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이나 법대에서 토론수업 주제나 시험문제로 많이 나온대요. 면책특권 대상 여부, 표현의 자유, 공익과 사생활 보호 등 쟁점이 많은 사건이었으니까요. 대전의 한 대학교수가 학생들이 기말고사 과제로 제출한 리포트를 전부 복사해 보내주기도 했어요.”
명예훼손 무죄, 통비법 유죄 널뛰어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학생들도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썼느냐”는 질문에 “100%죠”라며 웃었다. 지난 12월17일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는 지난 2월14일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해 대법원 유죄판결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서울 노원병)을 잃었다. 선거권·피선거권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정당 직책도 맡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공부’할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법조인 뺨치는 실력을 뽐냈던 ‘국회 법사위원 노회찬’이 떠올랐다.
그는 민주노동당 의원 시절이던 2005년 8월 ‘삼성 X파일’의 ‘떡값 검사 명단’을 폭로했다. 삼성 총수와 주변 인물들이 1997년 대선에서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발 벗고 뛰었다는 사실이 담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파일이 2005년 뒤늦게 공개된 직후다. 그러나 당시 ‘정경유착’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불법 도청’만 부각됐고, 그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전직 국정원장들이 줄줄이 구속됐지만, 삼성 관계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폭로 2년 만인 2007년 5월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6년 동안 재판은 널을 뛰었다. 2009년 2월 1심 유죄 → 12월 2심 무죄 → 2011년 5월 대법원 파기환송(명예훼손 무죄,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유죄) → 10월 파기환송심 유죄 → 2013년 2월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떡값 검사로 지목된 이들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낸 민사소송은 1심 유죄에서 2심 무죄로 바뀌었고 최종심에서 무죄로 확정됐다. (제891호)은 2011년 ‘올해의 판결’ 표현의 자유 부문에 민사 2심 판결을 선정한 바 있다. 종합하면, 명예훼손은 무죄이고 통신비밀보호법은 유죄인데, 유죄를 선고한 논리에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떡값 검사 명단을 보도자료로 배포한 행위는 면책특권에 해당하지만, 이 보도자료를 누리집에 올린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잖아요. 대법원도 보도자료를 내면 바로 누리집에 올리지 않습니까.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적용되고,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올리면 면책이 안 된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환경을 전혀 감안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봐요.”
“삼성과 기득권층 위한 억지 판결”공익적 목적의 정당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명예훼손죄가 ‘진실한 사실로서 공익에 관한 내용’을 공개했을 때 면책되는 것과 달리, 통신비밀 공개는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일 때’ 등으로 면책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노 전 의원은 “국내 최대 재벌의 회장이 특정 대선 후보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이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면 무엇이냐”고 따졌지만, 대법원은 “떡값 검사 문제는 8년 전 대화 내용이어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노 전 의원이 승소한 민사소송 재판부(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는 삼성 X파일 녹음 내용을 살펴봤을 때 노 전 의원이 낸 보도자료 내용을 허위라고 볼 수 없고, 검찰 직무 수행의 청렴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갖고 제기한 내용이므로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노 전 의원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삼성과 기득권층 보호를 위한 억지 판결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월14일 ‘국회를 떠나며’란 성명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노 전 의원과 ‘삼성 권력’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 좀더 얘기를 나눴다.
-삼성, 무엇이 문제인가.=두 가지다. 경제권력도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처벌받아야 한다. 국가 경제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특혜를 받아선 안 된다. 두 번째는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을 관리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본다. 재벌 체제는 시장 질서에 비춰봐도 특혜이고, 그 체제를 유지하는 기업들에 대한 특혜다. 특혜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없애나가자는 것이지, 기업 자체에 대해 반대하거나 덩치가 크니까 없애자는 게 아니다. 삼성을 포함해 재벌 총수들 대부분이 엄청난 전과자들 아닌가. 대기업일수록 더 법을 무시하고 불법과 편법을 일상화해왔다는 얘기다.
-대법원 확정판결 때 (제949호) 기사 제목이 ‘떡값 준 놈·받은 놈보다 나쁜, 알린 사람?’이었다.=(웃음) 재벌의 정경유착, 배임·횡령, 상속세 탈루 등에 대해 법이 엄정한 심판자로서 역할을 포기해왔다. 삼성 X파일 사건은 정경유착 사건인데, 삼성에 대한 수사는 거의 하지도 않고 그것을 폭로한 사람들만 처벌받았다. (삼성의) ‘관리 대상’에 검사들만 있는 게 아니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얘기처럼, 삼성은 3권분립 체제인 우리나라에서 3권 위에 있는 초월적 존재로 3권의 각 영역에 영향을 끼쳐왔다.
“유신시대 긴급조치를 방불케 한다”-요즘 부쩍 ‘표현의 자유’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엄청 후퇴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민의 표현 영역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언론사를 탄압하고 긴급조치 같은 걸로 국민의 비판을 봉쇄하면 됐다. 민주화 이후 그런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됐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표현의 자유 영역이 확장되면서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재갈을 물리기 시작했다. ‘미네르바 사건’처럼 인터넷에 비판 글을 올리거나, 심지어 패러디물을 올려도 단속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이명박 정부 때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상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표현에 법적인 족쇄를 채우려 할 뿐 아니라, ‘종북’이니 뭐니 하면서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한다. 표현의 자유에서는 유신시대 긴급조치를 방불케 한다. ‘대통령 물러나라’고 한마디 했다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론 분열 운운하는 건 ‘막걸리 반공법’이나 다름없다. 표현의 자유에 적신호가 켜졌다.
심사위원 20자평▶오창익 국회의원도 시끄럽게 굴면 안 돼. “도둑이야”도 안 돼.
최재홍 국민은 알고 싶다. 그들의 X파일을!
홍성수 이 X파일이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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