 있는 것은 김치찌개와 볶음밥뿐인데…’라는 걱정이 든다는 말이다.
농반진반(弄半眞半)의 사설이 길었지만 아내의 꽃 사랑은 이곳으로 이사 온 뒤 참으로 지극해졌다. 아내가 꿈을 꾸면 나는 몸으로 때워야 하는 처지이기에 아내가 꿈을 좀 덜 꾸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도 ‘머리가 좀 있는지라’(?) 이것이 얼마나 무망한 바람인지를 이내 깨닫고 작전을 좀 달리해 “당신의 그 꽃 욕심은 이곳으로 한정하오” 하는 욕망의 봉쇄 작전으로 돌입한 결과가 아내만의 꽃밭이다. 집 부엌문을 열고 나가면 우물가이고 우물가를 둘러친 조선 향나무 수벽을 넘어가면 주목으로 담을 둘러친 30평 정도 되는 아내의 공간이 나온다. 생육보다는 집안 마당쇠로서 주로 막일과 조경이 전공인 내가 어깨너머로 체득한 바에 의하면, 정원(아니, 더 정확히 말해 꽃밭)이라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고 동시에 신비한 존재다.
한겨울 도무지 뭐가 있을 것 같지 않던 꽃밭에서 봄이 되어 아우성치듯이 새싹이 돋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다투어 필 때쯤이면 그 감흥을 주체하지 못해 그만 “왜 봄은 오고 지랄이야”라는 어느 시인의 욕설이 절절해진다. 이렇듯 신비한 꽃밭의 매력은 실제 고된 노동의 외피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꽃밭은 비위 맞추기 어렵고 까다롭다는 말이다. 좀 시건방진 말이겠지만 우리네 주변에 공원은 많을지 몰라도 정원은 드물고 꽃밭은 더 드물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수목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조경업자의 안목으로 ‘건설’한 수준이 대부분이고, 어쩌다 보는 정원들은 무어든 동그랗게 다듬고 자른 일본식 정원에 어쩌다 우리 것을 조야하게 덧붙인 것이기 십상이다. 경복궁 후원 아미산 화계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돌담이나 흙담 아래 몇 떨기 소담한 꽃밭을 점점 보기 힘들게 된 것이 참으로 슬픈 우리네 현실이다.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에 의하면 수목보다는 꽃 위주로 만드는 꽃밭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일정한 공간 안에, 피는 꽃의 색깔, 높낮이, 그리고 피는 시기를 모두 조화시켜 지속적으로 될 수 있으면 즐길 수 있는 기간을 길게 늘리도록 기획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주제를 담아낼 수 있도록 테마를 잡아주면 더욱 좋다.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거기에도 뭔가 좀 든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여러 변수들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기 쉽다. 예쁜 꽃은 쉽게 지고, 키가 크면 바람에 쉽게 쓰러지고, 색을 맞추다보면 피는 시기가 다르고 등등 말이다. 꽃밭을 가꾸다보면 이런 욕심과 기획이 젊고도 동시에 오래 살고픈 인간의 욕망을 어찌도 그리 빼닮았는지 놀라게 된다.
이런저런 변수를 모두 고려해 꽃밭을 만들다보니 아내의 꽃밭은 아무나 침범하지 못하는 지뢰밭이 되었다. 어쩌다 잡초를 뽑으러 한 발을 들여놓으면 발아래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싹들이 아우성치며 신음하고, 주문한 모종을 급한 마음에 아무 데나 꽂아놓거나 지저분한 잔가지를 쳐내기라도 할라치면 이내 아내의 아우성이 들린다. 그래도 찬란한 봄이 속절없이 가기라도 하면 “봄은 왜 가고 지랄이야”라며 한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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