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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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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여, 빚 갚지 마라

<르 디플로> 3월호 머리기사,
구해준 국가를 다시 겁박하기 시작하는 거대 금융자본의 실체 보여줘
등록 2010-03-12 11:54 수정 2020-05-03 04:26

지구촌을 휩쓴 금융위기의 주범은 무모한 투기판을 벌인 거대 금융자본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그들이 남긴 천문학적 채무를 대신 짊어졌다. 정확히 말해, 긴축재정 등을 통해 자국민에게 투기자본의 부담을 떠넘겼다.

그리스에서 금융자본이 한 일

<르 디플로> 3월호

<르 디플로> 3월호

국가는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금융자본을 구해줬지만, 힘을 되찾은 그들은 국가를 겁박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국가에 권유했던 파렴치한 짓을 폭로하겠다고 을러대 돈을 뜯어냈다.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면 대출 금리가 올라가기 때문에 협박은 쉽게 통했다. 하긴 국가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도 그들이다. ‘유럽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그리스는 그 전형이다.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정부가 수십억 유로를 비밀리에 빌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뒤이어 유럽연합(EU)의 공공부채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기발한 꼼수로 재정회계 장부를 조작하도록 조언했다. 이 획기적인 수법 덕분에 그리스의 방만한 국가채무는 곧 은폐됐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얼마 전 900만달러(약 105억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그리스는 전체 공무원의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잃었다.”

그래서다. (이하 ) 한국판은 3월호 머리기사에서 처량한 국가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빚 갚지 말라!” 는 “(국가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 물론 채권자들(거대 금융자본)에게는 힘든 순간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채권자들이 지난 20년간 국가에 세금을 내는 대신 국가의 채권자 노릇을 하면서 미납한 세금을 한 번에 갚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소도시 알메리아. “지중해와 가도르산맥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유럽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고, 인건비는 가장 낮기로 유명한 곳”이란다. 는 그곳에서 시작되는 기나긴 여정을 촘촘히 추적한 기사를 1면에 올렸다. 이름하여 ‘토마토 잔혹사’다.

1960~70년대만 해도 알메리아는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이탈리아 영화인들이 미국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한 영화)의 촬영 장소로 삼을 만큼 황량하기만 했단다. 요즘 이곳에는 수천개 비닐하우스가 도열해 있다. 비닐하우스에는 유럽의 소비자에게 사시사철 제공할 채소가 자라고 있다. 몇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그곳에서 일한다. 는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1만 명으로 추산되고, 이 가운데 2만~4만 명 정도가 불법 체류자”라고 전했다. 이들이 생산한 토마토는 가깝게는 1900km 떨어진 파리, 멀게는 3300km 떨어진 폴란드의 바르샤바까지 옮겨진다. 법정 휴식 시간을 고려했을 때 짧게는 이틀 반나절에서 길게는 닷새가 걸리는 거리란다.

여러 날 장거리 운행에 나서는 이들은 서유럽 출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동유럽 출신 기사들이다. 는 “알메리아의 농장에서 혹사당하는 외국인 노동자, 과로에 시달리는 동유럽 출신 화물기사, 운송트럭이 내뿜는 매연, 폭리를 취하는 대형 유통업체의 횡포까지 토마토 하나에 무역 세계화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검은 대륙을 짓밟는 강대국의 농지전쟁을 고발한 언론인이자 작가인 조앤 백스터의 기사도 눈길을 끈다. 백스터는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을 거라 확신한 은행, 투자 펀드사, 대기업, 국가, 돈 많은 백만장자들이 아프리카에 대규모 기업식 농장을 세워 여기에서 전량 수출 목적의 바이오 연료와 식료품을 생산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이 계획이 완성 단계에 이르면 자연환경의 균형과 현지 농업 분야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면한 정부와 징계한 IOC

출판면에선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사회평론 펴냄)를 다뤘다. 눈 밝은 독자에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사안일 터다. 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 자체가 출간의 당위성을 웅변해준다. 하승우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는 “지난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건희가 범죄를 저질러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며 공개 문책하고 5년 동안 분과위원회에 참여할 권리를 정지시켰다”며 “범죄자를 사면한 정부와 그를 징계한 IOC, 누가 더 상식적인가”를 물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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