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못해 호미라도 쥘 일직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활자 중독증 비슷한 것에 걸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은 지난달 전남 해남 대흥사 앞의 유선여관에서 1박할 때였다. 겨우내 집에 있다보니 답답하여 하루 예정으로 찾은 이곳은 유홍준의 칭찬 그대로 참으로 그윽한 곳이었으나 2평 남짓한 방에 ...2015-03-04 17:04
무조건 저녁이 있는 삶“아빠, 선생님이 나보고 어제 저녁 잘 먹었냐고 물어보셨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가 둘째 단비가 저녁 밥상머리에서 내게 던진 한마디에 모든 가족이 ‘빵 터져’버렸다. 대한민국의 많은 고등학교가 대체로 그러했듯 둘째 단비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무조건 ‘야간자율학습...2015-02-10 15:03
남은 음식은 먹이가 되고 퇴비가 되고집 주변 산책을 하거나 들에서 일할 때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웃자란 잡초나 제대로 간수 못하고 던져둔 연장이 아니라, 어쩌다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비닐이며 플라스틱 등 문명의 이기들이다. 좀 유별나다면 유별난 플라스틱 기피증은 내가 무슨 대단한 환경주의자라서기보다는...2015-01-30 15:23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지 않은 집콘크리트 네모 상자 닭장을 떠나 전원의 방목을 그리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 중 하나가 집짓기다. 그러나 막상 제 살 집을 제 손으로 지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다시 집을 지으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며 집짓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일쑤다. 난생처음 백...2015-01-17 15:59
온실이 있으니 겨울이 두렵지 않다올해는 겨울이 깊지도 않았는데 벌써 강추위다. 새벽에 일어나 장작을 가지러 가다가 문 밖의 온도계를 보니 영하 15℃다. 실눈 같은 그믐달이 허공에 처연한데 삭풍까지 몰아치고 거기에 며칠 전에 내린 눈까지 그대로 얼어붙어 있으니 노랫말 그대로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2015-01-03 13:23
친구가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소싯적 공자 왈 맹자 왈 한문 교육을 받으신 아버님은 (周易)까지 읽으신 분이니 당신 보시기에 남들이 교수니 박사니 하여도 큰아들의 한문 실력이란 그야말로 소학교 수준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그런 아들도 가끔씩 (論語) ‘학이’(學而)편의 첫 구절을 해설에 의존해서...2014-12-20 14:12
200년 전 박지원처럼, 100년 전 유길준처럼비록 어설픈 ‘반쪽’ 시골생활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골’이라는 어휘가 풍기는 아우라가 있기에 시골생활에서 외국 여행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내심 매우 어설프고 멋쩍다. 고개 너머 사시는 고모님이 막내아들 덕에 다녀오신 생애 최초(이자 어쩌면 마지막일) 삐까뻔쩍 2박3일...2014-12-06 15:39
선인장 죽이던 아내의 ‘화무십일홍’집 밖의 기온이 섭씨 3~4℃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내 앞에서 목에 힘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적잖은 세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농촌 노인형’ 잠 습관에 길들여진 나는 이맘때쯤이면 새벽에 일어나 나무 난로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인 뒤 원두를 갈아 향기 ...2014-11-22 15:22
베어도 덜 미안할 것 같던 뽕나무의 부활앉아서 쉴 그늘도 만들고 오디가 열리면 따 먹으려고 텃밭 구석에 뽕나무를 심어놓은 것이 한 10여 년 되었다. 열리라는 오디는 시원치 않고 밭이 걸어서 그런지 굵은 뿌리만 ‘이소룡’ 근육처럼 드러나고 잎 크기가 내 손바닥보다 넓어지면서 가지도 한정 없이 뻗쳐댔다. 누에...2014-11-08 17:52
흑백으로 남은 풍경 하나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신랑이 하객들 앞에서 인사를 하는데 덜컥 가발이 벗겨지고 까까머리 군인 머리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군대 말년에 2주 휴가를 더 얻기 위해 벌인 나의 결혼식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난생처음 써보는 가발인지라 결혼식 당일 다듬...2014-10-25 18:07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중국 옌볜의 국가조직에서 ‘간부질’ 하던 ‘지식분자’ 박씨가 어찌어찌하여 대한민국 수도권의 반시골에서 또 다른 ‘지식분자’(?)인 나와 같이 삽질을 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상념이 저절로 물밀듯 다가온다. 그의 조부는 지금으로 치면 서울하고도 특별시의...2014-10-11 14:19
사람을 불렀으면 일을 반쯤 해놔라내가 옌볜 출신 조선족 박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 7월 말인가 반지하 온실에 방심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수영장 모드로 변신하던 때였다. 혼자서 어떻게 해보려 했으나 날은 찌는 듯 덥고, 힘은 달렸다. 침수가 오래 계속되면 지반이 약해져 자칫 한쪽 벽돌 기둥이 무너질 수도...2014-09-27 12:16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가꾸고 있다지난 글에서 융단 같은 잔디의 환상에서 깨어나 잔디의 실용성에 우선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하면 성격 깔끔한 귀농(촌)자들이 혹시 가질지 모를 ‘잔디=골프장=사치와 환경파괴’라는 엄격한 등식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떼잔디를 입혀 산소를 돌보듯 넘치지 않는 ...2014-09-06 14:23
저 거친 언덕에 잔디를 깔아내가 사는 곳은 상수원 보호구역부터 시작해 몇 겹의 정부 규제로 묶여 있어 방 한 칸 늘리는 것은 고사하고 (아파트로 치면 베란다에 해당하는) 마루를 늘리는 것도 여간 면사무소의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이런 연유로 서울서 과히 멀다고 할 수 없음에도 자연히 젊은 층...2014-08-22 16:37
나무토막 몇 개만 미리 치웠다면도시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시골살이에 우리네 여름철은 과히 친절한 시기가 아니다. 농작물을 키워내는 물과 햇볕이라는 에너지원이 담뿍 선사되는 은혜의 계절임을 익히 알지만 염천 더위에 시골의 삶은 대체로 불편 그 자체다. 덥고, 습하고, 물 것 많고, 풀은 돌아서면 한 발...2014-08-09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