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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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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내란 수괴를 즉각 파면하라”

차일피일 헌재 결정에 굶으며 지쳐가지만… 윤석열 석방 맞서 ‘광장 시즌2’ 활짝
등록 2025-03-22 10:49 수정 2025-03-27 07:37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2025년 3월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각계 긴급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2025년 3월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각계 긴급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래서 탄핵 결정이 언제 난다는 겁니까. 요새는 진짜 화가 나서 나와요. 온 국민이 계엄 하는 걸 다 지켜봤는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가 생겼다니까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기일 공지를 또다시 미룬 2025년 3월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만난 김경민(가명·46)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쯤이면 민주주의가 끝내 승리한 서사로, 지나간 한겨울의 무용담이 되었어도 좋을 ‘비상계엄 선포, 내란, 탄핵’ 국면이 한겨울 내내 끝나지 않은 채 봄을 맞이하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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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한겨울 무용담 되었어야

3월23일로 헌재의 윤석열 탄핵심판 심리는 100일째를 맞이했다. 이미 91일 걸린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넘어 역대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중 최장기간 심리를 기록하게 됐다. 그사이 시민들은 지쳐가고, 광장의 위기감과 불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서도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와 관련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3월20일 엑스에는 ‘선고일 발표’를 키워드로 하는 게시물이 1만6천여 개나 올라왔다. 대부분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가 하염없이 미뤄지는 것에 관한 비판적 반응이다.

2025년 3월18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유하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비상행동 제공

2025년 3월18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유하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비상행동 제공


시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원천은 ‘윤석열 연합’의 준동이다.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이 재판정에서 비상계엄의 정당성과 내란 성립 불가론을 설파하고, 이를 자양분 삼은 ‘태극기 부대’가 광장을 반동과 혐오의 무대로 삼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정당은 내란과 탄핵을 재해석하는 정쟁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내란 이후 44일 만에 어렵게 체포된 윤석열의 구속을 법원이 3월7일 취소한 뒤, 검찰이 항고조차 포기하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상황은 결정적으로 불안감을 키웠다. 3월8일 구치소에서 나온 윤석열이 지지자들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쥔 순간, 단순명료할 것 같았던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가 미뤄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읽히게 됐다. 이때 각종 정보지들은 이른바 ‘5:3 기각/각하설’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런 모든 분위기가 ‘이러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윤석열이 석방된 3월8일 이후부터 광화문 앞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집회를 열고 있다. 국회의원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단식투쟁으로 최후의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3월18일 밤에도 광화문 앞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렸다. 새벽에 내린 폭설과 꽃샘추위로 체감온도는 영하권으로 떨어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경복궁역 방면엔 약 100m에 걸쳐 시민단체와 정당이 설치한 천막이 늘어서 있다. 단식에 돌입한 대학생들의 텐트도 여럿 있다. 이들은 광장에 나와 분노를 함께 표출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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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파면’은 빛의 혁명 첫 문장

단식 중인 김동명 비상행동 공동의장의 대표 발언을 시작으로 시민들도 하나둘 연단에 올라 발언을 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 민주시민’이라고 소개한 대학원생 유하영(27)씨는 “우리는 1년의 3분의 1을 광장에서 보냈다. 윤석열이 돌아오면 나머지 3분의 2까지 빼앗길지도 모른다”며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데 아직도 유난 떨지 말라며 가만히 있는 이들이 있다. 내란에 맞서는 것은 주권자 시민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 써내려갈 빛의 혁명의 첫 문장은 윤석열 파면이어야 한다”며 윤석열 파면 이후 찾아올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 광야에서 아침 이슬을 맞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함께 외치자”고 덧붙였다. 유씨는 특히 윤석열 석방 이후 거의 매일 집회에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겨레21과 만나 “(윤석열이 석방된 날이) 3월8일 여성의 날이어서 너무 화가 났다”며 그럼에도 “무력감에 빠지지 말자,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집회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2025년 3월14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이도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비상행동 유튜브 갈무리

2025년 3월14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이도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비상행동 유튜브 갈무리


