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발랄한 퍼포먼스로 사회적 요구 자체를 놀이처럼 즐겼던 청년유니온에게 요새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특정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약속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은 그리 재미있지만은 않다. 플래시몹 방식으로 집회를 열더라도, 정치·사회적 주장을 대외에 알리는 모양을 띠었다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사전신고를 해야 한다는 지난 3월 대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게 사실”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판결 이후에는 무조건 집회 신고를 한다”며 “예전처럼 발랄한 퍼포먼스를 하기엔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경찰들에게 에워싸여 플래시몹을 하다보니 자율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문화 형식을 빌린 집회에 대해서도 신고하게 한 것은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덧붙였다. 모임 내용을 기준으로 사전신고 여부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의 검열 행위로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판결이라는 당시의 비판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청년유니온 준비위원회 위원장이자 인터넷 카페 ‘청년유니온’의 카페지기인 김영경(33)씨는 고용노동부가 청년유니온의 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하자 규탄 모임을 열기로 하고 카페 공지사항에 ‘2010년 4월4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자’는 글을 올렸다. 김씨는 약속된 날짜와 장소에서 회원 10여 명과 함께 플래시몹 방식으로 정부 정책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김씨는 법정에서 ‘플래시몹은 집회가 아니라 순수한 예술 행위’라고 주장했다. 집시법 제15조는 학문·예술·체육·종교·의식·친목·오락·관혼상제·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 대해선 사전신고 의무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김씨의 행위가 집시법의 집회에 해당한다며 벌금 70만원을 선고했고 김씨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지난 3월,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 모임은 집시법 제15조에 의해 신고의무의 적용이 배제되는 오락 또는 예술 등에 관한 집회라고 볼 수 없고, 실질적으로 정부의 청년실업 정책을 규탄하는 등 주장하고자 하는 정치·사회적 구호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려는 의도 아래 개최된 집시법의 옥외집회에 해당해 사전신고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다시 정치적 자유 걱정해야 하는 시대”모임 내용을 기준으로 집회 사전신고 여부를 따지는 대법원의 판결은, 표현의 자유마저도 ‘사전허가’의 대상이 된 2013년 한국 사회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노무현 정부 때 대마초 합법화, 문신 등 문화적 표현의 자유까지 논의되던 수준에서 지금은 다시 국가보안법 시절로 돌아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예전 독재정권도 쉽게 못 건드린 종교계의 표현의 자유도 퇴행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심사위원 20자평▶김보라미 학문과 예술, 정치·사회적 구호의 차이. 구별이 가능한가.
조혜인 예측 어려운 플래시몹을 미리 신고? 그냥 의사표현 말라는 소리.
홍성수 ‘순수한’ 예술이 가능하단 말인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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