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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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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텐트 하나에 10명이 비집고 누워” “두살배기 딸을 추위·배고픔에서 지키지 못할 줄이야”

2010년 가자지구 청소년들이 2024년 청년이 되어 증언하는 가자의 오늘…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그리는 ‘가자 모놀로그’ 웹툰
등록 2025-11-29 01:19 수정 2025-11-29 07:21
2025년 11월10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 부레이즈 난민 캠프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텐트 밖에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1월10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 부레이즈 난민 캠프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텐트 밖에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전쟁 전에 나는 전기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나는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더 이상 중요한 사람은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설령 된다 해도, 어쩔 건데? 이 도시에서는 다 똑같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가장 예쁜 꽃이 된들 뭐 할 건데?”

14살 아흐마드 타하가 말했다. 전기공학자의 꿈은 버렸고, 온종일 ‘순교자’(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들을 일컫는다)들을 봤다. 그리고 그는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에서 “결코 잊지 못할 광경”을 봤다. “수백 구의 시신이 한데 쌓여 있었다. 살이, 피가, 뼈가 서로 엉겨붙은 채 녹아내리고 있었다. 여자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 어린이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침대에는 살더미가 쌓여 있고, 사람들은 내 아이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내 남편이, 아내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울부짖으면서 소리쳤다.”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알리 하사니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이도윤 작가의 작품. 이도윤 제공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알리 하사니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이도윤 작가의 작품. 이도윤 제공


2010년의 목소리가 2024년의 목소리로

2008년 12월27일~2009년 1월18일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1391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죽었다. 그중 318명은 18살 미만이었다. 5300명이 부상을 입었다. 1만1154채의 집이 붕괴됐다.(알자지라 보도)

외신을 통해 주로 ‘숫자’로 타전된 2008~2009년 이스라엘 가자 침공을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증언한 목소리가 2010년 세계를 향해 울려퍼졌다. 팔레스타인 아슈타르 독립극장이 팔레스타인 청소년 31명이 전쟁의 참상을 증언한 목소리를 ‘가자 모놀로그’라는 대본으로 만들어 극장 누리집에 공유했다. 극장은 이렇게 썼다. ‘저희 목소리를 여러분의 친구, 가족, 동료, 언론에 전해서 더 큰 목소리로 만들어주세요’ ‘저희 목소리를 낭독하거나 공연해주세요’ ‘온라인에 공유해주세요’. 아슈타르 독립극장은 2010년 ‘가자 모놀로그’를 웹사이트에 올린 뒤 전세계 40개국, 80곳의 도시에서 2천여 명이 ‘가자 모놀로그’를 낭독하고, 공연하고, 공유했다고 기록했다.

팔레스타인 아슈타르 독립극장은 가자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청년, 청소년의 목소리를 ‘가자 모놀로그’로 엮어 누리집에 올렸다. 전세계에 이 극본을 낭독하거나 공연해줄 것을 요청했고 세계 시민들은 응답 중이다. 가자모놀로그 누리집 갈무리

팔레스타인 아슈타르 독립극장은 가자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청년, 청소년의 목소리를 ‘가자 모놀로그’로 엮어 누리집에 올렸다. 전세계에 이 극본을 낭독하거나 공연해줄 것을 요청했고 세계 시민들은 응답 중이다. 가자모놀로그 누리집 갈무리


이 목소리는 2023년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 침공 이후 2024년에도 이어졌다. 2024년 ‘가자 모놀로그’는 2010년 청소년 31명의 목소리에서 청년 19명의 목소리가 되어 이어졌다.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증언자로 목소리를 냈던 31명의 청소년 가운데 15명의 목소리를 2024년에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2023년 10월7일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뒤 전쟁 782일째인 2025년 11월26일,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숨진 가자지구 주민이 6만9785명에 이르는 가운데, 2010년 청소년이었던 31명 중 절반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감격, 혹은 슬픔을 느꼈다.

전기공학자가 되고 싶다던 타하는 2024년 28살 청년이 됐다.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에서 목격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던 그는, 또 한번 슬픈 일을 겪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가족들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헬리콥터가 우리 위를 날았고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닥에 엎드렸지만 아버지가 총에 맞았다. 아버지는 그 순간 우리를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마. 아무도 움직이지 마.’ 피를 흘리면서 아버지는 말했다. 우리는 피 흘리는 아버지를 보고서도 아버지에게 다가가 병원으로 모시고 가지 못했다.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계속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그때, 나는 수백만 번 죽었다. 잠시 뒤 헬리콥터가 우리를 떠났다. 그제야 우리는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겼다. 40일간의 입원 치료 끝에 아버지는 나아졌다. 걸을 때 한쪽 다리를 절룩거릴 뿐.” 14년 전, 14살의 타하는 병원에서 타인의 죽음과 아비규환을 목도했고, 28살의 타하는 “여전히 매일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그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음을 매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무함마드 옴라니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비명 작가의 작품. 비명 제공.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무함마드 옴라니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비명 작가의 작품. 비명 제공.


