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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빨간색부터 찾아오자

진짜 빨간색부터 찾아오자
등록 2012-12-25 20:41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새누리당이 빨간색으로 전향한 게 2012년 2월이다. 군미필 MB 정부가 정치군인들과 놀아나며 남북관계를 절단내더니 포탄에 두드려 맞았다. 북한이 무서웠을 것이다. 전쟁 나면 MB가 나온 대학은 그래도 안전하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학교 깃발이 빨간색이라 이미 점령한 곳으로 알고 북한 애들이 포를 안 쏜다나 뭐라나. 그럴듯했나? 새누리당이 당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꾼 데는 일단 살고 보자는 심사가 깔렸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면 미국 공화당을 따라했든가. 미 공화당 색깔도 빨간색이다. 그전까지 새누리당 색깔이었던 파란색은 미국 민주당 색깔이다. 어쨌든 당시 진보신당은 4년째 쓰던 당 색깔을 얼토당토않게 보수·극우 정당에 홀라당 뺏기고 말았다.

2004년 강우석 감독이 영화 에 공산주의 혁명가인 를 부르는 장면을 넣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언론들은 해프닝 정도로 처리했다. 그해 KBS 에도 외주 제작사의 실수로 멜로디가 일부 방송됐다. 조·중·동이 난리가 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정연주 사장의 KBS 전파를 탄 는 북한의 혁명을 실어나르는 불온한 참요가 됐다.

가사? 별거 없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 테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일제시대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투쟁가로도 불렸다.

‘민중’ 이런 말만 적당히 개사하면 ‘철새 배척·정권 재창출’에 매진하는 새누리당 당가로도 손색이 없겠다. 새누리당에도 당가라는게 있다. 가사는 이렇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미래 새누리당이 열어간다/ 자유와 평화의 깃발 펄럭이고 희망과 행복이 넘쳐난다/ 대한민국의 소망 이루어지는 날까지 나라 사랑 국민 사랑 다 함께 나가자.”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는 거 별거 아니다. 그게 혁명이다. 새누리당이 흔드는 ‘자유와 평화의 깃발’은 빨간색이겠네. 친이계야 갈 테면 가라, 우리는 새누리당 붉은기를 지키리라.

이게 가 아니면 무엇인가. 12월19일 대선 날,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을 봤다. 한국에서는 은촛대를 훔치자 ‘옜다, 네가 다 가져라’는 어린이용 미담으로 거세된 장발장이지만, 영화에는 원작에 담겨 있는 민중봉기와 혁명의 정신이 강하게 반영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붉은기가 넘실댄다. 뮤지컬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Doyou hear the people sing?)를 다 함께 부르며 영화는 끝난다. “성난 사람들의 노래가 들리는가. 다시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민중의 노래.”

어쨌든 12월19일 늦은 밤, 서울 광화문 앞을 덮은 빨간색은 아주아주 불편했다. 그럴 거면 이제부터 ‘빨갱이’도 댁들이 하든가. 어디 갔니, 진짜 빨간색. 5년은 너무 길다. 그전에 일단 빨간색부터 찾아오자.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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