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예산 환전 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 드디어 일이 터지는구나. 외환보유고 문제없다고 말로만 떠들어대는데 이제야 시한폭탄 핵잠수함이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는구나. 지금 외국 애들 전화하고 난리가 났는데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2008년 7월30일)
“2008년 12월29일 오후 2시30분 이후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 -정부 긴급명령 1호- 중요 세부사항은 각 회사별 자금관리 운영팀에 문의 바람. 세부적인 스펙은 법적 문제상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음. 단 한시적인 기간 내의 정부 업무 명령인 것으로 제한한다.”(2008년 12월29일)
원고지 두 장도 안 되는 짤막한 글, 인터넷 공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글이지만 이 글을 쓴 서른한 살 젊은이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 불린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그렇게 외부와 단절된 채 감옥에서 100여 일을 보내야 했다.
검찰 과잉수사에 면죄부 준 구속영장 발부이 두 건의 글이 “정부의 환율정책을 방해하고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렸다”며 그를 옭아맨 건 검찰이었지만, 법원은 검찰의 인신 구속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지난 1월10일 김용상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외환시장 및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 사안의 성격 및 중대성에 비추어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며 순순히 영장을 발부해줬다. 그로부터 닷새 뒤 변호인단은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재판장 허만, 배석판사 이재신·이승호)는 “박씨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객관적인 통신 사실 이외의 다른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증거인멸 내지 도주의 염려가 있어 구속영장 발부는 적법하다”고 밝혔다. 영장실질심사 때보다 한발 더 나아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까지 들어가며 검찰의 황당한 행동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검찰은 그에게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을 적용했다. 그러나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표현이 명확하지 않으며, 법 조문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성이 강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이 법이 제정된 1983년에는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기에, 미네르바를 어떻게든 사회와 격리하려는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비판이 강할수록, 유죄 심증을 내보인 법원의 영장 발부와 구속적부심 기각의 충격파는 컸다.
그래서, 무죄판결은 더욱 빛났다. 지난 4월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다 하더라도 당시 게시글의 내용이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박씨가 그런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허위의 사실을 게시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가 없는 이상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유 판사는 박씨가 쓴 ‘외화 환전 업무 중단’ 글을 두고는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외화 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된 게 아니라 시중은행의 외국환평형기금 운용 수익률 하락으로 외화 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됐다는 검찰 주장은 사실로 인정된다”면서도 “외화 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된 것은 사실이고 당시 실제로 외환보유고가 줄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에 위법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달러 매수 금지 공문’ 글에 대해서도 “기획재정부에서 금융기관에 달러 매수 자제 요청을 한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었고, 박씨가 사과한 뒤 글을 삭제한 점” 등을 이유로 무죄 판단을 내렸다. 또 “단문의 보도문 형식만으로 내용의 긴박성이나 신뢰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으며, 박씨의 글이 (환율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이를 계량화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박씨가 올린 수백 편의 글 가운데 오직 2편을 문제 삼아 표적수사를 벌인 검찰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미네르바 사건 1라운드는 우리 사회에 ‘표현의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극적인 반전으로 막을 내렸다. 박씨의 변호인단은 1심 선고 직후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진행 중이어서 항소심은 미뤄진 상태다.
‘안기부 X파일’ 사건과 끝까지 경합그런데 ‘미네르바 무죄’ 판결이 ‘올해의 판결’로 선정되는 데에는 심사과정에서 논쟁이 필요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건, 당대에는 껍질을 깨는 아픔을 동반해야 했겠지만 상식적으로는 당연한 일일 터. 독립적인 사법부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판사가 죄 없는 사람을 무죄라고 선언한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이 나온 것이다.
최강욱 심사위원(변호사)은 “시대의 어둠이 명판결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당연한 것을 명판결로 뽑는 건 불만”이라고 말했다. 김승환 심사위원(전북대 법대 교수)은 “판사가 이 법의 구성요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은 채 법리를 구성한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법 자체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정공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제완 심사위원(고려대 법대 교수)은 “미네르바는 약자였고 당시 무죄를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건 심사위원장(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도 “만약 1심에서 벌금이 나오고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검찰은 견해 차이라고 넘어가겠지만, 1심에서 무죄가 나왔으니 검찰도 할 말이 없어졌다”며 “관료들도 모두 미네르바를 질타하고 검찰이 서슬 퍼렇게 구속했는데 무죄를 내린 것은 보통 용기로는 안 된다”고 높이 평가했다. 결과는 7 대 3, ‘미네르바’ 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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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변론을 왜 맡았느냐’는 질문에 김갑배 변호사(사진)는 이렇게 답했다. 애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차원의 변론이 예정됐지만 박찬종 변호사 등이 합류하면서 의견 조율에 어려움이 예상되자 민변이 공식적으로는 손을 뗀 사건이었다. 민변 소속임에도 김 변호사는 개인 자격으로 무료 변론에 나섰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그의 결백함, 아니 죄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접견을 하고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재판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변론 준비 과정에서 자료 수집이 어려웠다. 검찰은 미네르바 이름으로 올라온 글이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반박하기 위한 근거를 수집해야 했다. 그러나 박대성씨에게 어디서 자료를 얻었느냐고 물어보면 “인터넷에 입력하면 딱 뜬다”고만 얘기할 뿐, 자료 출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도 부족함이 있었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돼 있어 인터넷을 못 쓰니 당황스럽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무죄를 예상했나.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의 위헌성이 명백하기 때문에 위헌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뒤 재판이 다시 진행될 거라고 봤다.
-어쨌든 무죄 선고로 박대성씨는 훨씬 자유로운 몸이 됐다.
=피고인의 처지에서는 가장 좋은 결과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헌법적 관점에서 (위헌 결정을 통한) 근본적 처방이 아니라 (무죄 선고를 통한) 하나의 사건 해결에 불과하다는 점이 아쉽다. 전기통신기본법 헌법소원 심리가 진행 중인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진지하게 사건에 접근하고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팀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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