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엄동설한에 할 일이 생겼다. 700평 감밭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감 수확이 신통치 못했다. 전정도 하고, 거름도 주고, 친환경 약재도 뿌렸건만 열매는 얼마 달리지 않고, 거의 떨어져버렸다. 감나무밭을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감나무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밭은 돼지나 닭이 좁은 공간 속 수없이 붙어 있는 공장식 축산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 감나무가 저렇게 붙어 있고 다양성이 없으니 감나무를 해치는 벌레만 붐비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재작년 강원도 정선에서 퍼머컬처 심화 실습 파밍 과정도 수료했겠다, 퍼머컬처 방식으로 감나무밭을 꾸며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퍼머컬처란, 자연 생태계의 패턴과 특성을 바탕으로 토지 관리와 작물의 식재를 설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저런 자료 조사 끝에 과수원에 적용할 방법을 찾아냈다. 다음 세 가지를 중점으로 밭을 설계했다. 질소고정 나무를 심어 거름을 투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거름이 생성되게끔 한다. 최대한 다양성을 살려 한 종의 벌레만 기승부리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인간의 노동은 최소로 들어가게 한다.
질소고정 나무로 가장 좋은 것은 보리수다. 보리수를 중간중간 심어 질소를 생성하게 한다. 그 사이엔 블루베리나 무화과를 심는다. 미성숙 길드, 즉 나무가 그늘을 덮지 않는 곳엔 참깨나 들깨 등 작물을 심고, 성숙 길드, 즉 나무가 그늘을 덮는 곳엔 컴프리, 매리골드, 산마늘, 부추 등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을 심는다. 이렇게 해서 감나무밭 700평을 다양한 생명이 역동하는 농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말이 청산유수면 뭐 하나. 실행이 돼야 한다.
가장 먼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감나무를 뽑아내야 한다. 마을에서 체인블록을 빌렸다. 쇠사슬을 당기는 것만으로 1t의 힘을 줄 수 있는 도구다. 처음엔 쉽게 되겠지 생각하며 두꺼운 나무 기둥 세 개를 잘라 거치대를 만들고 체인블록과 나무 그루터기를 연결했다. 있는 힘껏 당겼는데도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나무 기둥이 휘면서 부러져버렸다. 알고 보니 나무뿌리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톱을 가지고 여기저기 나무뿌리를 제거하니 약간의 힘만으로도 나무가 쉽게 제거됐다.
한 나무는 끝까지 뽑히지 않는다. 여기저기 뿌리를 제거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이 나무는 옆의 뿌리가 아니라 밑에 아직 두꺼운 뿌리가 살아 있었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년에 뿌리에서 잔가지가 또 올라온다. 밑에 있는 뿌리를 도끼로 내리찍고, 톱으로 자른다. 이 질긴 녀석은 뽑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환상박피(통로 구실을 하는 체관부를 벗겨내는 일)를 해놨으니, 점점 말라 죽을 것이다. 다른 녀석부터 뽑기로 한다. 나무를 뽑으며 말했다. “너희를 이렇게 뽑아내지만, 너희들은 다른 곳에 가는 것이 아니야”라고. “너네는 다시 톱밥으로 만들어져 이곳에 뿌려질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고 나무를 타일렀다. 아름다운 정원의 거름이 되는 것이니 어서 뽑혀달라고 기도한다. 그 기도가 다른 나무에도 전달됐을까. 감나무 18개를 뽑아야 하니 올겨울이 춥고 견디기 힘들겠지만, 나무를 뽑고 나면 더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질 테니 그 희망 하나로 나무뿌리에 도끼를 던진다.
글·사진 박기완 글 짓는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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