“딸아이를 추위, 배고픔으로 보호할 수 없다”

타하뿐일까. 2009년 이스라엘 침공으로 형을 잃은 아슈라프 소시는 2024년 “피란처를 찾아 이집트로 왔다”고 전했다. 그는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형과 같이 쓰던 침대를 기억했다. “저는 석 달 동안 매일같이 그 무덤 앞에 찾아가 형에게 말을 걸었어요. 밤이 되면 저는 방에 있는 형 사진을 봐요. 사진에 ‘영웅-순교자 타레크’라고 쓰여 있어요. 형이 순교한 뒤로 저는 침대에서 혼자 자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전에는 한 침대에서 발을 서로의 머리맡에 두고 잤거든요. 어떨 땐 팔다리가 다 엉킨 것도 같았어요. 그런데 이제 전 침대 하나를 혼자 다 쓰죠. 형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30살 청년이 된 소시는 이집트 난민촌에서 “매일 밤, 가자의 거리와 가자의 사무실과 동료들과 함께 마시던 커피를 떠올린다.” 그것 외에도 잃어버린 것이 많다. “아파트를 사고, 실내 디자인을 생각하며 보내던 시간의 기쁨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타일 디자인을 고르기 위해 도자기 전시장을 둘러보고 머릿속으로 페인트 색깔과 조명디자인을 상상하고 그곳에서 결혼을 준비하고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일궈나가려 했던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2009년 13살이던 알라 하자즈는 이웃집에 폭탄이 떨어지고 이웃 한 사람이 사망하는 장면을 엄마와 함께 발코니에서 목격했다. 이후 엄마는 계속 그 장면을 묘사했다. “우리 이웃집이 어떻게 폭파됐는지, 이웃이 집에서 어떻게 날아갔는지, 엄마는 내가 엄마 옆에 없었던 것처럼 계속 말해요. 티브이(TV) 뉴스라면 15분 동안 리포트할 것을, 엄마는 반복해서 2시간은 말해요. 엄마는 왜 그럴까요.”

‘피해 장면’을 반복해서 읊조리는 엄마의 딸이던 하자즈는 2024년 두 살배기 딸 마리암의 엄마가 됐다. ‘2024 가자 모놀로그’에서 하자즈는 말한다. “전쟁은 따뜻한 우리 집을 작은 텐트로 바꿨고, 그 텐트는 배고픔과 두려움과 추위로 둘러싸였다. 이제 두 살이 되는 딸아이를 텐트의 추위, 배고픔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2009년 외삼촌을 잃고 “죽음이 일상이 된 가자에서 죽든 살든 개의치 않게 됐다”는 타메르 나젬은 집을 잃어버리고 텐트살이를 하는 삶에 대해 말한다. “텐트란 곧 추위다. 느리게 다가오는 죽음이고, 이어지는 배고픔이다. 텐트 하나에 당신과 열 명의 또 다른 사람들이 서로 비집고 누워야 한다. 허무의 가장자리에서 간신히 생을 붙잡고 있는 생의 부스러기들처럼, 당신 몸의 반은 텐트 안쪽에, 나머지 반은 텐트 바깥에 있어야 한다. 아침이면 타들어가는 태양 빛에 눈을 뜨거나, 몸을 물어뜯는 파리 때문에 깬다. 밤이면 살을 에는 추위가 삶의 온기를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다. ”

당신은 혹시, 꿈꾸던 사이프러스에 있습니까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15살 마흐무드 발라위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적새 작가 작품의 한 장면. 적새 제공.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15살 마흐무드 발라위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적새 작가 작품의 한 장면. 적새 제공.


가자 전쟁 한복판의 참상을 증언하는 ‘목소리’에 한국의 예술가들이 응답한다.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재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참상에 공감하고 대응하던 예술가들까지 호응해, 예술가 20명이 ‘2010 가자 모놀로그’를 만화로 그린다. 2025년 11월29일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을 기점으로 한겨레21 누리집에서 그들이 그린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만화를 통해 나눈다.

청강문화산업대를 졸업하고 ‘기차, 출발합니다’ ‘심장은 춤추는 지느러미처럼’ 같은 만화를 그린 적새는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당시 15살이던 마흐무드 발라위의 ‘목소리’를 읽고, 전쟁과 전쟁 너머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한 청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발라위는 2010년 “가자에 대해 아름다운 단어들을 적어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가난을, 군인에 의한 포위를, 기근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꿈을 꾸기 위해 그는 바다로 간다. “꿈을 꾸게 해주는 건 바다뿐입니다. 해변에 서면 사이프러스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서서 파리로 여행을 떠나고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저는 세계 곳곳을 떠나지만, 그 여행의 끝은 우리 집, 난민 캠프 한가운데 내 방 침대입니다.” 가자의 현실로 돌아온 발라위는 두렵다. “시계가 11시55분을 가리키면 온몸이 떨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다시 시작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입니다. 심지어 파리마저도 저를 두렵게 합니다. 파리가 형들 몸에 앉으면 그대로 파리가 형들을 죽일 것만 같아서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도망쳐 달아납니다.”

적새는 발라위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목소리를 그렸다. 그리고 질문했다. “당신은 여전히 이 공포를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이프러스에, 뉴욕에, 로마에 있습니까.”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15살 마흐무드 발라위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적새 작가 작품의 한 장면. 적새 제공.

‘2010 가자 모놀로그’에서 15살 마흐무드 발라위의 ‘목소리’를 웹툰으로 그린 적새 작가 작품의 한 장면. 적새 제공.


발라위는 ‘2024 가자 모놀로그’에서 답했다. “저는 몇 번의 폭격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나의 집은 무너졌고, 다른 집으로 옮겼지만, 그 집 또한 폭격당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텐트입니다. 하루 24시간 죽음의 위협 아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나요?” 발라위는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는 뉴스 속 숫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상 속 이미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가족이고, 우리는 아이들이고, 우리는 엄마입니다. (…) 지금 우리는 마지막 스테이지에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닿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의 도움이 되기를.”

“우리는 뉴스 속 숫자가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세계를 향해 띄운 이 메시지에 한국이 그림으로, 작품으로 응답해보자고 기획한 엄기호 청강문화산업대 교수가 말했다. “가자의 비극에 대한 정치·사회적 해석과 비판보다 그곳에서 참상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같은 생각을 하는 학생도, 졸업생도 많았다. 이 목소리를 듣고, 읽는 분들이 ‘우리는 어떤 용기를 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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