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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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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제3부문이 괴물을 먹는다

정부가 국민을 경제학자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읽기에 좋은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
등록 2008-10-02 14:23 수정 2020-05-03 04:25

또 우석훈이다. 로 시작된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의 네 번째 권, 시리즈의 완결편 (개마고원 펴냄)이 나왔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시리즈의 앞쪽 세 권은 가 윤리적 경고인 에토스, 은 최소한의 이성과 합리성인 로고스, 는 평화를 향한 파토스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은 ‘대안’을 본격적으로 거론한다고 되어 있으며, 마지막 권답게 시리즈의 취지(제목)와 잘 맞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기 5년 동안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 우석훈의 진단이다. 9월18일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2차 민관합동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기 5년 동안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 우석훈의 진단이다. 9월18일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2차 민관합동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13강으로 이루어진 정치경제 에세이

이 마지막 권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완결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동안 시리즈 4권을 완성하겠다는 것이었는데, 훌쩍,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시점으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행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국민을 생물학 전문가로 만든 데 이어, 경제학 전문가로 만들고 있는 시점에 꼭 맞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세계 자본주의의 탄생과 전개 속에서의 경제학 이론을 1부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를 2부에서 다루고, 3부에서 대안을 이야기한다. 각 장은 12개의 강의와 종강으로 강의식으로 구성돼 있다. 한 학기의 강의 일정에 딱 맞는데, 그는 이 강의의 제목이 ‘한국경제론’이라면 적당할 것 같다고 말한다.

책 표지에는 수식이 하나 나와 있다. 책 제목에 들어간 ‘괴물’의 형식이다.

한겨레21/ 출판

한겨레21/ 출판

덧셈의 왼쪽 항은 서울에 살면서 학벌을 중심으로 권력을 장악해온 서울 학벌 엘리트, 오른쪽 항은 를 소통 양식으로 삼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온 지방 토호들의 경제다. 이 둘을 더해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적분한 값은 2~3%다. 저자는 이것을 “지난 10년 동안 어떤 작동원리로 특정 엘리트들 2~3% 정도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면서 특수한 구조를 만들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적분함수”라고 말한다. 서울 중심주의, 대학 서열화, 보수 언론, 보수정당 등의 변수들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 경제를 지배해왔다는 말이다. 왜 환율, 이자율, 코스피(KOSPI), 국내총생산(GDP), 투자, 수출 등 우리가 경제성장과 관련된 식에서 흔히 보던 것들, 적어도 교육, 자원분배, 자원 재활용, 세금 등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간주되는 것들은 이 식에 없을까. 저자가 보기에 경제를 좌우해온 것은 앞에서 말한 2~3% 계급들의 이익 추구와 정치이기 때문이다(식 자체를 평가하자면, 좌변과 우변의 함의가 똑같아서 자의적이고 참으로 싱겁다). 이렇게 그에게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다. “사실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경제학의 원래 이름은 ‘정치경제학’이었다.”

‘괴물’의 근미래는 비관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한국이 미국식 경제체제를 채택한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FTA를 맺은 상대방인 중남미로 전락할 뿐이다. “대통령의 재임기 5년 동안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한국이 파시즘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한나라당 일당독재 혹은 한나라당 파시즘으로 가지 않을 길은 있을까? 매우 좁아 보인다.” ‘암울한 미래’다.

암울한 미래의 대안은 ‘제3의 부문’

이 책의 주제가 ‘대안’이라고 그랬다. 극단적으로 공포스러운 미래에 ‘희망의 경제학’이 있다. ‘제3의 부문’이다. “저는…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카테고리… 옵션을 더함으로써 질적 전환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공동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고, 또 마르셀 모스 같은 사회학자는 ‘증여의 경제’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또 최근의 정보경제학은 여기서 ‘믿음’이라는 개념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이 제3부문을 부르는 용어로는 생협,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NPO) 등의 단어가 추가된다. 대체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 특히 4만달러를 넘은 나라들은 기업과 공공 부문과 제3부문이 1:1:1로 3등분해서 경제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 뒤 90년대 들어 많은 나라들이 어려워졌으나 제3부문이 경제를 3등분해 가진 나라들은 예외였고, 이 나라들이 4만달러의 고지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갓 넘긴 대한민국도 이 부문을 만들어나가야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책은 강의를 표방하지만 ‘정치경제 에세이’로 읽는 게 적당하다. 꼭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학문적인 치밀함은 부족하다. 책은 ‘참조문헌’도 ‘찾아보기’도 없다. ‘대안’으로 내세운 ‘제3부문’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그는 수세적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실증적인 데이터를 통해서 다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는 그렇게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다각적인 실증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관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두려움과 기대로 그 첫걸음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나온 ‘대안 시리즈’의 대안 중 가장 그럴듯하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에둘렀지만 의 ‘영리한’ 점, 그리고 우석훈 글쓰기의 영리한 점도 연결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재미없는 이론 대신 한국 자본주의의 ‘필패론’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적나라하게 공격하는 대중적 글쓰기, 그리고 ‘희망의 경제학’. ‘책머리에’의 첫 번째 문장 “저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겸손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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