또 다른 집회 참가자인 대학생 이도영(26)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학기 중이라 수업이 끝난 뒤에 집회에 나온다. 그는 “저는 오늘이면 윤석열 파면 소식을 듣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주에 당연히 선고될 줄 알았던 파면이 미뤄진다고 한다”며 “한강진에 모여 감방으로 보냈던 윤석열은 그가 있어야 할 감옥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 발을 뻗고 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점점 더 심해지는 내란성 스트레스를 앓고 있지만 내란수괴가 파면될 때까지는 이 자리에 계속 함께하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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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와 이씨 주변의 친구들은 헌재의 선고가 늦어지면서 “뭔 일이라도 저지르고 싶다”는 울분을 자주 표출한다고 한다. 이는 심리적으로 사회가 저강도 내전 사태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마땅히 결정돼야 할 것들이 지체되면서, 사회는 점점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고, 사회 시스템 자체를 불신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를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 법의 존재 이유이고 목적일 텐데,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오히려 법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지연 상황을 두고 “법관들이 너무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윤석열이 파면되더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적 요구와 사회적 압력을 법관들이 기술적 판단으로 너무 쉽게 무력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세상이 진보적으로 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역사는 전진-역진 거듭하는 시간

광장에서 만난 60대 직장인 선명선씨도 이씨처럼 법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켜 구속까지 됐고 200명 넘는 국회의원이 탄핵소추까지 했는데 파면할 권한은 몇몇 헌법재판관이 갖는 제도 자체가 낡았다”며 “집단지성이란 말도 하는데 왜 최종 권력은 엘리트 법조인 몇몇이 다 가져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검찰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인 박지수(28)씨는 “검찰은 (윤석열) 구속 취소에 대한 항고를 재빨리 포기했다.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권력에 충성하기도 어렵겠다”며 “심우정 검찰총장은 인권을 위해서라고 했는데, 어디 감히 인권을 운운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2025년 3월13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박지수씨가 발언하고 있다. 본인 제공

2025년 3월13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박지수씨가 발언하고 있다. 본인 제공


사회학자 신진욱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한겨레출판, 2008)에서 “역사는 돌다리를 하나씩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진보하지 않는다”며 “전진과 역진을 거듭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때로는 그 시간이 짧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이 바로 그 ‘짧지 않은 시간’의 어디쯤일지 모른다. 2008년의 ‘광우병 소고기 반대 투쟁’을 하던 광장도,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진 ‘박근혜 탄핵’ 광장도 그랬다. 광장은 언제나 나아가려는 자와 돌아가려는 자가 힘을 겨루던 장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한바탕 축제와 같던 광장의 시간을 늘 소수의 엘리트 법관들이 마무리했고, 이후로는 체제 전환이나 사회 대개혁 같은 논의가 휘발된 채 곧장 또다시 정치의 시간으로 돌입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12·3 내란 이후 광장은 끝없이 좌절을 극복하고 결정적 국면 변화를 만들어왔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기권으로 윤석열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이 무산됐던 2024년 12월7일, 여의도 일대에 울려 퍼졌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긴 탄식을 다시 희망으로 되돌려놓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강남규 정의당 공보차장은 페이스북에서 이때를 두고 “이번 광장의 주인공이 결정됐”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탄핵소추안 가결과 ‘남태령 연대’ 이후 소강상태로 접어들 뻔했던 광장은 2025년 1월3일부터 6일까지 있었던 한남동 체포 투쟁에서 다시 한번 불타올랐고, 극우의 준동과 법원의 윤석열 구속 취소 인용,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 지연 등으로 위기가 들이닥치자 다시 3월15일 100만 명 시민이 광장에 모여 분노를 결집했다.

 

법원·헌재를 직접 꾸짖을 수밖에

야간근무일을 제외하면 계속 광장에 나왔다는 간호사 김도영(35)씨 역시 윤석열이 석방됐을 때 ‘사법 탈옥’이라고 생각할 만큼 분노했다. 어떤 구멍이라도 만들어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게끔 만드는 사법부에 대한 분노였다. 그는 한겨울 내내 광장에 나오다보니 폐렴과 방광염을 앓는 상황에 처했다. 그럼에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손팻말을 만들고, 집회에서 마주친 단체들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그는 최근 조금 다른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분노였지만, 이제는 정말 사법부와 헌재를 직접 꾸짖으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아요. (…) 법에도 어디든지 다 절차가 있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위중한 일에 대해 (탄핵하지 않으면) 우리가 국가권력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우리의 권리를 맡길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윤석열) 단 한 명의 파면만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는 훨씬 길게 국민들이 이런 정치적인 목소리를 생활화해야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파면 이후) 그때부터가 진짜이지 않을까요.”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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