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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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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도 투표 좀!

지난 7월 전원일치로 일반투표에서 투표시간 제한은 합헌 판정한 헌재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자 현실 모르는 판결
등록 2013-12-27 15:40 수정 2020-05-03 04:27
문제적 판결▶헌법재판소, 일반투표에서 투표시간 오후 6시로 제한한 공직선거법에 대해 합헌 결정
‘투표권보장공동행동’이 대선을 앞둔 2012년 12월17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투표권보장공동행동’이 대선을 앞둔 2012년 12월17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누구를 지지하든, 누구를 반대하든, 투표를 하든, 기권을 하든, 적어도 실질적으로 투표할 권리는 줘야 합니다.”

2012년 9월20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서명 게시판에 이런 내용을 담은 글이 올라왔다. ‘투표 좀 하자-투표시간 밤 10시까지 연장’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날 하루 동안 2천여 명이 지지를 보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된 투표시간 연장 법안이 새누리당의 반대로 부결된 지 이틀 뒤였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투표시간 연장 법안 입법 청원 요구도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를 석 달 남짓 앞두고 ‘투표시간 제한’ 논란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투표권 미보장 사업장 405건 신고

사실 투표시간을 둘러싼 논란은 몇 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투표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었다. 실제 공직선거법에서는 재·보궐 선거가 아닌 일반투표의 경우, 법정 공휴일로 정해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로 투표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 공휴일’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빨간 날은 아니다. 노동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자 등에게는 투표시간에 맞춰 시간을 내는 일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참여연대·민주노총 등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들은 시민 9만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투표시간을 밤 9시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은 입법 청원을 요구했다.

헌법소원도 이어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지난해 10월9일 투표 마감 시간을 오후 6시까지로 제한한 공직선거법의 위헌성을 묻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소송은 실제로 투표권 행사가 힘든 다양한 직종과 연령으로 구성된 청구인단 100여 명이 냈다.

그러나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투표시간 연장 관련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예산 문제를 언급하며 공개적으로 투표시간 연장에 반대했다. 그렇게 치른 대선에서는 투표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사례가 속출했다. ‘투표권보장공동행동’이 대선 직전에 운영했던 ‘투표권 보장 신고센터’에는 모두 405건의 투표권 미보장 사업장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

헌재는 노동자 마음 읽으려 했을까

그런 탓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헌재는 투표시간을 늘려달라는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헌재는 지난 7월25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현행 공직선거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이렇게 밝혔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55조 제1항이 국민의 선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오전 6시에 투표소를 열게 해 근로자가 출근하기 전에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 제10조가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투표를 위하여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 사건 심판청구 이후 통합선거인명부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누구든지 사전신고를 하지 않고도 부재자투표가 가능해졌으며, 임기 만료에 의한 선거일이 관공서의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헌재는 노동자의 마음을 읽으려 하긴 했을까.

심사위원 20자평▶

조혜인 투표할 시간 없는 ‘을’들의 나라, ‘갑’들의 민주주의.

오창익 헌재라면, 투표일을 이틀로 늘리자고 해야 할 판인데.

유성규 퇴직을 할 것인가? 투표를 할 것인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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