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지역 고등학교 교사인 강지현(33·가명)씨도 올 한 해 안녕하지 못했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평조합원이다. 대학 재학 시절 이른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강씨는 10년 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선생님이 된다. 전교조에 가입한 건 그로부터 5년 뒤였다.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교장 등 관리자들이 마음대로 하는 게 너무 많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병가나 연가도 사용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담임교사로서 내세운 교육철학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장은 제왕적 위치를 누리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자문기구일 뿐, 결정은 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신이 전교조 조합원임을 굳이 드러내진 않았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교조란 울타리는,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낙인’이었다. 전교조 활동이 항상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진보적이지 않았다. 교육 체계를 완전히 흔들어야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는데 틀을 깨는 데 소극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학교 행정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많다. 어떻게 보면 순종적이랄까. 옛날식 운동권 같은 촌스러움도 있다.”
인권위 삭제 권고, ILO 개정 수차례 요청이러한 고민은 이제 사치가 돼버렸다. 전교조가 다시 법의 테두리 밖으로 내쫓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989년 결성돼 10년을 버티고 버텨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받은 지 14년 만이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는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이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 제2조에 위배된다며, 이를 시정하지 않을 경우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유지’ 규약을 문제 삼아 두 차례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노조 아님’ 카드를 꺼내들진 않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선 정부에 노조해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1987년 ‘행정관청의 노조해산권’이 삭제됐다. 정부는 노조법 대신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을 들이밀었다. 노조 설립 신고서의 반려 사유가 발생하면 행정관청은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조 아님’을 통보한다는 내용이다. 노조 규약을 고치라는 요구를 듣지 않으면 아예 노조 설립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행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 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른 제재 조치가 가능함에도 조합원 자격 요건을 이유로 노동조합 자격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다”며 해당 시행령의 삭제를 권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 정부에 “조합원 자격 등은 노조가 결정해야 하며, 정부에서는 이러한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떠한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며 관련 조항 개정을 수차례 요청했다.
“밀어붙이면 밀려나는 것인가”정부의 무리수 뒤로, 비수 같은 질문이 날아들었다. 해직자 9명을 버리고 조합원 6만여 명이 살 것이냐 말 것이냐. 10월16일부터 사흘 동안 조합원 총투표가 진행됐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뭉쳐야 한다’는 독려 문자메시지가 이어졌다. 강씨는 ‘거부’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투표 참여자 5만9828명 가운데 67.9%가 그와 같은 의견이었다. “전교조 일을 열심히 하다가 해고된 건데 그분들을 빼고 갈 수 있겠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자고 한 사람들의 마음도 너무나 이해된다. 법외노조가 되면 조합원들에게 닥칠 불이익이 너무 많으니까.”
10월24일, 노동부는 전교조에 정말로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정부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통보 다음날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전교조 전임자 30일 이내 학교 복귀 △지부 사무실 퇴거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등 후속 조치를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너무 큰일이 벌어졌는데 처리해야 할 학교 업무는 늘 그렇듯 많았다. 밀어붙이면 이렇게 밀려나야 하는 것인가, 무력감마저 들었다.”
법원에서 숨통이 트이는 소식이 들려왔다. 11월1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는 노동부의 ‘노조 아님’ 처분 효력을 1심 선고 때까지 정지시켰다. 앞서 전교조가 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법외노조 처분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노조 아님’ 효력이 유지될 경우 전교조 교사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의 조정 및 부당노동행위의 구제를 신청할 수 없고, 단체교섭 권한을 실질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우려가 있는 등 실질적인 노조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공공복리’를 위해서도 효력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교조가 14년 동안 합법적 노조로 활동했고 법외노조 처분으로 인해 법적 분쟁이 확산돼 교육환경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특히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법외노조로 봐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부 조처의 법적 근거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노동부는 이에 불복해 ‘즉시항고’를 했다. 앞서 전교조는 10월2일 ‘노조 아님’ 처분의 근거인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 및 교원노조법 제2조 등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학교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전교조가 노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 판가름 나지 않았다. 지루한 법적 공방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강씨는 전교조가 흔들릴까봐 불안하다. 사법부가 과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꿔줄 수 있을지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전교조 조합원이다. 전교조가 존재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물었다. “전교조는 학교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설령 개미 목소리밖에는 안 되더라도 교장의 의견과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교조다. 승진에 관심 없는 조합원이 많기 때문이다. 단체교섭을 통해 자문기구나 운영위 참여 등이 가능했고, 독단적인 학교 운영이나 결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법외노조가 되면 단협 효력을 잃게 되고 상황이 달라질 게 뻔하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학교는 민주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과연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무엇이라고 가르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심사위원 20자평▶김성진 당연한 가처분 법리의 확인. 그래도 법원의 자존심을 지킨 점은 칭찬.
조혜인 법도 상식도 넘어서는 정부의 ‘속도전’에 제동 걸다.
홍성수 막 나가는 정부 vs 중심을 잡는 법원.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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