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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시간, 윤석열쪽 궤변이 만드는 ‘대혼란’ 수습할 시간

1월14일 첫 변론기일…거리의 시민·각 분야 전문가가 말하는 ‘지금, 여기’와 ‘그 다음’
등록 2025-01-10 21:27 수정 2025-01-14 08:03
정형식(왼쪽),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2025년 1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회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취재기자단

정형식(왼쪽),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2025년 1월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회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취재기자단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눈 온 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던 2025년 1월6일 월요일 오전, 김도영(35)씨는 서울 한남동 도로 위에서 은박담요를 덮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대통령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로 갔고, 체포영장은 버려질 종잇장이 되어가던 속절없는 ‘기다림의 시간’ 한가운데였다. 간호사인 그는 간밤 8시부터 꼬박 12시간의 야간근무를 마치고 온 참이었다.

“어차피 집에 가도 잠을 못 잘 거니까요.”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나눠준 어묵 국물도 조용히 마다한 그는 춥고 졸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이렇게 물리쳤다. “오늘 체포는 어렵겠죠. 무슨 꾀든 부리겠죠. 그럴수록 누구라도 여기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다행히 제가 야간근무니 생업으로 오전에 참여가 어려운 시민들 대신 나오는 겁니다.”

마음속 아우성을 따라 거리로 나온 지 한 달.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2024년 12월3일 밤에도 그는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다. “새벽에 환자분들 분위기가 이상하기에 뭐지 하다가 아침이 돼서야 계엄 사실을 알았어요. 너무 분개했는데 도저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2024년 12월)4일부터 국회도 가고 광화문, 남태령, 관저 앞도 갔죠. 그 경험들이 너무 귀해요.”

혼란을 수습하는 ‘대혼란의 현장’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서 ‘헌재의 시간’이 시작됐다. 2024년 12월14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탄핵심판을 맡게 된 헌재는 두 차례의 변론준비기일 끝에 2025년 1월14일부터 본격 변론기일에 돌입한다. 두 명의 재판관이 추가돼 1월6일 ‘8명 체제’로 첫 회의도 연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제38조에 따라 사건 접수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결정을 선고해야 한다.

‘헌재의 시간’과 함께할 2025년 상반기,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며 어떤 위기와 기회를 맞닥뜨리게 될까. 거리의 시민부터 정치·법조·경제·사회·문화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 같지만 절대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닌 물결의 흐름을 읽기 위해서다.

“헌법재판소의 시계는 계엄의 시계와 비교하면 느릴 수밖에 없다. 불법이나 탈법은 순간이지만 합법이나 준법은 고려할 사항이 많고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지영 고려대 교수(국어국문학)는 ‘헌재의 시간’을 ‘혼란의 수습 과정에서 오는 혼란의 시간’으로 정의했다. “올해 상반기는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란 생각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법적 절차는 빠른 것과는 거리가 먼 절차인데, 이런 느릿한 시간이 우리의 삶을 너무나 불안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편협한 대립, 적대감, 인간에 대한 혐오, 불신이 공동체를 극단적으로 갈라치기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1월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두 번째 변론준비기일은 답변서조차 부실하게 제출한 윤석열 변호인단이 궤변을 늘어놓는 ‘대혼란의 현장’이었다. 그들은 이번 탄핵심판을 “진보-보수, 국헌문란세력-국헌문란방지세력 간의 전쟁”이라 표현하는가 하면 “대통령은 고립된 약자”이며 “적대적 언론 때문에 답변서를 구체적으로 쓸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 신지영 교수는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사람의 답변서는 절대로 튼실할 수 없고 죄질이 나쁘면 나쁠수록 막무가내 태도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며 “헌법재판관들이 이러한 무논리와 막무가내에 준엄한 꾸짖음과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비극을 막을 시간’에 주목했다. “국가비상사태의 근거가 없는 비상계엄 선포, 국회 및 정당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군의 국회 투입과 체포조 작전 수행과 같이 민주주의 체제와 국민 기본권을 심대하게 위협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기각된다면 매우 비극적 역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헌정과 민주주의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사물의 질서 자체에 대해 재고하고 숙고하고 행동할 기회가 온 것”이라고 봤다. 혼란을 수습할 기회, 비극을 막을 기회, 질서를 위해 ‘행동’할 기회. 전문가들이 정의한 ‘헌재의 시간’이 지닌 의미다.

