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2026년 2월5일 오후 경남 창원 성산구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2024년 10월8일 엄포를 놨다. 명씨의 발언 이후 윤석열의 지지율은 20% 아래로 내려갔다. 명씨가 구속 기소된 12월3일 밤, 윤석열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명씨의 변호인이 “‘황금폰’을 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할 수도 있다”고 말한 다음날이기도 하다. 12·3 내란의 결정적 ‘트리거’가 명씨의 입과 휴대전화 증거 때문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까닭이다.
도대체 명씨는 윤석열 부부와 어떤 일을 벌였을까? 공익제보자 강혜경씨의 폭로와 언론보도를 통해 명태균 게이트의 얼개가 드러났지만, 재판대와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은 일부일 뿐, 여전히 완전한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 의혹은 ‘여론조사 무상 제공’이다. 명씨가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부부에게 무상으로 여론조사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 김건희씨 재판에서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는 2026년 1월28일 김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알선수재 혐의만을 일부 인정해 김씨에게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김씨와 윤석열이 명씨로부터 2021년 6월부터 모두 약 2억7440만원에 이르는 58회의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받았다는 혐의다. 또 윤석열 부부는 2022년 3월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가로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씨가 미는 김영선 전 의원을 경남 창원 의창 지역구에 전략공천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 혐의를 수사한 김건희 특별검사팀(민중기 특검)이 “의혹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했다”고 자신했을 정도로, 공개된 증거는 많다. 윤석열이 2022년 5월9일 명씨와 한 통화에서 “김영선이를 좀 (공천)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며 “내가 하여튼 상현이(윤상현 국민의힘 의원)한테 한 번 더 얘기해놓을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말한 녹취가 보도됐다. 같은 해 5월10일 공관위 회의록에 윤 의원이 김 전 의원을 거론하며 단수추천을 언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명씨가 공천 결과 발표 8일 전에 “오늘 여사님 전화 왔는데, 내 고마움 때문에 김영선 (공천) 걱정하지 말라고 나보고 고맙다고 (했다)”며 “자기 선물이래”라고 말한 통화 녹취도 한겨레21이 보도한 바 있다.(제1536호 참조) 실제로 김 전 의원은 2022년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공천됐다.
이처럼 뇌물과 대가의 관계가 확실한 혐의였음에도 재판부는 여론조사 관련 계약서나 지시가 없었고, 김 전 의원 공천은 국민의힘 공천심사위원회의 토론과 투표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검사 출신인 김규현 변호사는 “‘계약서가 없다’는 것을 무죄 논리로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핵심은 계약서 여부가 아니라, 정치적 대가 관계가 있냐 없냐 여부”라고 강조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도 2026년 1월29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정치자금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보더라도 이건 이익의 제공이고 그 이익은 당시 대통령 후보자한테 돌아갔다고 봐야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천관리위원회 표결이라는 형식적 절차가 있었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한 논리도 이해하기 어렵다. 김건희 특검은 1월30일 입장문에서 “명씨의 부탁에 따라 윤석열이 공천관리위원장 윤상현에게 김영선의 공천을 청탁한 사실이 인정됨에도 당연한 절차인 공관위 회의를 거쳤다는 점을 무죄 이유로 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검은 곧바로 항소했다.
명씨의 무상 여론조사 제공 의혹은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을 예정이다. 윤석열도 같은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공소사실이 같기 때문에 김건희 재판의 ‘무죄 선고’가 영향을 줄 수 있다. 김건희 재판 역시 쌍방 항소로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고, 여기서 유무죄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김규현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뒤집힐 것이라 본다”고 내다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재판장)는 2026년 1월27일 윤석열과 명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고, 정식 재판은 3월17일 시작될 예정이다.
