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이라는 게 있다. 밀반입한 총이나 사시미 들고 설치는 조폭들이 이 죄목에 걸리곤 한다. 1980년대 한가위 보름달이 비치는 밤. 으슥한 골목길과 휑한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에게 이 법은 통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폭음탄·콩알탄·로켓탄·분수탄·잠자리탄을 들고 나타났다. 장난감 딱총도 한 자루씩 주머니에 넣었다.
폭음탄. 단발축폭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폭음탄으로 잘 알려진 다이너마이트형 무기. 심지에 불을 붙이면 커다란 폭음을 내며 터진다. 공중폭발을 유도하려고 바로 안 던지고 들고 있다가 손에서 터지는 사고도 간혹 발생한다. 콩알탄. 작은 돌과 화약을 섞은 뒤 얇은 습자지로 콩알만 하게 돌돌 말아 사용한다. 불을 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갑작스레 나타난 개나 새에게 집어던진다. 남의 집 현관 앞에 깔아두면 지뢰가 되기도 한다. 콩딱콩딱 소리를 내며 터진다. 로켓탄. 폭음탄보다 조금 큰 약실을 가졌다. 기다란 대나무가 달려 있어 불을 붙이면 공중으로 치솟은 뒤 폭발한다. 분수탄. 작은 요구르트병 크기만 하다. 불을 붙이면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불꽃을 분수처럼 쏟아낸다. 잠자리탄. 잠자리 인공위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말 그대로 잠자리처럼 생겼다. 불을 붙이면 공중으로 뱅뱅 돌며 솟아오른다.
장난감 딱총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옥매트처럼 볼록볼록한, 붙이는 파스 크기의 빨간색 종이화약을 사용하는 딱총. 종이화약을 하나씩 찢어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폭음이 발생한다. 종이화약을 테이프 형태로 만든 것도 있었다. 가장 혁신적인 딱총은 플라스틱 탄피를 가진 8연발 리볼버. 아이폰이었다고나 할까. 대포동미사일스러운 것도 있었다. 미사일 앞부분에 화약을 장전하고 던지면 끝이다. 북한제와 달리 불발은 없었다.
싼 것은 50~100원, 비싼 딱총류는 500~1천원이면 무장이 가능했다. 한가위 용돈 대부분이 공책이 아닌 무기 구입에 전용됐다. 무장으로 봐서는 특전사 부럽지 않았고, 날아가는 제트기도 때려잡을 기세였다. 그러나 주요 표적은 동네 떠돌이 개나 예쁜 척하는 계집애들, 공 넘어가도 돌려주지 않는 못된 이웃 영감탱이 집 마당이었다.
혁신과 광기는 아이들을 ‘유나바머’로 만들었다. 로켓탄을 분해하고 합쳐 화약량을 늘렸다. 못, 나무젓가락, 고무줄을 이용해 사제총을 만들었다. 흡사 람보나 북한 특수8군단 같은 게릴라가 돼갔다. 가장 엽기적인 무기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PVC 파이프를 적절한 길이로 잘라 공터에 버려진 세면대 받침대 2개를 직각으로 합체시켰다. 휴대용 미스트랄미사일 발사튜브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깨에 걸치고 조준을 하면 뒤에서 로켓탄을 장전하고 불을 붙였다. 당시 전경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루탄 직격 발사 금지’는 지켜지지 않았다. 로켓탄 대신 분수탄을 넣으면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사람 안 죽고, 남의 집 안 태워먹은 게 다행이다.
추석 연휴 온 동네를 폭파시켰던 폭음탄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추석 명절을 맞아 어린이들의 폭죽·폭음탄 놀이가 성행하면서 곳곳에서 화재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1990년 10월2일 ) 1990년대 초까지도 이런 기사가 나왔지만 그 뒤로는 별로 얘기가 되지 않는다. 찾아보니 요즘도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콩알탄·분수탄·폭음탄 등을 팔고 있다. 나이 들었더니 요즘은 가스불도 무섭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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