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이상은(49·가명)씨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로 시작한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사내아이 같던 그는 주변에서 남자로 인정받는 게 행복했다. 그는 성인이 된 뒤 남성호르몬 요법과 유방·자궁 절제수술을 받았다. 3천만원 가까이 들고 위험한 성기성형 수술은 받지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23년 동안 살고 있지만, 그는 주민등록번호와 다른 성별 탓에 혼인신고도 못하고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② 김정민(29·가명)씨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10대 때부터 남성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는 고교생 시절 운동선수로 활동하면서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에 참가하고 대학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을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여자 운동선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23살에 병원에서 성주체성장애 진단을 받은 뒤 유방·난관 절제수술을 받았다. 졸업 뒤 음식배달·일용직을 전전한 그는 현재 마땅한 직업이 없다. 주민등록번호와 맞지 않는 성별 탓에 병원에 가거나 선거에 참여하기도 어렵다.
이들을 ‘두 여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두 남성’이라고 해야 할까.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문제가 사법부의 판단을 받은 건 2003년이 처음이다. 당시 여성에서 남성으로 수술을 받은 성전환자가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의 성을 남성으로 바꿔달라며 낸 개명·호적 정정 신청 사건은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어졌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성별 정정을 불허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전환자가 명백한데도 호적의 성별이나 이에 따라 받게 되는 주민등록번호가 여전하다면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되고 취업이 제한돼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새로운 성별 정정 허가 7가지 기준대법원 결정으로 성별 정정의 허가 기준도 생겼다. 성장기부터 지속적으로 선천적인 생물학적 성과 자기의식의 불일치로 고통을 받았으며 생물학적인 반대의 성에 귀속감을 느낄 것, 정신과적 치료나 호르몬요법 치료 등을 받았으나 본인이 수술을 원해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성전환 수술 결과 현재 반대의 성으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을 것 등 모두 7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성별 정정에 필요한 성전환 수술은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MTF·Male to Female)는 유방확대, 생식기 제거수술 등을 거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FTM·Female to Male)는 질 제거, 요도성형, 음낭성형, 고환보형물 삽입술, 음경성형(피부이식 등) 등 복잡한 여러 단계의 수술을 거쳐야 한다. 이 가운데 성기 형성은 모든 성전환자에게 의료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지만 성별 정정 허가 기준에 언급돼 있어 대부분 가장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수술이다. 2006년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이 MTF·FTM 성전환자 78명을 대상으로 한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자료에는 성전환자의 외부 성기 수술 비용이 평균 139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하지 않은데 ‘기준’ 맞추기 위해 하는 수술FTM 성전환자의 외부 성기 형성 수술은 남성호르몬 증가로 비대해진 음핵을 확대해 요도로 연결하는 ‘남성성기지향술’이나, 한쪽 팔에 있는 두 개의 뼈 가운데 한 개와 주변 근육을 함께 잘라내고 팔에서 떼어낸 피부조직을 말아 음경을 만들어 부착한 뒤 성형한 요도를 삽입하는 ‘유리피판술’을 거친다. 수술 과정이 복잡한 탓에 평균적인 외부 성기 형성 수술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게다가 생식기 기능을 하지 못하며 괴사 등 의료적 위험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까다로운 성별 정정 요건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는 지난해 12월 외부 성기 형성 수술을 받지 않은 FTM 성전환자 5명과 함께 “전환된 성에 부합하는 성기 성형을 요구하는 것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에 있어서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성전환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성별 정정 제도의 취지에 반한다”는 내용을 담아 서울서부지법(법원장 강영호)에 성별 정정 신청을 냈다.
실제로 FTM 성전환자의 경제적·의료적 부담은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에 응답한 직장을 가진 38명의 FTM 성전환자들은 대부분 공장 노동, 서빙, 배달, 운전, 과외 등 불안정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서류 등에서 성별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또 전체 조사 대상의 70%는 월평균 200만원 이하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높은 비용의 성전환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은 3월15일 처음으로 이들의 성별 정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30건이 넘는 FTM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신청이 이어졌다. 법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좀더 명확한 결정 이유를 전달하고자 7월25일 서울서부지법 안에 박희승 수석부장판사와 예지희 부장판사, 연구회 회원 13명 등이 참여한 ‘성소수자 인권법 연구회’를 열었다.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 허가 기준을 주제로 삼아 정기적인 토론과 해외 사례 연구에 들어갔다.
성별 안 드러나는 직업에 종사해야 해결국 첫 결정을 내놓은 뒤 8개월 만에 서울서부지법은 FTM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신청에 외부 성기 형성이 필수적인지 여부를 담은 19쪽 분량의 결정문을 내놓았다. 결정문 마지막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관용은 나에게 편안한 사람들과 편안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삶의 방식을 함께할 공간을 내어주는 것으로서 차이를 뛰어넘는 동등과 배려와 존중을 의미한다.”
심사위원 20자평▶김보라미 수술로 만들어진 외부 성기는, 더 이상 성적 정체성 입증 요건이 아니다.
김성진 법원의 존재 이유 보여준 모범 재판. 다수의 편견을 재판으로 극복!
오창익 함께 공부하는 판사들, 든든하다.
유성규 차가운 겨울 새벽, 먼동이 터오는 느낌.
조혜인 당사자의 삶으로 헌법을 읽다, 삶 건넨 이들과 응답한 법원에 박수를.
최재홍 외양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내면을 보자.
홍성수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필수적 구성 요소인 이유.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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