내란죄? 헌재 ‘쟁점’은 헌법 위배 여부

본격적인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돌입하는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의 다섯 가지 쟁점을 △계엄 선포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 발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군대를 동원해 영장 없이 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로 정리했다.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에서 주요하게 기술된 ‘내란죄’ 부분을 쟁점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윤석열 대리인단이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지만 헌법학자들은 이 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법학)는 “헌재는 헌법수호기관으로서 탄핵심판의 법적 요건인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의 위배’ 여부와 그 ‘법 위반행위의 중대성’ 여부라는 두 가지 기준에서 다섯 가지 쟁점에 대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론기일에 돌입한 이상 재판 절차는 신속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은 “피청구인 쪽이 윤석열의 출석 여하를 둘러싸고 기일 연기를 요구하는 등 시간끌기의 전략으로 일관하겠으나 헌재가 이런 전술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봤다. 김종철 교수도 “대통령직이 헌정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막중한 만큼 최우선 심판 대상으로 삼아 신속하고 공정하게 심판하겠다는 헌재의 다짐이 잘 이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2025년 1월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2·3 비상계엄 및 포고령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2025년 1월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2·3 비상계엄 및 포고령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계엄령 선포를 감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헌정제도의 취약성을 보여줬지만, 그걸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우리 헌정제도와 민주주의가 법적, 정치적, (시민)문화적으로 꽤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분노하되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종철 교수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비상계엄사태로 촉발된 헌정 위기를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제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제대로 복원하는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1월14일 첫 변론기일에 착수해 1월16일, 21일, 23일, 2월4일에 변론기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때와 비슷한 ‘2회 변론준비기일, 주 2회 재판’ 형식이다. 추가 기일이 잡히지 않는다면 이후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윤석열은 변호인단을 통해 “적정한 기일에 출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2차 변론기일부터는 윤석열이 참석하지 않더라도 재판은 진행된다.

 

‘국가 해체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통령 윤석열이 경호처를 동원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면서 헌재는 ‘체포’에 대한 입장까지 질문받는 상황이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1월3일 “불구속 재판 당사자에 대해 심판정 복도는 체포행위 가능한 곳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입장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1월8일 윤석열 쪽에선 헌재 출석에 ‘경호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법에 따라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는 모습과 동시에 법조인 출신의 대통령이 체포영장에도 불응하며 법치를 외면하는 모습을 함께 목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상황을 깊게 우려한다. 김종철 교수는 “대한민국이 무법천지임을 전세계에 보여줬기에 제대로 책임 추궁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법 무시, 공권력 무시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여성학)은 “무속 등이 적극적으로 동원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친목 중심 인사관리, 법과 원칙을 자신들 뜻대로 이용해도 된다고 믿는 오만함 등을 보인 내란수괴와 동조세력은 근대사회계약의 핵심인 공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점에서 공화국의 근간을 무너트렸다”고 지적했다. 신진욱 교수는 “대통령과 여당, 그 지지자들이 법원의 결정에 단지 불만을 표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불응 행위를 한 현실은 대한민국 국가의 공적 권위가 부정되는 국가성(Stateness) 자체의 위기를 뜻하며 상황이 더 심화된다면 사실상의 국가해체 상태까지 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통상학)는 대외적 위기를 우려했다. 그는 “현재 경제의 불확실성을 초래한 최대 요인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이나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대외변수보다 국내 정국”이라며 “환율과 주가의 변동성은 계엄과 탄핵 그 자체보다 이후 지체되는 윤석열 체포 과정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므로 이를 타개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헌재의 시간’이 갖는 ‘지정학적 함의’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 준 미국은 내란을 선동한 자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민주주의의 추락을 보여줬는데 한국은 그런 자를 결코 시민사회가 용납하지 않고 엄단해 헌법 수호의 결연함을 입증한다면 ‘소프트 파워’를 격상할 수 있다”며 “이는 트럼프 정부 취임에 따른 대외악재 대응이라는 경제적 사고를 훨씬 넘어서는 우리의 생존과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2030 세대, 헌정 수호의 주체로 서다

이런 상황에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 특히 2030 세대를 전문가들은 희망의 ‘동력’으로 봤다. 김양희 교수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법치에 도전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사태이나, 이를 막아낸 시민적 저항은 분명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전망하게 만드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2030 세대가 스스로 헌정 수호의 주체로, 그것도 아주 창의적으로 우뚝 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도 “민주화의 경험만 가진 2030 세대가 대통령의 체포불응 버티기 행태나 권한대행의 무능함, 여당의 아무말 대잔치 등을 바라보면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우리 현대사의 큰 문제였던 국가중심주의의 틀을 과감히 떨쳐 버릴 수 있게 될 것이 가장 의미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신지영 교수는 “계엄사태를 만든 자들은 5060 남성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최고 기득권 계층으로 왕조주의적인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반면, 광장의 주도 세력은 2030 여성이어서 이 사회의 진보를 누가 가장 염원하는지가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권김현영 소장은 “이명박·박근혜 퇴진 시위 때 나온 광장의 촛불소녀들이 ‘배후세력’을 의심받았던 것과 비교한다면 ‘응원봉 문화’는 그러한 의심도, ‘진보의 치어리더’라는 식으로 여성을 들러리 세우는 해석도 불가능함을 보여준 커다란 상징 전환”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윤석열과 국민의힘, 극우 유튜버 등이 만든 극우 블록 깨기(권김현영), 시민적 동력을 제도 안으로 내재화시키는 노력(김양희), 각자도생하지 않고 공존·공생·공영하는 민주공화국으로의 발전(김종철), 광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신지영), 헌정제도의 취약성 보완(홍성수), 과거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던 헌법의 본격 개정(한상희) 등을 꼽았다.

야간 근무를 하는 간호사 김도영씨는 ‘헌재의 시간’ 동안 계속 거리로 나설 계획이다. “정말 절망해야 하는 순간은 모두가 평화로워 보일 때라고 생각해요. 일본어에 ‘평화바보’(헤이와바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보다는 지금 상태가 훨씬 건강한 성장통이 아닐까요. 이런 과정 없이 어떻게 고도의 정치가 되겠어요? 계속 부딪히고 뭉쳐야죠. 평화바보가 되긴 싫어요.”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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