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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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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 잃은 전직 포병장교가 파헤친 전쟁의 민낯

전쟁 연구가 최우현의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등록 2025-10-24 15:32 수정 2025-10-30 07:51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2025년 10월19일 이스라엘은 휴전 9일 만에 팔레스타인에 포를 쐈다. 10시간 뒤 아무렇지 않은 듯 휴전을 재개했다. 이 포격으로 가자지구에서 45명이 숨졌다.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집단살해다. 이스라엘 국민의 기대수명은 83.8년이지만 가자 주민은 40.5살이다.(2024년 랜싯 자료) 이스라엘 국민은 1년 전에 견줘 기대수명이 1년가량 늘었다. 가자 주민의 1년 전 평균수명은 75.7살이었다.

대부분의 전쟁 당사국은 되도록 아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가자 전쟁에서는 ‘아기만 골라 죽이겠다’는 이스라엘의 악의가 실존하는 듯 보인다고 독립연구자 최우현은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돌베개 펴냄)에서 말한다. 이스라엘에 의해 숨진 3만4344명의 이름을 기재한 649쪽의 명부는 214쪽까지 유아·어린이였다. 이스라엘 언론 ‘예루살렘 포스트’는 눈에 빛을 잃은 아이를 ‘플라스틱 인형’이라고 말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음모론을 그대로 싣는다. 전쟁의 비극은 이스라엘에도 있다. 정착촌 마알레 아두밈에서 미즈라히가 2024년 6월 자살한다. 그는 8개월 전 징집됐고 주검을 처리하는 일에 투입됐다. 숨이 붙어 있는 부상자, 병자를 깔아뭉개고 지나가는 일이었다.

저자는 이스라엘 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C라는 평범한 한국인을 등장시킨다. 우선 C는 전쟁숭배자들이다. 전쟁 무기들을 늘어놓는 방위산업 전시회,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산화한 군인, 총격에 무너져내리는 산을 아이스크림 같다고 말하는 희화화 등이 C다. 6·25전쟁 당시 백선엽은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는 병사의 허리춤에 장약을 묶는 육탄부대를 결성하고 특공작전을 벌였다. 그의 휘하 부대에서 90명이 죽었다.

C는 전쟁을 내면화해온 우리다. 전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이 수첩에 적은 ‘수거 대상에 대한 처리 방안’. 여기서 ‘수거 대상’은 좌파 판사, 연예인, 정치인 등이다. 이런 끔찍한 발상은 대한민국 과거 악행의 유산과 광기가 이어져온 결과라고 최우현은 말한다. 제주4·3에서부터 6·25전쟁, 수없는 민간인 학살과 오랜 군인 독재. 한국인은 전쟁은 알아도 평화는 몰랐다.

C는 저자의 과거이기도 하다. 원해서 군인이 됐고 호전적이었다. 최우현은 포병장교로 근무하다 청력을 잃었다. 70%가 들리지 않는 세계에서 청각 세포가 아우성친다. 어떤 때는 매미 소리로 울리고 어떤 때는 그라인더 소리로 들린다. 겉으로는 들리지 않는 듯한데 소음에 얼얼해진 귀가 먹먹한 세계. 이 소음으로 노이로제를 앓는다. 불면증과 강박증. 얻은 건 또 있다. 전쟁 뒤편을 보다가 철저한 ‘전쟁 불복종주의자’가 됐다. 322쪽, 2만원.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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