김건희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의 미심쩍은 무죄 선고는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줬다. 명씨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아준 대신 2022년부터 김 전 의원의 세비를 여러 차례 걸쳐 모두 8070만원을 주고받았다는 이른바 ‘세비 반띵’ 사건이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김인택)는 2026년 2월5일 1심 선고공판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명씨와 김 전 의원 등 5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명씨가 처남에게 ‘황금폰’을 숨기게 한 증거은닉 교사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 전 의원이 명씨에게 건넨 돈이 ‘공천 대가’가 아닌 ‘급여와 채무 변제’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공천 자체가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앞선 김건희 무죄 선고 재판부의 논리대로 “김 전 의원의 공천이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다수결로 결정된 점 등 명씨가 김 전 의원의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의아한 점은 명씨가 공천받기 위해 윤석열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에게 공천을 부탁했고, 윤석열이 실제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인 윤상현 의원에게 연락했다며 재판부가 “명씨의 활동이나 노력이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명씨가 여론조사를 무기로 윤석열 등에게 김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아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해당 공천이 공천관리위원회라는 ‘형식’을 거쳤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본 셈이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2025년 10월2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증인석으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여론조사를 무기로 한 명씨의 정치권 로비 활동은 전방위적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도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받고 대가를 제3자가 대납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먼저 오 시장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명씨로부터 10차례 여론조사를 받고 후원자로 알려진 사업가 김한정씨를 통해 비용 3300만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명씨는 2021년 1월22일 오 시장과 한 통화에서 “나경원을 이기는 여론조사가 절실히 필요하다” “정자법(정치자금법) 위반 때문에 김한정에게 여론조사비용 2천만원을 빌리러 간다” 등의 말을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오 시장은 재판을 지방선거 뒤인 2026년 6월 이후로 미뤄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조형우)는 2026년 3월4일을 첫 공판기일로 정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오 시장과 유사한 의혹을 받는다. 홍 전 시장 쪽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명씨에게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최측근인 박재기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이 이 비용을 대납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됐다고 한겨레21이 보도한 바 있다.(제1559호 참조) 이 밖에 2021년 국민의힘 복당 당시, 2022년 대구시장 선거 등에서 모두 19번의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보고, 그 비용 약 1억원을 박 전 사장이 대납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하지만 대구지방경찰청과 특검은 홍 전 시장을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이 사건 참고인 조사를 받은 강혜경씨의 변호인단은 “오세훈보다 홍준표 의혹은 더 구체적인데도 특검에서 전혀 다루지 않고 경찰에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명씨와 연루된 의혹이 더 많다. 이 대표는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는 2022년 4월3일 강혜경씨와 한 통화에서 “어제 준석이(이 대표)한테 사정사정해가 그 (김 전 의원에 대한) 전략공천 받았어. (…) 나보고 (김 전 의원이) 이기는 여론조사 몇 개 던져달래”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날인 4월4일 명씨가 이 대표에게 김 전 의원이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내며 “대표님 꼭 도와주세요.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 대표가 “넵”이라고 답했다는 사실을 뉴스타파가 보도했다. 앞서 이 대표가 2021년 5월께 명씨에게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경남 지역 정치인 배아무개씨에게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하게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명씨가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 등 부산·경남 광역자치단체장에게도 여론조사를 제공했고, 2022년 3월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공천받도록 도운 대가로 서울시의원 한 자리를 받기로 했다는 녹음파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또 명씨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공천을 자신이 도왔다고도 주장한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인 강혜경씨가 2025년 7월16일 서울 종로구 김건희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참고인 조사를 받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명씨가 공천에 관여한 것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책 결정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인다. 명씨가 2022년 10월 국가산업단지 발표 5개월 전부터 창원시 고위 공무원으로부터 대외비 문서를 공유받아 검토했고, 2022년 11월과 12월 창원을 국가산단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윤석열과 김건희씨에게 전달한 정황을 한겨레21이 보도한 바 있다. 실제 4개월 뒤 창원은 국가산단으로 지정된다. 또 명씨가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 파업은 불법이므로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윤석열에게 보냈고, 실제 정부와 윤석열이 공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취지의 발표를 하게 했다는 의혹도 있다.
그러나 특검은 대부분의 의혹을 확인하지 못한 채 경찰 등 수사기관으로 사건을 넘겼다. 결국 2026년 2월 본격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2차 종합특검에서 남은 의혹들의 수사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2차 종합특검수사법에 적시된 수사 대상에 명태균 허위 여론조사, 공천거래 등 선거 개입 혐의가 포함됐고, 창원 국가산단 지정 과정도 포함됐다.
명태균 게이트의 공익제보자인 강혜경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규현 변호사는 “이미 강혜경씨가 갖고 있던 데이터와 자료는 거의 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 제공했다. 여기에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받고, 제3자가 대납한 정황이 있는 정치인들이 모두 확인된다”며 “종합특검이 수사 의지를 갖고 있다면 이들을 대부분 기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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