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우석훈이다. 로 시작된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의 네 번째 권, 시리즈의 완결편 (개마고원 펴냄)이 나왔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시리즈의 앞쪽 세 권은 가 윤리적 경고인 에토스, 은 최소한의 이성과 합리성인 로고스, 는 평화를 향한 파토스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은 ‘대안’을 본격적으로 거론한다고 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답게 시리즈의 취지(제목)와 잘 맞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기 5년 동안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 우석훈의 진단이다. 9월18일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2차 민관합동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13강으로 이루어진 정치경제 에세이
이 마지막 권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완결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동안 시리즈 4권을 완성하겠다는 것이었는데, 훌쩍,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시점으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행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국민을 생물학 전문가로 만든 데 이어, 경제학 전문가로 만들고 있는 시점에 꼭 맞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세계 자본주의의 탄생과 전개 속에서의 경제학 이론을 1부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를 2부에서 다루고, 3부에서 대안을 이야기한다. 각 장은 12개의 강의와 종강으로 강의식으로 구성돼 있다. 한 학기의 강의 일정에 딱 맞는데, 그는 이 강의의 제목이 ‘한국경제론’이라면 적당할 것 같다고 말한다.
책 표지에는 수식이 하나 나와 있다. 책 제목에 들어간 ‘괴물’의 형식이다.
한겨레21/ 출판
덧셈의 왼쪽 항은 서울에 살면서 학벌을 중심으로 권력을 장악해온 서울 학벌 엘리트, 오른쪽 항은 를 소통 양식으로 삼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온 지방 토호들의 경제다. 이 둘을 더해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적분한 값은 2~3%다. 저자는 이것을 “지난 10년 동안 어떤 작동원리로 특정 엘리트들 2~3% 정도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면서 특수한 구조를 만들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적분함수”라고 말한다. 서울 중심주의, 대학 서열화, 보수 언론, 보수정당 등의 변수들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 경제를 지배해왔다는 말이다. 왜 환율, 이자율, 코스피(KOSPI), 국내총생산(GDP), 투자, 수출 등 우리가 경제성장과 관련된 식에서 흔히 보던 것들, 적어도 교육, 자원분배, 자원 재활용, 세금 등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간주되는 것들은 이 식에 없을까. 저자가 보기에 경제를 좌우해온 것은 앞에서 말한 2~3% 계급들의 이익 추구와 정치이기 때문이다(식 자체를 평가하자면, 좌변과 우변의 함의가 똑같아서 자의적이고 참으로 싱겁다). 이렇게 그에게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다. “사실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경제학의 원래 이름은 ‘정치경제학’이었다.”
‘괴물’의 근미래는 비관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한국이 미국식 경제체제를 채택한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FTA를 맺은 상대방인 중남미로 전락할 뿐이다. “대통령의 재임기 5년 동안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한국이 파시즘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한나라당 일당독재 혹은 한나라당 파시즘으로 가지 않을 길은 있을까? 매우 좁아 보인다.” ‘암울한 미래’다.
암울한 미래의 대안은 ‘제3의 부문’이 책의 주제가 ‘대안’이라고 그랬다. 극단적으로 공포스러운 미래에 ‘희망의 경제학’이 있다. ‘제3의 부문’이다. “저는…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카테고리… 옵션을 더함으로써 질적 전환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공동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고, 또 마르셀 모스 같은 사회학자는 ‘증여의 경제’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또 최근의 정보경제학은 여기서 ‘믿음’이라는 개념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이 제3부문을 부르는 용어로는 생협,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NPO) 등의 단어가 추가된다. 대체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 특히 4만달러를 넘은 나라들은 기업과 공공 부문과 제3부문이 1:1:1로 3등분해서 경제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 뒤 90년대 들어 많은 나라들이 어려워졌으나 제3부문이 경제를 3등분해 가진 나라들은 예외였고, 이 나라들이 4만달러의 고지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갓 넘긴 대한민국도 이 부문을 만들어나가야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책은 강의를 표방하지만 ‘정치경제 에세이’로 읽는 게 적당하다. 꼭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학문적인 치밀함은 부족하다. 책은 ‘참조문헌’도 ‘찾아보기’도 없다. ‘대안’으로 내세운 ‘제3부문’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그는 수세적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실증적인 데이터를 통해서 다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는 그렇게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다각적인 실증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관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두려움과 기대로 그 첫걸음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나온 ‘대안 시리즈’의 대안 중 가장 그럴듯하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에둘렀지만 의 ‘영리한’ 점, 그리고 우석훈 글쓰기의 영리한 점도 연결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재미없는 이론 대신 한국 자본주의의 ‘필패론’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적나라하게 공격하는 대중적 글쓰기, 그리고 ‘희망의 경제학’. ‘책머리에’의 첫 번째 문장 “저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겸손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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